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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솔 Nov 28. 2024

"나, 사실, 그래."


  창문 밖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우린 새 학기를 맞은 초등학생들처럼 수줍고 궁금해하며 하나 둘 이야기했다.



  올해의 첫눈은 새 학기를 맞은 초등학생 교실에서 맞이하는 느낌이었다. 독서모임에서 굳이 안 물어봐도 선생님 역할 맡고 계시는 분이 계시는 곳에 "온 마을 정전 사태"가 발생하면서 갑자기 온라인 접속이 중단되었고, 굳이 안 물어봐도 학생들 역할을 맡고 있는 우리들은 모니터에 눈을 대고 꿈벅거렸다. 


  나는 순식간에 선생님 안 계신 교실에 남겨진 아이들 같다는 느낌에 사로잡혔고, "궁금한 거 있는데요..." 라며 말문을 열었다. 느낌에 나를 맡겨 이미 말이 나오고 있었달까. 


"철학 책을 읽으시다 보면 좋아하는 철학가도 생기나요?"


  나는 밖으로 나오는 나의 말이 조금 어설프더라도, 궁금함과 호기심으로 뭉쳐 둥그렇게 된 그 순간의 내 마음을 짧은 찰나 오롯이 즐긴다.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한 명씩, 한 명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도 궁금한 것 있어요."

"명장들의 강의를 들어보세요."

"저..."

"읽어야 하는 책이 쌓여있는데,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있어요." 

"저는 작가의 배경을 먼저 봐요."

"메모법 강의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무슨 용기..?!)

"저도 듣고 싶어요."

"철학자... 친구 사귀는 것처럼 좋아하는 철학자가 생기는 것 같아요."

"어려운 건 없어요."


  어느새 오며 가며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이 나에게는 마치 새 학기를 맞은 같은 반 초등학생들이 마침 선생님이 안 계신 틈을 타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궁금함을 수줍게 하나씩 말하며, 어느새 너도나도 그렇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듯 보였다. 모니터 넘어 창밖엔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데, (온라인) 교실에선 따뜻함이 잔잔히 퍼져 갔다. 아마 난로에 도시락까지 있었으면 금상첨화였겠다. (나이 유추 그만...)


  사람들에게 궁금함과 호기심이 생기는 신호가 나에게서 감지될 때, 충분히 바라보게 된다. 전체를, 그리고 나를. 



추운 날, 날 따뜻하게 하는 건

"나, 사실, 그래."라고 주고받을 때 느끼는 감각 같다.


있는 그대로의

수줍게 건네는 진심의 사실

어설프게 표현하는 그래


"나 사실 그래."

"나 사실 그래."

...

..

내 안에 머문다. 


창 밖엔 눈, 추억여행, 따뜻함까지 선물 받은 날.




***어제 새벽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적은 글 입니다만, 오늘까지 갑자기 폭설이 내린 상황이 되면서 글을 발행하는 것이 조심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제 안의 감정을 풀어내는 것이 본 글의 목적임을 스스로 믿고, 글을 발행하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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