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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솔 Nov 29. 2024

니체 입문


  프리드리히 니체.

  이름은 몇 번 들어봤다. 짜라투스트... 어쩌고... 가 말했다도 들어봤다. 그의 원도서는 아니지만, 6인의 철학자들의 사상을 통해 우리에게 일상의 통찰을 주는 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에서 니체의 사상을 짧게 엿보았다. 사실 독서모임에서 간간이 듣는 니체의 말이 다른 철학자들의 사상보다 나에게 훅훅 와닿아 가슴을 한 번 치고 입으로는 '아...!'를, 머리로는 다시 한번 따라 더듬어 생각해 보는 일이 몇 차례 있었다. 은근히 마음속으로 '아, 내 스타일인데'의 느낌을 가지고 있었는데, 『철학의 위안』을 읽다가 책의 마지막 챕터에서 나온 니체에 대한 글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마지막 챕터의 주제는 '어려움에 처한 존재들을 위하여'다. 물론 알랭 드 보통의 해석을 거친 글이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니체라는 사람이 어떤 사상으로 어려움에 처한 존재들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을지 기대 됐다. 니체의 삶에 대한 묘사도 있기 때문에 나처럼 입문하는 사람에게 딱 좋지 하며 시작했다.


  5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을 통해 나에게 남은 그의 이미지는 (그와 그의 철학에 대해 깊이 알 수 없다) 천재, 자기가 천재인 줄 알고 시원하게 드러내는 사람, 콧수염이 많은 사람, 정말 철학가, 고통/고뇌/고독이 느껴지는 사람, 자신의 사상을 뚜렷이 끝까지 보여준 사람, 일생의 마지막 또한 인간 존재로서의 고통/고뇌/고독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내가 가지게 된 많은 이미지들은 잠시 두고... 이 책에서 드러나는 니체의 사상을 통한 주요 메시지는 '고통의 승화'다.


  니체는 극도의 비참함, 고통, 고뇌, 부러움, 굴욕감, 실패와 같은 부정적인 요소들을 피하거나 없앨 수 없는 것으로 본다. 행복, 성공, 인간완성과 같이 긍정적인 요소들을 추구하고 이루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고, 오히려 상호의존적인 것이므로 이를 인정하고 고통을 받아들이고 참고 견디어 감내하기를 요구한다.


재능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말라. 타고난 재능이라고! 모든 분야에서 그다지 재능을 타고나지 않았으면서도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을 얼마든지 나열할 수 있다. 그들은 부족한 자질을 일궈가면서 스스로 위대함을 획득하여 (우리가 표현하는 것처럼) "천재"가 되었다. 그들 모두는 장인匠人의 근면함과 치열함을 갖추고 있어서 감히 훌륭한 완성품을 내놓기 전에 각 부분들을 정확하게 구축하려고 애쓴다. 그들이 그런 시간을 가지는 이유는 황홀한 완성품이 주는 효과보다, 보잘것없고 신통지 않은 것들을 더 훌륭하게 개선하는 작업 그 자체에 보다 많은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ㅡ『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완성품, "황홀한" 완성품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개선하는 작업 "그 자체"에 쾌감을 느낀다...


  무엇인가 해 보겠다고 결심할 때, 완료/완성/끝 이후를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심지어 그런 내 모습을 상상하고 기대하며 시작하는 경우는 정말 많다. 책 하나를 읽겠다고 사는 순간만 해도 그렇다. '이 책을 다 읽으면 니체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겠지', '그런 사람이 되겠지', '알랭 드 보통의 책을 하나 더 읽은 사람이 되겠지'라는 생각들.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쓰면서도 '더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다', '좋아해 주면 좋겠다'라는 생각들.

 

  물론 과정 자체에 대한 기쁨들도 많다. (정말로...) 책을 읽으면서 빠져드는 순간들, 마음에 머금고 곱씹는 문장들,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알아가는 즐거움, 글을 쓰면서 몰랐던 나를 알게 되는 순간들, 생각 덩어리들이 문자로 표현되는 놀라움, 글로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는 순간들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성찰한다.

  내가 더 중요하게 쫓는 가치는 무엇인지, 부수적인 것들이 나를 많이 어수선하게 하지 않는지, 흔들리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이 어디를 향해 가 있는지, 내 몸과 정신을 어디에 쓰고 싶은지, 집중과 몰입의 쾌감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지. "황홀한" 완성품인지, 작업 "그 자체"인지 말이다.

  

  니체는 "더 이상 부정하지 않는" 존재가 되려고 애썼다는 표현이 있다. 원하고 이루려 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동반될 수밖에 없는 고통을 외면하고 피하면서, 합당한 일을 하는 것처럼 자신을 부정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멈추어 바라보게 될 것 같다.

  내가 부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당당히 직면하고 있는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니체의 생의 후반부에 대해 짧게 보여준다.

1882년 니체는 다시 한번 자신에게 어울리는 여인을 발견했다. (중략) 니체는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더 이상 외롭고 싶지 않소. 다시 진정한 인간 존재가 되고 싶소. 아, 진정한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 실제로 내가 배워야 할 모든 것들은 여기 다 있다오!"
1889년 1월 초, 니체는 결국 체력이 쇠약해진 나머지 토리노의 가를로 알베르토 광장에서 말을 끌어안고 쓰러져 자신의 하숙집으로 실려갔다. (중략) 자신을 디오니소스, 예수 그리스도, 신, (중략) 리하르트 바그너로 착각하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 사랑은 어떤 의미였는지, 인생의 후반부에 망상이나 환각에 시달린 것인지, 그의 죽음은 어떠했는지에 대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천재 철학자 니체는 사랑에 대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었을까?, 여인에게 바치는 말들은 진정한 사랑의 감정이었을까, 인간존재로서의 근원적인 외로움의 표출이었을까? 고통과 사랑, 그 외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들에 대해서는 어떤 사상을 가졌었을까? 무엇이 그를 그렇게 확신에 차게 할 수 있었을까? 


  프리드리히 니체. 짧게 접한 그와 더불어 깊은 그와 그의 사상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지는 아침이다.

  * 아..! 철학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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