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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ya Kang Mar 03. 2024

그로스해킹 책을 괜히 읽어가지고는

시스템 없음, 사수 없음. 스타트업 주니어가 살아남은 방법

'그로스해킹'방식으로 엄청난 성장을 경험하며 일한다는 것의 두근거림,

그 누구도 한 적 없는 새로운 시도가 나의 업무라는 기대감!


그런 것이 스타트업에 열정 넘치는 도전자들을 불러 모은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늘 장점과 단점은 함께 오더라. 뭐가 그렇게 사이좋은지.




첫 글에서 언급했던 나의 스타트업 생활 시작의 동기, 스타트업의 가슴 뛰는 업무 방식을 말하는 '그로스해킹'이라는 개념은 "뭐든 할 수 있어!"라고 외치지만, 동시에 "어떤 게 가장 좋은 방법인지, 뭘 해야 할지 몰라!!"라고 외친다.


"스타트업의 마케팅 방식만 그런거 아냐?"라고 한다면 나는 당당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스타트업은 그 구조와 시스템 등 모든 면에서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에서 출발하는데, 그 가능성은 아무것도 없음에서 나온다.


그래서 마주한 나의 현실은, 일에 정해진 경계가 없고, 정해진 규칙이 없다는 혼란스러움이었다.

그렇지만 거기에서 멈췄다면 나는 지금 여기에 없겠지.

이곳에서 일하고 있지도, 이 글을 쓰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문제가 여전히 나의 곁에 있고, 오히려 애증의 관계와 같이 되었다. 나는 이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나는 대체 어떻게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상황과 환경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시스템 없음, 사수 없음, 전문성 없음.


내가 스타트업에 다니며 겪었던 큰 문제를 정리하면 다음 세 가지와 같다: 시스템 없음, 사수 없음, 전문성 없음.

사실, 일반 회사의 근무자라면 사실 위 세 가지가 다 없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반적인 회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그게 무슨 회사냐' 할 텐데,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멤버에게는 아주 당연히 겪을 일이다. 회사 성장의 단계마다 멤버들이 겪는 회사의 모습도 다르겠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초기 스타트업의 경험은 보통 비슷하다.


생각해보면 스타트업의 멤버뿐 아니라 회사에게도 모든 성장의 단계가 처음이다. 마치 첫 아이를 키우는 경험 없는 부모와 같지 않을까? 그래서 회사의 도움을 바라고 마냥 있을 수는 없다. 스타트업 멤버는 자급자족도 해야 하며, 때로는 회사보다 먼저 행동하기도 해야 한다.



흔한 스타트업 주니어의 고충 1. 시스템 없음


사람은 시스템 안에 있을 때 어느 정도 편안함을 누린다. 시스템이 만들어주는 완충 효과가 있다고나 할까?

그러나 스타트업은 그 태생이 기존 시장의 시스템을 거스르는 일인 만큼, 다시 처음부터, 시스템 없이, 그에 맞는 맞춤형 시스템을 만들어나가게 된다.


멤버가 열명 남짓 하던 시점에 회사에 합류한 나는 시스템이 거의 없는 환경에 놓였다. 아직 우리 회사는 필요한 수많은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과정안에 있었다.

근태관리 시스템, 결재 시스템, 문서 관리 시스템, 업무 시스템, 회의 시스템뿐만 아니라 서비스 내 프로세스까지. 회사에 필요한 시스템이 뭐 이리 많은지!


사실 처음엔 '뭐 회사가 이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

나는 곧 '시스템 없음'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고, 없는 것들을 만들어 나가는 데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스타트업에서는 모든 것이 유동적이다. 시스템은 필요에 의해 고도화되거나 축소되는 과정을 거친다. 억지로 복잡한 시스템을 '먼저' 만들어 두는 것은 스타트업의 방식이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끊임없는 창의적인 발상만이 스타트업을 생존(성장)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회사가 성장하고, 동료가 늘어나고, 업무가 조금씩 세분화되면서 내가 관여해 시스템화해나가는 영역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때에 따라 시스템이 필요해진다.


그럼, 시스템은 누가 만들어주나? 아니다. 업무를 수행하는 나와 팀원들이 이를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또 어디선가 찾은 다른 사람과 조직의 경험을 끌어 와 우리만의 방식으로 변경해 시도한다.

2024년 3월, 지금 나는 '마케팅과 고객 육성'이라는 영역에서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



흔한 스타트업 주니어의 고충 2. 사수 없음


가장 많은 스타트업 동료들이 공감하는 부분은 바로 이 '사수 없음'이라는 부분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문제로 보고 해결하기 위한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가 '당신 곁의 랜선 사수'라는 태그라인으로 활동하며 한 해 10만 명의 유료 구독자(2022년 기준)를 모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


아무튼 나는 크게 세 가지 방법으로 이 문제를 극복해 나갈 수 있었는데, 1. 사내에서의 직/간접 경험 2. 콘텐츠를 통한 간접 경험 3. 현장 방문을 통한 경험이었다.



1. 사내에서의 직/간접 경험: 사내에서 대표님과 세일즈/마케팅/디자인 팀이 함께 진행하는 세미나가 있다. 이는 각 멤버가 돌아가며 세일즈나 마케팅에 대한 칼럼, 사례를 공부해 공유하는 시간이다. 구성원들의 경험과 지식이 풍부하지 않던 시절, 새로운 시도의 아이디어를 얻고 적용 방안을 함께 고민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2. 콘텐츠를 통한 간접 경험: 나에게 가장 큰 임팩트를 준 것은 각종 콘텐츠였다.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걸었던 여러 사람들의 인사이트를 책을 통해 극복하려고 했고, 수십 권의 책을 읽어나갔다. 조금 더 최신의 콘텐츠와 트렌드는 유튜브와 뉴스레터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이는 3번에서 이야기할 '현장 경험'으로 이어져 경험의 질을 풍부하게 해 주었다.


이미 마케팅 업계에서는 꽤 잘 알려진 '콘텐츠쟁이'들이 많다. 나는 이들을 '랜선 사수'라고 부른다.

이들은 분명 당신의 랜선 사수 역할도 너무나 기쁘게 맡아줄 것이다.(물론 자각할 수 있다면!)


최근 나의 '랜선 사수' 중 한 분을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꼭 하고 싶었던 말도 했다. "당신이 나의 랜선 사수였어요. 감사합니다." 경험과 관계는 이렇게 확장되기 마련이다.


*나의 '랜선 사수'들의 정보가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면 알려달라. 상세히 전달해 보도록 하겠다.



3. 현장 방문을 통한 경험: 감사하게도, 갓 입사해 주니어 시기를 보내던 2019 - 2022년은 크고 작은 기업의 오프라인 마케팅, 특히 '팝업 스토어' 전성기였다. COVID-19가 끝나가며 움츠렸던 오프라인 경험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고 있었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성수동이 나의 '주말 놀이터'가 되었다는 것 또한 비슷한 이유에서이다. 주말마다 서울숲과 성수동을 찾아가면, 혼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새로움이 그득그득했다. 모든 가게가 너 나 할 것 없이 조용히, 때로는 분주하게 '나 여기 있어!'라고 외치고 있었고 나는 그곳들을 찾아 경험해 나갔다. 이때 경험이 너무 좋았어서 별도의 인스타그램(@seongsoo spots)에도 차근차근 정리해나가기도 했다. (역시 꾸준히는 어렵더라)



결론적으로 '사수가 없다'는 문제를 극복하는 데  필요했던 것은 외부의 자극 보다 나의 성장 의지였다. 그랬기 때문에 때에 따라 속도가 매우 더디기도 했고, 빨라지기도 했다.


사내에서 충분한 경험이나 인사이트를 얻기 어렵다면, 외부 커뮤니티에서 마음 맞는 동료를 찾기 바란다.

다행히도 요즘의 주니어들은 꽤 활발한 커뮤니티 활동 등을 해나가고 있더라. 멋지다. 경험의 범위를 넓혀 배움의 범위를 넓히는 것, 비슷한 시기를 지나는 동료들과 교류하며 서로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것. 나와 딱 붙어 하나부터 열 까지 가르쳐주고, 본인의 경험을 공유해 줄 수 있는 '사수'가 없음을 극복하는 데 이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흔한 스타트업 주니어의 고충 3. 전문성 없음


그간의 시간 동안, 내 마음을 가장 어렵게 한 것은 이 부분이다.

일반 회사에서 주니어는 좁은 영역을 다루며 수직적인 성장을 이룬다. 업무의 깊이는 더 깊게, 직급으로는 더더 위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스타트업에서 주니어의 성장은 다르다. 우선 수평적인 확장을 이룰 수밖에 없다.


고객을 정의하고, 고객문제를 정의하고, 고객을 찾고,

문제를 해결할 서비스 기술을 만들고, 기술의 고객 문제 해결 포인트를 잡고,

이를 홍보수단을 찾고, 콘텐츠를 만들고, 마케팅 활동을 통해 전달하고,

최종적으로 서비스 안에 들어가, 서비스의 디테일까지 만져본 뒤,

고객과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고객문제서비스를 조율하는 경험 전반을 다룰 수 있다.


이 얼마나 방대하고 험난한 여정인가?

다행히 우리 회사는 이 여정을 잘 거치며 순탄하게 성장해 왔다. 이렇게 성장하다 보니, 나의 성장에 깊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불과 한 두해 전부터에서 야, 나는 마케팅이라는 영역 안에서도 더 좁은 나만의 영역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수평적인 확장과 이후에 따라오는 깊이의 성장. 이것이 스타트업 주니어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닐까.

기믹이 아닌 본질에서 시작해 본질을 두드려야만 스타트업은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여전히 마케팅이라는 드넓은 바다에서 나만의 섬을 찾지는 못했다.

어쩌면 평생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또 모르지, 언젠가는 이런 시기를 지나는 스타트업의 전문가가 되어있을 수도 있겠다.

 




글을 마무리하며


돌이켜보니, 모든 상황을 꽤 잘 받아들였나 보다. 어려서 그랬을까?

이 모든 것들이 급박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5년에 찬찬히 걸쳐 경험했기 때문인 걸까?


'나의 회사생활 경험 없음'이 "자고로 회사는 이래야 해"라는 나의 선입견을 만들어 주지 않았기 때문에 꽤 잘 받아들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스타트업 경험의 장점: 하나부터 열까지 관여하는 경험

새롭게 만드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어딘가에 완전히 집중하지 못하는가? 스타트업에서 새로 만들어야 할 것은 무궁무진하다. 당신이 맡은 일도 새롭게 정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며, 잘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그쪽을 깊게 파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분명 뭐든 즐겁게 임할 수 있을 것이다.



길러야 하는 역량

길러야하는 역량이 있다면 두 가지를 들 수 있겠다. 앞서 이야기한 성장을 위한 배움의 의지와  중구난방 한 업무들의 관리와 업무 우선순위화 하는 능력일 것이다. 이건 정말 누가 도와주지 않는다. 내 목표를 끊임없이 상기시켜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할 것 중에서 끊임없이 가지를 쳐내야한다.


목표를 기록하고, 매일의 업무를 기록하는 것, 아이디어를 모아 가는 것들이 이에 분명히 도움이 되었다. (기록하는 것에 대해 글 하나를 써보려고 하니, 그 때 더 자세히 이야기 해보겠다.)



그래도 역시 불안하다

스타트업에 합류한 생 초짜 주니어 생활을 지나며 겪은 가장 큰 짐은 아무래도 불안감일 것이다.

전문성이 없다는 나의 마음의 불안감,

충분히 벌이가 좋지 못하다는 불안감,

내일 출근할 곳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등.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올 환경이다.

그러나 이 것이 나의 선택이었고, 당분간 나의 선택일 것이다.



그런 덕분에

이전의 경험과, 나의 선택 덕분에.

덕분에, 예측 불가능한 도전과 성장으로 점철될 나의 인생이 날 기다리고 있다.

다음에는 또 어떤 새로운 도전의 여정으로, 동료들과 함께 나아가려나?


그로스해킹 책을 괜히 읽어가지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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