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일터는 스타트업. 어떤 경험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을까?
*이 글은 '바이오 스타트업 마케터로 살아남기' 매거진의 첫 번째 글과도 이어집니다.
주말마다 뜨거운 데이트의 열기가 가득한 2호선 뚝섬역. 블루보틀을 지나 5분이면 닿는 곳에 위치한 '패스트파이브 서울숲점'의 5월이 밝았다. 일터의 직장인들 모두 하루 숨 고르는 시간을 가진 바로 다음날, 5월 2일에, 나는 사회인으로서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훗날 회사는 성수동을 떠나 강남 한복판, 선릉역에 자리 잡게 되는데, 되려 그때부터 성수동은 내 주말 놀이터가 된다.)
바이오 전공으로, 바로 일을 시작하기 위해 취업 준비를 하던 중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이 회사가, 내가 5년이나 몸 담는 곳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스타트업에서 관심 많은 '그로스해킹'이라는 단어 하나 꼴랑 알고서 입사했는데, 곧 아무것도 모르던 신입, '호야'의 이름 앞에는 '마케터'라는 호가 붙었다.
어쨌든 '마케팅의 전문가'라는 뜻인 '마케터'로 일하는 나는, 문득 '마케팅'이라는 것을 학창 시절에 생각해 본 적이 있나 돌이켜보았다.
음, 기억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브랜드'와 '브랜딩'에 대해서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이것 또한 기억이 전혀 없다.
대체 지난 5년간 나에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사실 지금은 '마케터의 돋보기'를 눈에 영구장착한 상태다. 세상 모든 것들이 다 '마케터의 관점'으로 보인다. 그러나 학창 시절에는 달랐다. 매 달 여러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기웃거리며 Retention 유지를 위한 쿠폰으로 다달이 음악을 즐겨도, MAU를 늘리기 위한 사진 앱 SNOW의 필터로 친구들과 사진을 찍어도, '홍보부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과 학생들이 참여할 사진 이벤트를 주최해도, 동아리 회장으로 새로운 로고를 만들고 신입 부원을 모집해도, 이것이 전부 기획이자 '마케팅'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게 다 마케팅이었는데!
아, 혹시나 나를 글로써 처음 만나는 분들을 위해 다시 소개한다.
안녕, 나는 호야다. 대학 시절 생명과학과 상담심리학을 복수 전공했고 지금은 바이오 스타트업에서 마케터로 일한다. 내가 공부한 두 학문 모두 '사람'을 공부하긴 한다. 다만 생명과학은 '생명체'로서 작동하는 사람의 몸을 깊게 파고, 상담심리학은 사람의 '정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문제가 있을 때 이를 상담이라는 기법으로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판다.
20대 때 새로이 알게 된 사람에게 '전공'으로 자기소개를 하다 보면 항상 이 둘의 조합이 '흥미롭다'거나 '이상하다'는 질문을 종종 받았다. 사실, 두 학문을 복수 전공하고 졸업을 해내었을 뿐, 둘 중 그 어느 것 하나 깊게 파지는 않았다. 그만큼 특정 학문을 더 좋아하지는 않았다랄까.
그나마 딱 한번 파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2014년 여름 내 참가했던 인턴 때다.
정말 감사한 기회로, 서울 어느 암연구소에서 두 달간 실험실 인턴으로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 시작은 내 생명과학 학도로써의 미래를 위한 '스펙'을 하나 쌓아보자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이 시간을 통해 ‘실험은 내 길이 아님’을 찾았다.
소모품인 파이펫의 팁을 정리하는 일부터, 정해진 프로토콜로 특정한 세포의 생장에 필요한 배지를 만드는 일, 실험을 위한 약물을 주기적으로 배지에 도포하는 일, 마지막으로 모든 실험의 결과치를 측정하고 세웠던 가설의 결과를 확인하는 일은 모두 실험실 안에서 벌어졌다. 물론 석사생, 박사생, 교수님과의 논의 등을 거쳐야 하지만 결국은 내가, 실험실에서, 세포와의 긴긴 싸움을 혼자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적당히 괜찮은 결과로 인턴을 마무리했지만, 그 해 여름 나는 깨달았다. "세포보다는 사람이랑 부대끼는 일을 해야겠다. 내가 심리학을 복수전공으로 한 이유가 있었어."
나는 사람을 찾아 떠났다.
그렇게 나의 가능성 있는 미래 직군에서 '실험실 및 연구 관련' 일자리를 지워냈다. 2년 간 군 대체복무를 마쳤다. 그때 모은 돈으로 한 달간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과 미술에 눈을 뜨고, 파리의 환상이 깨지고, 유난히 더웠다던 유럽의 열기가 가시니, 나는 복학생이 되어 있었다.
이때 이런 나의 인생에 전환점이 된 사건이 발생한다. 2017년도에 참가한 대외활동이 나의 마케팅적 관점의 시작이 되었다. 학교 내외에서 꽤나 유명한 대외활동이 있었는데, 친한 후배가 함께 지원해 보자고 했을 때 특별한 고민 없이 참가를 결정했다. 코가 꿰인 나는 친구 하나를 더 물어왔고, 후배 역시 친한 친구를 꼬드겨 우리는 넷이서 한 팀이 되었다.
당시에 지원하고자 했던 대외활동은 LG그룹에서 수년간 진행해 오던 '글로벌챌린저'로, 전반적인 콘셉트가 이름 그대로 아주 '글로벌'하고 '챌린징'했다. ‘더 넓은 세상에서 문제’을 발견하고,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것 이 관건이었기에, 위 기준을 충족시키면서 우리가 해외 탐방으로 활동할 주제를 찾는 게 가장 중요했다. 꾸려진 팀으로 사업화할 만한 문제와 해결책을 브레인스토밍하고 버리기를 수 차례, 결국 우리는 '버려지는 커피찌꺼기로 친환경 잉크를 만들다'라는 주제로 파이널리스트에 선정되어 반년 간의 대외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문제를 찾고, 행동하며 세상에 좋은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경험이라니, 그것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대기업의 지원을 받아 해외를 다녀온다니! 힘든 일정이었지만 동시에 달콤한 경험이었다.
이제 돌이켜보면, 해결이 필요한 고객 문제를 찾고, 그것이 정말 문제인지 확인하고, 이에 대한 마땅한 해결책이 있는지 찾아보고, 유사한 해결사례를 인터뷰를 통해 얻어내며 실현 가능성을 확인하는, 일련의 사업개발 과정이었다.
심지어 활동의 마지막엔 흔히 스타트업 업계에서 피칭(Pitching)이라고 할 만한 순서가 있었다. 9명의 임직원 앞에서 LG에 입사할 수 있느냐 마느냐를 놓고 진행한 마지막 발표는 최종 모두를 긴장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대외활동은 끝이 나고, 끝내 입상은 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졸업과 취업준비를 하다, 그러다 정말로 스타트업에 들어왔다.
세일즈로 합류했지만 은연중에 세일즈가 나의 100% 맞는 적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보다. 마케팅으로 입사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면접에서 마케팅과 관련한 이야기는 왠지 해야 할 것 같았다.
내 머리가 그래도 텅텅 비지는 않았음을, 그래도 달랑 열정만 있는 게 아니라 노력도 좀 했다고 알리기 위해 책 한 두 권은 읽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읽은 책이 바로 라이언 홀리데이의 ‘그로스해킹'이었는데, 아주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Growth Hacking.' 스타트업이나 마케팅 업계에 있지 않은 사람에겐 생소한 단어일 수 있다. 직접 한 경험에 비추어 쉽게 풀어쓴다면, '사업 성장을 위해서는 뭐든 한다!' 정도이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우리 회사의 마케팅 팀에는 이런 관점이 필요한 게 맞았고, 대표님 역시 이런 방식의 접근이 흔하지 않은 바이오 업계였음에도 밀어붙이고자 했고, 지금도 동일한 방향으로 마케팅팀의 업무는 진행되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시작하며 지난 5년간의 회사생활과 그전 몇 년간의 경험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새로운 경험에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없는 나는, 의외로 도전을 즐기는 성향이었다. (구기 종목에 젬병인 내가 즐겨온 스포츠는 스케이트보드, 스노보드, 클라이밍으로 모두 익스트림 스포츠에 속한다)
결론적으로 이런 성향이 스타트업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스타트업에 합류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큰 리스크를 지고 가는 거니까. (이름 모를 스타트업을 가다니, 괜찮겠냐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하던 친구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울리는 듯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나 같은 사람도 스타트업에 잘 맞을까?"라고 고민 중인가?
새로운 경험과 도전을 즐긴다면,
나의 영향력이 넓은 조직을 원한다면,
도전, 새로움, 생존.
이 단어들이 기분 좋은 두근거림으로 들린다면, 당신은 스타트업과 아주 찰떡궁합일 것이다.
심지어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더라도, 우리 회사는 한 전공에서 다른 전공으로, 한 직업에서 다른 직업으로 이동한 흥미로운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기회가 된다면 이들의 이야기도 한 명 한 명, 풀어보고 싶을 만큼 말이다.
이어지는 일련의 글에서는 내가 스타트업을 경험하며 느낀 것들과, 배우고 달라진 것들을 다룰 것이다.
학창 시절과 대학생 시절을 통틀어서 나는 전형적인 한국의 '질문하지 않는' 수동적인 학생이었다. 그런 내가 스타트업에 몸담으면서 가장 큰 자극을 받고 배우고 달라진 점은 질문이라는 행동을 즐기게 된 점, 이를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 점이다.
우선은 이 이야기를 먼저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