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는 왜 '기록'해야 할까요?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록을 하고 있을까요?
나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기록을 하고 있을까?
하루 중 접하는 정보를 모두 머리에 담기에는 분주한 우리는, 여러 보조적인 수단으로 기억을 대신합니다.
저는 월요일 아침, 지난주 무얼 했느냐며 묻는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을지로의 분위기 좋은 새 위스키바는 '네이버 지도'에 저장합니다. 주말 간 읽은 책이 너무 감명 깊다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료의 책은 노션의 '내가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저장하고요.
SNS나 트렌드 뉴스레터에서 마주하는 재밌는 브랜드, 이벤트, 전시와 맛집 정보는 스크린샷으로 남겨 내 사진첩에 쏙쏙 저장하죠.
이 모든 것이 기록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회사에서의 기록은 어떨까요?
한 주간 진행되는 수많은 회의에서는 각기 구글 공유 문서 회의록, 노션 회의록에 기록하고, 고객과의 줌 미팅, 이벤트의 결과는 주요 지표와 피드백과 함께 정리합니다.
이렇듯, 마케터로서의 나의 기록은 흘러가는 영감을 붙잡고, 깊은 통찰력의 거름이 되기 위해 쓰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습관을 남기기까지, 수년의 시간과 여러 번의 좌절이 함께했고요. (대부분의 이유는 꾸준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떤 과정을 거쳐 '기록'이라는 행위를 습관으로 남길 수 있었을까요?
입사한 지 한 일 년쯤 되었을까요, 당시 세일즈와 마케팅팀은 서너 명 정도의 인원이 있었습니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들의 방식에서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는 점은 배웠던 것 같네요. 그 외 내 직무에 특수하게 필요한 조언은 '랜선 사수'들을 통해 찾았고요.
여러 곳에서 (아마 퍼블리, 유튜브, 마케팅 관련 책들이 아니었을까요?) 기록이 중요하다는 것 정도는 주워 들었던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실물 노트와 에버노트(Evernote), 원노트(Microsoft)를 활용해 간단한 그날그날의 업무, 할 일 등을 기록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2020년 5월, 이승희 마케터의 책 '기록의 쓸모'를 본격적으로 접했습니다. 책에서 이승희 마케터는 일을 잘하기 위해 기록은 필수라 강조해요. 흘러가는 '영감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직접 운영하는 영감을 담아내는 인스타그램 계정과(지금도 활발하게 운영 중입니다 @ins. note) 함께 소개했어요.
동일한 시기에, 모배러웍스(@mobetterworks)라는 브랜드의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영상' 기록을 유튜브로 접했습니다.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의 기록이 콘텐츠가 되고 팬을 만들 수 있다니요!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시도해 봐야겠다!
그때 든 생각은, "와, 멋지다. 나도 하고 싶다"였습니다. 기록을 통해 창작하고, 자신을 더욱 단단하게 할 내공을 쌓는 행위로 보였습니다. 덩달아 개인/회사의 브랜딩도 더욱 탄탄해져 가니 더욱 멋져 보이기도 했고요.
이로서, 내가 기록해야 할 이유가 더 분명해졌어요.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노션과, 아이폰 사진첩, 인스타그램, 블로그, 나만의 노트도 하나 구입했고요.
갑자기, 나의 기록이 폭발했습니다.
[생각하기] '영감'이란 무엇일까요?
그동안 이승희 마케터는 '영감'이라는 단어로 일상의 아이디어들을 기록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일상에서 확인한 영감을 기록하기만 한다면, 필요할 때 끄집어내어 쓸 수 있는 '나의 것'이 되는 걸까요?
대흥동의 자그마한 아이스크림가게 '녹기 전에'의 사장님은 최근 그의 책 '좋은 기분'에서 '영감'과 '통찰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영감은 영'감'이고, 결국 더 좋은 아이디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통찰'력', 즉 통찰하는 힘이라는 이야기죠. 영감의 원천을 일상에서 만날 때, 그 결과물이 아닌 뒤편에 존재하는 생각의 흐름까지 파악하는 것이 더 큰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에게 기록의 쓸모가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결국엔 '나의 성장에 좋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업무에서 쓸 수 있는 힘, '통찰력'을 기르기 위함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너무 뻔한가요? ㅎㅎ
그 통찰력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있는 소비자와 솔루션 제공자를 잘 연결해 줄 수 있는 더 좋은 마케터가 된다면, 그 주변의 것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아, "돈을 잘 벌어야지, " "잘 팔 줄 알아야지, "라는 이야기를 하신다면, 그것도 맞습니다. 제가 부족한 부분이죠. 항상 귀 기울이고 있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통찰력에는 테크닉이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요행은 어디선가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마케터로 일하게 되면서 소비자의 심리, 판매자의 심리를 생각해 볼 일이 많아졌습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내가 이걸 왜 샀지?" "저 사람은 저걸 왜 사지?" 생각해 보고, 공급자의 입장에서 "이걸 왜 안 사지?" "내 거랑 똑같은데, 저긴 왜 잘 팔지?" 생각해 보아야 그 방법과 내면에 위치한 소비의 이유를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때 얻을 수 있는 통찰력은 분명 그 가치가 어마무시합니다. (중요성을 아는 것과 행동을 하는 것은 다릅니다. 꾸준함이 생명인 것 같네요)
사람은 감정으로 소비합니다. 완전히 이성적인 소비란 없다는 점에 모두들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의 마음을 돌아봐야, 그 내면 깊숙한 소비의 이유를 파악해야, 소비자가 지금 어떤 물건이나 서비스, 심지어는 어떤 '느낌'이 필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기록이 분명히 여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나의 통찰력이 놓쳐지지 않게, 기록하고, 생각해보고, 또 기록함으로써, 기존의 통찰이 배가 될 수 있는 '복리의 기적'(?)이 우리의 내면에도 발생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생각하기]
2024년 현재, 우리는 대 콘텐츠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콘텐츠 또한 '소비'한다고 표현하죠. 소비에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그것이 유희를 위한 일인지, 기술적인 능력의 향상을 위한 것인지, 이 또한 생각해봐야 합니다.
나의 콘텐츠 소비, 다른 사람의 콘텐츠 소비에 대한 이유나, 내가 소비한 콘텐츠에서 얻는 정보도 잘 기록해 둔다면, 미래의 나에겐 단순히 '도파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힘이 될 거예요.
이 영역은 사실 업무상 함께 기록하는 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 혼자 하는 기록이 아니라 함께 더 효율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기록이 필요한 것이죠. 누군가에겐 당연할 수 있지만, 스타트업에서는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경험에 비추어보면, 스타트업이 열명 남짓한 작은 규모일 때는 엄청난 기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 때도 함께 하는 기록이 있으면 분명한 이점이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방 안에 모든 팀원이 모여있고, 다 같은 관점을 가지고, 진행상황을 공유하며 업무 하기에 충분하거든요.
그러나 인원이 이 두 배, 세 배, 서른 명이 넘어가게 되면 각자 기록하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모이는 회의 시간도 만들기 어렵고, 비효율적입니다. 이 때는 함께 규칙을 가지고 기록해야 합니다.
진행 중인 업무에 있어서는 규격화된 회의록과 회의 규칙을 정하고, 업무의 목적과 목표, 측정해 나갈 상세 지표(지표는 적고 분명할수록 좋습니다. OMTM, One metric that matters. 독특한 단어 만들기를 좋아하는 스타트업 세계에서는 이렇게 부릅니다)를 정하면 됩니다.
이미 진행된 업무에 있어서는 KPT 회고든, 다른 방식이든, 회고를 통해 이번 업무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여러 시도 중 가장 좋은 결과를 냈던 안을 고르고 반복할 수 있도록 하면 좋고요.
현재 회사에서는 G suite (구글 공유 문서 도구들)와 노션을 사용해 위 사안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Slack은 휘발성이 너무 높기 때문에 업무 기록에서의 사용은 지양하고 있어요. 다음에 이 이야기도 한번 해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한동안 "대체 작가들은 글을 쓸 때 각종 인용구나 영상 매체의 기록을 어떻게 집어넣을까? 기억력이 좋아서 그럴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기억력이 좋을 수 있지만, 대다수가 저와 비슷한 평균의 사람이라 가정하면, 이것 또한 기록이 답이겠다, 싶었습니다.
나에게 통찰력을 준, 영감이 된 글, 영상, 사진을 기록해 모아두다 보면 이 기록과 저 기록이 머릿속에서 엮이게 됩니다. (이걸 기술적으로 도와주는 제텔카스텐 메모법이 있기도 합니다. 시도해 봤는데, 이것 역시 꾸준히는 어렵더라고요. 기존에 사용하던 방식이 있다 보니 그런 걸까요?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둘러보시길 추천합니다.)
사실 기록은 '어디'에 할까 보다는, 어떻게든 해 내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 말인즉슨, 나에게 가깝고 손에 닿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제가 하는 기록의 공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분명 나만의 기록 장소가 있을 것입니다. 한번 비교해 보시고, 서로 공유해 보아요.
정리된 노트 - 에버노트, 원노트, 노션
저는 에버노트에서 원노트를 거쳐 노션으로 넘어왔습니다.
가장 다양한 기기에서 지원하고, 폰트 등이 고민하지 않아도 되게 고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진이나 영상 업로드가 모바일에서 불편하다는 단점도 있습니다만, 파일과 링크, 모든 것을 붙여 넣을 수 있는 확장성이 좋은 앱입니다.
빠른 노트 - 애플 노트 앱, 사진첩 앱
역시 이번에도 연동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0년 넘게 아이폰을 사용 중인 저는 아이폰의 노트를 아이패드와 맥북에서도 동일한 형식으로 이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 기록과 아이디에이션 - TRAVELER'S notebook
결국 저는 하이브리드 인간이 되었습니다. 아날로그 기록의 손맛, '실존'하는 기록의 느낌은 우리가 전자책과 실물 책을 고민하는 것보다 더 큰 고민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스타벅스 플래너, 메모패드, 손바닥 만한 작은 노트 등 여러 노트를 저 역시 사용해 보았지만, 지난해 말 우연히 접한 Traveler's Notebook은 손에 쏙 들어오는 적당한 폭, 가벼운 무게로 어느 가방을 들고나가나 무게 걱정을 하지 않고 노트를 담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개인적인 기록들과 고민들은 트래블러 노트북을 한번 사용해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저는 가죽 커버 없이 활용 중인데요, 아주 가볍고, 생각보다 종이 커버의 내구성이 나쁘지 않아요. 물론 가죽커버가 내구성과 멋을 한 층 올려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어 구매를 고려 중입니다.
오늘도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결론은 마케터에게 기록은 쓸모 있으며, 중요한 행위라고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각자의 방식으로, 기록해나가며 성장해나가는 마케터가 되어가길 바랍니다.
[생각하기]
이번 글에서는 어투를 바꿔보았습니다.
제가 사용하기에 더 편한 말투로 쓰는게, 글을 더 자연스럽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듣기에도, 아니 읽기에도 더 편할 거라고 생각해요. 듣기 좋은 말투가 읽기에도 좋은 말투가 아닐까...
네번 째 글 '기록의 쓸모',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