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파악하기. 우리는 여기서 부터 시작했습니다
어떤 시장이 형성되려면 항상 소비자와 제품과 생산자, 이 세 가지는 필수적입니다.
특히, 사업은 '뭘 팔아야 잘 팔릴까?'라는 생산자, 공급자적인 관점보다는, 고객의 관점에서 '무엇이 필요할까?' 혹은, '무엇이 문제일까?'를 알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이제는 우리 모두 알고 있죠.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쉬웠다면, 모든 회사와 모든 사업자들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지 않았을까요? 현실은 참 어렵습니다. 우리의 관점은 직접 눈으로 볼 수도 없는 '나'에게 자꾸 향하고, '우리'의 생각에 자연스럽게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고객, 고객!'이라고 외치지만, 정작 일을 해나가다 보면 고객은 온 데 간데없고, 생산자와 제품만 남아있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진행되는 프로젝트나 사업이 실패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서비스 역시, 이 '고객'을 찾고, '고객'에 집중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소요했습니다. 특히 의료 서비스의 독특한 특성상, 서비스를 주문하는 고객이 이 서비스의 최종 사용자가 아니라는 점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우리는 어떤 고민을 했고, 저는 그 과정 중에 무엇을 익혔을까요?
먼저 말씀드리자면, 이미 제가 합류하는 시점에 회사의 사업과 서비스의 영역이 비교적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습니다. '희귀 질환'과 '유전자검사'라는 두 키워드로 아주 확실했죠. 국내에서는 이 두 가지 키워드가 메인이 되는 회사는 없었습니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두 회사 정도가 이미 시장의 오래된 플레이어로 자리 잡고 있었지만, 아시아권에서 AI 기술을 초기부터 활용해 나가는 회사로써는 유일했습니다.
스타트업으로써 니치 마켓(Niche Market)을 잘 공략했다고 볼 수 있겠죠.
그에 비해, 지금 돌이켜보면 서비스의 첫 고객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정의되어 있었습니다. 아니, 수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메시지와 서비스의 이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에는 여전히 범위가 넓었다고 해야 하겠네요.
'희귀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진단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환자들의 더 나은 삶을 만들겠다'라고 했지만, 저희 메시지를 듣는 대상은 의사, 연구자, 환자, 환자단체 등 '희귀 질환'과 '유전자검사'와 관련된 거의 모든 집단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우리의 잠재적 고객이었던 거죠.
그러나 모두를 위한 서비스, 모두를 위한 메시지는 없습니다.
회사의 Objective(OKR의 O)가 더 많은 유료 고객의 확보를 향해 방향을 돌리던 시점에, 우리는 집중할 곳을 확실히 찾아야만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고객, 우리가 집중해야 할 대상은 '의사'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대표님의 간단한 비유로도 설명이 가능한데, "환자는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도, 그 기기의 회사는 알 수 없습니다."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실, 이 것보다 훨씬 고려할 게 많고, 다른 점도 많지만, 간략하게 보면 맞는 얘기입니다)
서비스 주문의 주체이자, 이용하는 서비스의 편의성과 신뢰도, 성능을 보아야 하는 것은 의사이기 때문입니다. 서비스의 이용에 있어서 가장 Impact 있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지요. 소통을 통해 주문까지 가장 짧은 경로로 다다를 수 있는 대상이었습니다.
물론 이는 다른 대상에게도 시도하고 내린 결론입니다.
환자단체를 두드려보기도 하고, 환자들을 대상으로 광고와 이벤트를 진행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와 우리가 제공하는 가치는 딱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희귀 질환 환자 단체는 이미 진단을 받은 환자들이 구성원이므로, 진단이 아닌 그 이후의 문제(치료, 신약 개발, 금전적 지원)의 해결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환자들은 정보가 필요하고, 설득 또한 필요한 적절한 대상이었으나, 이들이 서비스를 사용하기까지는 '의사를 찾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국내외로 아직 충분한 의사 고객 네트워크가 있지 않은 한 서비스의 사용까지 이어나가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스타트업의 초기 고객을 모으는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포인트예요. 보통 좁고 확실한 대상에서, 그 너머로 확장하는 방향으로 지속됩니다.
저희 회사에 적용되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 팬을 모아 그들이 우리 서비스의 전파자가 되게 하는 것
초기에 우리는 전 세계의 의사와 유전학 연구자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며 서비스를 경험하도록 했습니다. 이들의 일부는 서비스의 이점만 취하며 떠나갔고 (우리가 생각하는 고객에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일부는 현재까지도 우리 서비스의 주요 사용고객으로 남아 서비스를 동료들과 후배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이들이 느끼는 아하 모먼트(Aha moment)를 우리도 함께 발견하면서, 우리 서비스의 강점을 전하는 메시지로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둘. 기술 수용 주기에 따라 적절한 대상을 찾는 것
회사의 서비스는 유전자 분석 기술 중에도 상용화가 더딘 최신 기술에 속했습니다. 따라서 제프리 무어의 기술 수용 주기 (Technology Adoption Life Cycle) 이론이 잘 적용되는 분야라고 볼 수 있었어요.
유전자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일부 의사 및 연구자들과 업무에서 서비스의 필요를 명확하게 느끼는 일부 소아분과 의사들이 우리에겐 선도, 초기 수용자였습니다. 그렇기에 적절한 대상이었으며,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고객'입니다.
결론적으로, 시기마다 집중해야 할 고객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업의 초기, 가장 빠르게, 임팩트 있는 성장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의사 고객에게 집중하기로 결정하고 움직였습니다. 그랬더니, 지금은 꾸준한 성장과 함께 주위의 환자들 또한 소식을 듣고 우리를 찾기 시작합니다. 자연스러운 확장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무언가 할 수 있는 시기에 왔습니다. 환자가 어느 국가, 어디에 있든 해줄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졌거든요.
캐즘(Chasm)을 넘어설 수 있는 시기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