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앉았던 아버지의 출근
해당 글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https://brunch.co.kr/@markvii/12
주말 동안 아빠의 상태는 호전되었으나 여전히 기력이 없었습니다. 밖에 나갈 엄두를 못 내셨고, 늘 가시던 성당도 가지 못하셨습니다. 성당 갔다 오면 중국집에서 같이 먹던 짜장면도 몇 년 만에 배달로 시켰죠.
5일이 지난 월요일 새벽, 아빠가 출근하셨습니다. 평소보다 10분 일찍 출근하셨고, 어머니가 차로 데려다주셨습니다. 아빠와 저는 출근 후에도 자주 톡을 하는데, 평소보다 20분 일찍 도착해 스타벅스에서 엄마랑 커피를 마시는 사진을 보내셨습니다.
엄마가 돌아오시고 나서 사실은 아빠가 병원에서 한 달 동안 쉬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직장은 아빠에게 있어서 몇 년 만의 출근이고, 일을 하지 않으면 가정에 당장 재정적 위기가 닥치니 어쩔 수 없이 출근해야 했습니다. 당장 지금 버는 월 천만 원의 수익으로도 이자를 내고 생활비를 쓰면 남는 돈이 없거든요.
오늘 아빠의 출근하는 모습을 보면서 영화 "미안해요 리키(Sorry We Missed You)"의 결말이 떠올랐습니다. 리키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배달 일을 시작하지만, 과중한 업무와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쳐갑니다. 결국, 리키는 큰 사고를 당하고, 그의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정서적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리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빚을 갚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며, 가족이 차를 막아서면서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비틀거리는 운전을 하며 배달일을 나서는 장면으로 끝이 났었죠. 유사한 상황이 저희 집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배려해 주어 회의 등은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회사 직원들이 아빠의 목소리 변화를 눈치챘고, 휘청거리기까지 하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아빠의 건강이 더 악화될까 봐 두려움과 불안이 밀려왔습니다. 다행히 쓰러지진 않으셨지만,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니 심장이 철렁했습니다.
한편, 저는 어머니가 알선해 준 편의점 알바 면접 일정이 잡혔습니다. 처음엔 8월 중으로 어머니의 지인이 새로 오픈하는 매장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어머니 지인의 지인이 운영할 예정이라더군요. 8월 중에 오픈이라 들어서 몇 주 뒤에 알바 일정이 잡힐 거라고 에상했었습니다. 당장 내일 알바 면접을 비롯하여 금요일 혹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 바로 일을 시작해야 하는 일정이었습니다. 또 낮시간에 하는 줄 알았는데, 밤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근무해야 한다는 것 역시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 밤 시간에 편의점 알바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고객 응대는 어차피 카페에 근무하면 당연히 하게 될 테니 어렵더라도 해야 합니다. 다만 야간이다 보니 취객을 상대할 위험이 좀 걱정되었습니다. 편의점 주인분도 제가 사회성 없는 건 감안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잘 대처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지금 가정의 위험성, 그리고 사회 진출에 대한 필요성을 느낌에도 잠시 주춤하였습니다.
밤 시간대 알바의 위험성과 과거의 실패 경험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가족을 위해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다만 내일로 예정된 면접은 제주도에서 오는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불가능했습니다. 다행히 편의점 측에서 일정을 미뤄주어 수요일 오전에 면접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우리 가족은 서로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빠의 건강이 회복되고, 제가 알바를 통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아빠가 이렇게 힘들어하시는데도 제대로 된 도움을 드리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어릴 적부터 늘 든든하게 우리 가족을 지켜주신 아빠께 이제는 제가 힘이 되어 드려야 하는데, 아직 그러지 못해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앞으로는 더 열심히 노력해서 아빠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습니다. 부모님이 아직도 저를 너무 어린아이로 보셔서 많은 것을 말씀하지 않으시는 게 답답하지만, 어찌 되었든 아빠가 큰 병원에서 검사와 처방을 받으시니 곧 나아지실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이 이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저 또한 더 성장하여 가족에게 힘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