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살 생일을 맞이하며
32살
결국 그날이 와버리고 말았다.
생일이 이별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야. 나이를 먹어버렸다는 사실을 꺠달았다.
나이는 단순한 숫자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 숫자가 가진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32살. 이 나이에 이르러 나는 비로소 사회의 첫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몇 달 전, 나는 생애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늦은 시작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두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120군데의 알바 지원서를 내보고 다 떨어지면서 피부로 느꼈다.
주변 친구들은 이미 정규직으로 일하며 경력을 쌓고 있는데, 나는 이제야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라도 시작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그래도 집에 있으며 부모님을 볼 때 덜 부끄럽기는 하다. 아버지에게 선물을 할 여유가 생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놓쳐버린 기회들에 대한 아쉬움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20대에 조금만 더 열심히 살았더라면, 더 많은 경험을 쌓았더라면 지금쯤 어디쯤 와 있었을까? 그런 생각들이 날카로운 바늘처럼 가슴을 콕콕 찌른다. 누구나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지만, 나는 그 무게에 눌려 조금 더 숙일 수밖에 없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32살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 직업도 없고 나이도 들어가는 내가 이제 연애를 할 수 있을까? 가끔 거울 속 내 얼굴을 바라보면 몇 년 전보다 더 깊어진 팔자 주름이 눈에 띈다. 그것이 마치 나에게 가능성의 상실을 상기시키는 듯하다.
얼마 전, 나와 닮았다고 여겼던 한 유튜버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여자 문제 때문이었다. 그의 모습이 마치 내 얼굴을 보는 듯해서, 그의 영상을 직접 보진 않았지만 세간의 이야기로 상황을 접했다.
그의 실제 연애사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서툴렀기에 그런 실수를 저질렀으리라. 그는 돈도 있고, 유튜버로서의 화술도 갖췄으며, 방송용 메이크업과 스타일링도 받았을 터다. 그런 그도 이 지경인데, 돈, 화술, 외모 모두 부족한 내가 연애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 않을까.
지난 토요일, 교대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출근하지 않았다. 나와 비슷한 연배에 직장도 있고 차도 있지만 주말 알바까지 하고 있다. 그런데 친구 결혼식을 이유로 출근하지 않았다고 사장님꼐 전해 들었다. 벌써 내 나이대의 친구들은 많이들 결혼하는구나. 슬퍼졌다.
올해 들어서는 체력저하도 눈에 띈다. 작년에는 하루에 10시간 넘도록 해도 다음날에 지장이 있지는 않았다. 사실 그때도 체력이 줄어들었다곤 느꼈지만, 지금은 다르다. 하루에 한두 시간만 해도 지친다. 눈과 손목의 피로는 원래 있던 것이지만, 머리가 아프다.
체력의 저하는 삶의 여러 면에 영향을 미치지만, 성관계에 대한 생각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한때는 바랐지만, 이제는 그런 상상 속 장면들을 실현하지 못할 것 같다. 감당할 자신이 없다.
더군다나 나는 아직 성관계는커녕 이성과 손을 잡아본 적조차 없다. 이런 경험의 부재가 주는 불안감과 체력 저하로 인한 자신감 결여가 맞물려, 미래의 성생활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진다.
걱정, 걱정, 걱정, 끝이 없는 걱정 속에 사로잡혀 있다. 병원에서는 생각을 줄이기 위한 약들을 처방해 주었었지. 얼마 전 유튜브에서도 과거, 미래에 대한 생각을 줄이고 오로지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찾아서 하라는 말을 듣기는 했다. 하지만 지난 며칠 간의 나는 움직이는 게 너무 귀찮았다. 어쩔 수 없이 출근만 간신히 하고, 낮잠까지 자버렸다. 이런 상태를 생각하면 다시 병원에 가야 하는 생각도 솟아난다.
하지만 다시 약에 의존하는 나 자신이 싫기도 하다. 그리고 사실은 귀찮음도 크다. 손 까딱하기도 귀찮은데, 병원에 다시 예약 전화를 걸어야 한다. ‘폰 포비아‘가 이런 건가 싶다. 폰을 손에서 떼지 않으면서 가장 기본기능인 전화는 쓰지 못한다니. 아이러니하다. 다시 돌아온 게 패잔병처럼 느껴져서 창피하다.
그래도 다시 31살로, 20대로, 10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시간은 거스를 수 없는 법. 어찌 되었든 나이 듦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성취할 수 없는 것들, 잃어버린 가능성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젊었을 때 못해본 연애, 놓쳐버린 취업 기회들, 시도조차 하지 못한 도전들... 이 모든 것들이 후회와 아쉬움으로 남아 가슴을 아프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