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사실 내 커피 세계는 브루잉 커피에 편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커피 관련 종사자들을 만나고 직접 일을 하면서 깨달았다. 단순히 브루잉 커피만으로는 이 넓고 깊은 커피의 세계를 온전히 품을 수 없다는 것을.
그중에서도 가장 자신 없던 영역은 바로 라떼아트였다. 브루잉 커피야 모르는 사람이 많아 설명이 좀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라떼아트가 뭔지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우리 모두 카페에서 그리고 SNS에서 그 아름다운 모습을 한 번쯤은 보았으니까.
사실 라떼아트에 자신이 없는 이유는 더 근본적인 데 있다. 어릴 때부터 손으로 하는 일에는 영 재주가 없었다. 종이비행기 하나 제대로 접지 못해 애를 먹었고, 지금도 그 방법을 모른다. 게임을 즐겨 했지만, 섬세한 컨트롤이 필요한 게임에서는 하루에 몇 시간씩 투자해도 상위 50%를 넘기기 힘들었다.
학창 시절 미술 시간은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늘 하위권을 맴돌았고, 과제 수행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선생님이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진도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내 손재주로 과연 섬세한 라떼아트를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바리스타 2급을 취득하던 시절 사진이 떠올랐다. 그때는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부어 안정화한 뒤 간단한 하트 모양을 그리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순수하고 소박했던 시절이다.
최근 바리스타들을 만나서 라떼아트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로제타, 결 하트, 심지어 백조까지… 커피를 하는 사람들에게 추출에 대한 기본 지식에 못지않게 라떼아트를 하는 것도 중요한 기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라떼아트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커피에 담긴 정성과 기술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중요한 매개체였다.
인스타그램에서 종종 카페 탐방 인증샷을 올리다 보니, 가끔 모르는 분들이 먼저 알아보고 팔로우해 주시기도 한다. 그중에는 라떼아트 전문 학원도 있었는데, 대회 경력에 열정 넘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 본격적인 일을 시작하지 않은 지금 20만 원짜리 라떼아트 과정을 수강하는 게 맞나 싶었다. 고정 수입이 50만 원뿐인 현실에서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니까. 이 돈을 투자해도 될까?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이런 고민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도 혼자 연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기본적인 우유 양 조절부터 시작해서 영상만 봐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그러던 중 그 학원에서 무료 원데이 클래스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15일 동안의 신청 기간이 있었지만, 고민이 길어졌다. 거리가 좀 멀기도 했고, 보통 원데이 클래스가 5만 원이 넘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기회를 놓치기 아까웠다. 결국 마지막 날, 나는 고민을 접고 학원 문을 두드렸다.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 대신 '지금 아니면 안 돼'라는 작은 용기가 나를 이끌었다.
---
2024.10.03
그렇게 당일이 되었다. 상당히 먼 거리이고 신청을 할 때는 오늘이 휴일인 줄 몰랐다. 그래서 가족과의 시간이 줄어버렸다는 아쉬움이 있다.
거리는 1시간이 조금 넘었다. 5호선을 타는 것도 생소했다. 도착한 지역도 거의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도착한 카페 중앙 공간에는 트로피가 상당히 많이 있었다. 예상보다도 대회를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들이었나보다.
안내받은 연습실은 아마도 이전에 음식점이었다면 주방으로 쓰였을 법한 공간이었다. 한쪽 벽면을 차지한 건 웅장한 로스팅 머신. 10kg 정도 용량으로 보이는 그 기계가 중앙을 크게 차지했다. 문에서 오른쪽 나머지 공간엔 에스프레소 머신과 각종 커피 기구들이 놓여져 있었다. 따로 테이블도 준비되어 있었고 여기에 오늘 라떼아트를 할 수 있도록 도구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총 세 명이 참여한 오늘의 클래스는, 초보자들이 대부분일 거라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만약 경력자가 온다고 하더라도 초급에 속하는 라떼아트만 할 줄 아는 바리스타 혹은 홈카페유저들이 올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고급 스킬을 다를 줄 아는 분들이 오셨다.
수업은 에스프레소 샷 추출과 스팀 밀크 제조라는 기본기부터 시작했다. 2년 만에 다시 잡아보는 스팀 피처였지만, 강사님의 세심한 보조 덕분에 금세 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차올랐다(물론 다음에 혼자 하게 되면 실수할 가능성이 높겠지만). 에스프레소와 스팀 밀크로 첫 아트를 시도한 후에는, 재료를 아끼기 위해 프렌치프레스에 넣어 다시 거품을 내는 방식으로 연습을 이어갔다. 이렇게 추출과 스티밍, 라떼아트 연습을 두 시간 동안 반복하며 실력을 쌓아갔다.
처음 시도한 라떼아트는 예상대로 엉망이었다. 그림이 위쪽으로 치우쳤고, 모양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강사님들은 인내심을 갖고 잘 한 부분을 칭찬하고 독려하면서 하나하나 조언해주셨다. 2:3이라는 이상적인 강사 대 수강생 비율 덕분에 맞춤형 지도가 가능했다.
한 시간의 집중적인 연습 끝에 드디어 기본 면 하트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처음으로 '이 정도면 괜찮은데?'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성장했다. 강사님의 끊임없는 격려와 칭찬이 큰 힘이 되었다.
다음 단계인 결 하트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손목으로 컨트롤하는 습관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강사님께서는 손목을 쓰면 무늬가 좁아져 제대로 된 패턴이 나오지 않는다고 짚어주셨다. 여전히 이해가 잘 안가고 익숙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여러번 짚어주시니 마지막에는 희미하게나마 결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만족스럽지는 않다.
두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이 끝나고 정리를 하면서, 결 하트를 완성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밀려들었다. '역시 나는 안 되는 걸까'라는 부정적인 생각도 스쳤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이것은 예상했던 실패이고,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을 처음 시도한 것이다. 결 하트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낯선 시도를 통해 나의 마음가짐도 변화했다. 그동안 불가능하다고만 여겼던 라떼아트가 이제는 도전해볼 만한 영역으로 바뀌었다. 이번 클래스는 단순한 기술 습득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손재주 없음이라는 한계를 스스로 규정했던 내가, 작은 용기로 시작해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는 집에서 꾸준한 연습을 이어가려 한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기본 하트를 그리면서 안정감을 키우고, 점차 다른 패턴에도 도전해볼 생각이다. 당장은 서툴고 불완전하겠지만, 이런 작은 시도들이 쌓여 언젠가는 남들에게 보여줄 만한 라떼아트를 그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