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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러너 Oct 16. 2024

착실한 아이

편의점 알바 두달을 넘기고

지금 하고 있는 편의점 알바는 엄마의 인맥이 아니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기회다. 한 달 넘게 120군데에 이력서를 냈다. 하지만 나를 받아주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그 수많은 '불합격'의 답변은 마치 나를 세상에서 완전히 밀어내는 듯했다. 지금도 가끔 다른 알바에 도전해 보지만, 여전히 문자 메시지는 스팸으로 가득 차 있다. 연전연패, 그 속에서 이 작은 편의점은 내게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그러던 중 뜻밖의 칭찬이 날아들었다. 엄마가 우연히 나에게 알바를 소개해 준 지인을 만났단다. 그분 말씀이 "착실한 아이를 소개해줘서 고맙다"라고 하셨다고. 엄마의 애정이 더해진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그 작은 칭찬 한마디가 내 불안하고 초조했던 마음에 커다란 위로로 스며들었다. ‘나도 잘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그 한마디에 살짝 풀어지는 듯했다.


편의점 주인아저씨도 나를 믿고 계신 듯하다. 얼마 전에는 직접 오셔서 과자 재고 관리하는 법을 꼼꼼히 가르쳐 주셨다. 주인아저씨는 또 다른 스승이기도 하다. 발주를 위해 들르실 때마다 살짝살짝 매출 이야기를 던지신다. 마치 비밀을 공유하는 것처럼 은밀하게, 하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기간별, 시간별 매출 추이부터 잘 팔리는 상품유형까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게는 소중한 경영 수업이었다. 주에 한 번은 "넌 취업하기엔 늦은 나이니 편의점을 따로 여는 것이 좋아 보인다"라고 조언하신다.


발주는 인터넷 브라우저가 연결되는 기기만 모두 가능하기에 굳이 편의점 들를 필요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구태여 들르시는 데에는 나에 대한 불신이 있는 것인지. 정말로 나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하기 위함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말씀을 해주시는 데에는 항상 감사함을 가지고 있다.


사실 사장님에겐 이 편의점이 부업에 불과하다. 이미 여러 군데의 무인점포를 운영하고 계셔서 자영업만으로도 꽤 안정된 수입을 올리고 계신다. 그런 그가 내게 편의점 창업을 권하는 건, 아마도 자신의 성공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 어린 조언일 것이다.


다행히 우리 편의점은 꽤 잘 돌아가고 있다. 요즘엔 손님들이 물밀 듯이 들어와 숨 돌릴 틈이 없다. 완벽하게 반짝반짝한 건 아니지만, 사장님의 노력이 구석구석에서 빛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더 열심히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한가한 시간보다 바쁜 게 좋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와중에 오히려 집중력이 높아지고, 시간도 빨리 간다. 물론 재고 정리와 계산이라는 단순 업무의 연속이라 '내 능력이 얼마나 성장할까'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렇지 않을까? 일하면서 쉽게 자기 계발까지 된다면, '갓생'이니 뭐니 하는 트렌드는 애초에 생기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일상이 영원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바로 길 건너편에 공사 중이던 2층짜리 식자재 마트다. 이제 그 건물의 속을 채워 넣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구체적인 개점 일자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마트가 문을 열면 우리 편의점엔 어떤 영향이 있을까. 한동안은 손님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오히려 걱정이 많을 것 같았던 사장님은 태연했다. 그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 편의점이 겉보기에는 작아 보여도 실상은 거대한 대기업의 일부라는 것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점포인 만큼, 그 힘은 결코 작지 않다. 특히 놀라운 점은 취급 품목의 다양성이다. 천 가지가 넘는 상품을 구비하고 있어, 오히려 일반 마트보다 더 폭넓은 선택지를 제공한다고 자부하신다.


가격 경쟁력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사장님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보이신다. 대기업의 강력한 유통 네트워크를 통해 대량으로 상품을 납품받고 발주하는 시스템 덕분에, 가격 면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을 거라는 설명이다. 반면, 길 건너편에 들어설 마트는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동네 마트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신다.


솔직히 아르바이트생인 내 입장에서는 편의점과 마트의 흥망성쇠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물론 이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운명공동체라고 할 순 없으니까. 월 50만 원의 아르바이트비로는 평생직장을 꿈꿀 수 없고, 사장님이 먼저 "언제까지나 알바를 할 수는 없다"라고 하셨다.


변화 속에서 느끼는 불안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조금씩 준비해 가는 것이야말로 삶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작은 편의점에서 일하며 배운 것은 일상의 변화를 직감하는 법이었다. 그 흐름 속에서 나 역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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