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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샘 Oct 26. 2023

가을 즈음에 : 우리의 가을을 세어 보아요!


행정실 앞 화단에 내려앉은 가을잎들. 가을을 세어 보아요.

통합교과 가을 시간에 가을에 대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어느 학년의 담임을 맡던지 나름의 장단점이 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비슷한 장단점의 양상입니다. 그래서 긴 시간 저학년군의 담임을 맡으며 느낀 가장 큰 장점은 '계절'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2학년의 경우 통합교과로 '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의 '봄 여름 가을 겨울' 큰 계절의 테마로 묶여서 공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계절마다 어린이들과 계절과 관련지어 국가에서 요구하는 성취 수준에 더해 교사가 많은 부분을 더 많이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지난 몇년간 계절 관련 동요들을 자꾸 쓰게 된 것도 어린이들과 공부를 해나가면서 필요에 의한 것들이 좀 많았습니다. 어린이들과 수업 시간에 배움을 실천하다보면 기존 자료들이 좋긴 한데 우리 반 사정에 딱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 자꾸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엊그제였을까요? 우리 반 어린이들과 함께 가을 풍경을 관찰하고 나뭇잎을 주으러 나갔습니다.

학교 바로 앞 논. 이제 마지막 남은 벼랍니다. 금방 추수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 근무하던 시간까지 더하면 이 학교에 모두 해서 7년간 근무하면서 분명히 행복했던 기억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새삼 이 장소와 이 바람까지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함께 가져갔던 즉석 카메라로 어린이들의 가을 속 모습을 남겨 작은 메모와 함께 교실에 걸기도 하고 가정으로도 보내드렸습니다.

10살 먹은 즉석카메라입니다. 물건을 고장 안내고 오래오래 참 잘쓰는 편입니다.

10여년전 전에 우연한 기회로 즉석카메라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카페 같은 곳에서 이벤트 같은 걸로 몇번 찍어본 적은 있어도 이걸 교실에 두고 활용할 생각을 못했는데 동학년 선생님께서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과는 다른 느낌이 있다며 소소하게 즉석 카메라로 어린이들의 모습을 남겨 주시는 모습을 보고는 그 느낌에 반해 함께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배울 것 투성이입니다.


그러곤 함께 나뭇잎도 줍고 흥얼흥얼 가을 노래도 하며 학교 주변의 가을을 만끽했습니다.  원래 학교 주변의 자연 환경이 참 예쁜 곳인데 가을에 어린이들과 나서보니 세상에 이렇게 예쁜 곳이었구나 다시금 실감했습니다.

가을 하늘에 풍덩 빠진 우리 학교랍니다.

나무들이 예쁘게 서 있는 학교 운동장 둘레길을 어린이들과 함께 걷습니다. 뭐랄까 그냥 이렇게 가을가을한 날씨엔 걷기만 해도 행복하더라구요. 아직 2학년인 어린이들이라 제가 낭만 가득한 대사를 날렸지만 선생님의 이야기에는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하늘 나는 잠자리와 여기 저기 예쁜 빛으로 떨어진 나뭇잎에만 관심이 가득할 따름입니다. 괜찮습니다.

지난 6월 통일교육 행사로 만들어둔 전교생의 바람개비들이 가을 정취를 더해줍니다.

어제는 가을 햇살 치고는 바늘처럼 따가웠던 날이었는데 학교 텃밭에서 고구마를 캐던 날이었습니다. 고구마를 캐러 장갑을 끼고 학교 텃밭으로 향하면서 고구마를 가득 캐올 생각을 했는데 실상은 이렇게 다이어트 한 것 같은 날씬한 고구마들만 가득했습니다. 생각해보니 따로 고구마를 위해서 해준 일이 별로 없어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미안한 마음도 잠시 맛있게 찐 고구마를 함께 나누어 먹었고 참 맛있었다는 후기를 남겨봅니다.

울룩불룩 고구마. 보이지 않아도 알고보면 친구들이 참 많다고 박구슬 선생님께서 노랫말로 알려주셨어요.

어린이들과 계절을 함께 누리며 계절이 주는 분위기와 생활의 모습들을 함께 살피는 시간들은 어린이들의 배움이기도 하지만 긴 시간을 살아내는 어른들이 참 누리기 어려운 일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종종 제가 써내는 글들이 학교의 일상을 너무 평온하고 아름답게만 그려내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됩니다. 또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구요. 세상이 온통 어려움 가득한 학교의 이야기로 가득한데 말이죠.


그런데 우리 사는 일들이 그렇듯 저 역시 학교라는 곳에서 어린이들과 배움을 실천하며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기에 같은 어려움, 같은 크기의 고민들이 가득합니다. 이제 교직 20여년을 넘긴 교사이지만 아직 출근길엔 하루를 살아낼 일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아침 마다 영혼을 차분하게 해주는 음악을 들으며 차를 운전해오며 하루를 스케치해봅니다.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살아낼까, 어떤 색으로 칠해야할까 생각해보며 교문을 지나옵니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여도 매일매일 참 버겁습니다. 어느 날인가 정말 버거운 날이었는데 교장 선생님께서 스치듯 해결책을 주셨습니다.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것들은
종종 모자이크 처리를 해버리시게.

처음엔 웃음이 났는데 생각할 수록 명언이자 지금 제게 딱 맞는 해결책이더라구요.


학교라는 공간에는 어린이들, 교사들 그리고 우리의 교육 활동들을 도와주시는 많은 교직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공존하며 '교육 가족' 또는 '교육 공동체'라는 말을 매일 하고 살고 있지요. 그럼 우리는 정말 간단하게 생각해보면 됩니다. 가족들끼리 어떻게 해야하는지 말이죠. 행복한 가족은 가족 구성원이 각자의 역할을 해내며 행복할 수 밖에 없는 노력들을 서로 기울이고 있습니다.


가을 풍경을 보러 나설 때는 마침 가을 구경을 나서던 1학년들과 함께 했고, 고구마 캐는 일은 벌써 담당 선생님과 여러 행정실 선생님들께서 미리 고구마 밭을 정리해주셔서 전교생이 나서서 정말 캐기만 했지요.


밖으로 보이는 일들은 아름다워보일지 모르겠지만 아름답게 보여지는 이면에는 많은 분들의 수고와 노력이 숨어 있습니다. 그걸 아는 일이 바로 그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첫시작일 겁니다. 내가 애쓰는 만큼 다른 이들도 그러고 있다고 인정하고 알아주다보면 언젠가 나의 노력과 애씀도 알아주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물론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그 정도 경지에 이르려면 큰 일 많이 겪어봐야 하고 크게 깨우쳐야 해서 참 어려운 일입니다. 중요한 건 내가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못하는 건 아니라는 점만 인정하면 되는 겁니다. 나는 못해도 누군가는 할 수 있고 그러고 있다는 것만 인정해주면 됩니다. 왜냐하면 살면서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꿈만 꿀 수 있는 건 아니고 그런 과정 속에서 스스로의 성장이 있고 성취가 있으면 또 그걸로도 충분하니까요.

학교 근처에 있는 코스모스 꽃밭이에요. 노랫말이 나오고 멜로디가 나오지 않겠어요?

이 가을에는 다른 것 생각 않고 하나 둘, 셋, 넷. 나만의 가을을 세어 보고 싶습니다. 이제 남은 나의 가을 날들 중에 이제껏 있었던 어느 가을보다 더 뿌듯한 가장 젊은 날의 가을이자, 낭만 가득한 이 가을을 말이죠. 이 이야기를 우리반 친구들에게 했더랬는데 앞서서 말씀드렸듯이 하늘 나는 고추잠자리와 예쁜 낙엽에 파란 하늘로 사라져버렸죠.


좀 복잡한 일이 있더라도 잠깐 접어두고 가을을 세어 보세요. 내년엔 다시 오지 않을 올해의 가을이랍니다. 


2023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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