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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롱피치 May 04. 2023

엄마를 살린건 책이었다

책 읽는 가족의 탄생



나는 매일 책을 읽는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매일 책을 읽는다.

내가 책에 이렇게 집착하는 이유는 단 하나, 책이 나를 살렸기 때문이다.


-


책은 나에게 밥통 같았다. 딱딱한 쌀을 부드럽고 고소한 쌀밥으로 바꿔 존재.  내 입과 눈을 즐겁게 해주는 촉촉한 쌀밥을 만들어주는 존재. 새 하얀 쌀밥을 한 입 먹고 나면 허기졌던 나의 몸과 마음이 채워지고 따뜻하게 나를 감싸준다.  한 그릇을 다 먹고 나면 든든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의지가 생긴다. 물론 책 한 권을 읽고 나서도 그렇다.  나에게 책이 밥통이라면,  글밥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래서 안 먹고는 못 배기게 하는 하얀 쌀밥 같은 것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던, 책을 전혀 모르던 책바보였다.  

맞벌이인 부모님 덕에 나는 학교를 마치고 오면 늘 혼자였다. 그러면 과자,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서 티브이 앞에 앉았다. 하루종일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밤에 부모님이 돌아오셨고 저녁을 먹고 티브이를 보다 잠자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당연히 공부는 나의 관심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고 성적은 항상 바닥에 머물렀다.


어느 날,  시험을 치고 나서 선생님이 따로 나를 불렀다.  성적이 이게 뭐냐고 왜 이렇게 시험을 못 쳤냐고 다그치셨다. 항상 공부를 못했는데 선생님은 왜 날 불러서 이렇게 물어봤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이 나만 조용히 부른 건 내가 반에서 꼴등을 했던 것 같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그 말 한마디에 펑펑 울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멍청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그냥, 아쉬움만 남는다.


왜 그때 나는 책을 몰랐을까?  


그때 내가 뭔가를 깨닫고 책 한 권만 읽었더라면,  그 선생님이 '성적이 이게 뭐냐고' 다그치기 보다 나에게 책 한 권을 권했더라면.  엄마가 내 이야기를 듣고 나에게 책을 한 권을 사주고 읽어 줬더라면.

아마 이러한 후회와 한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책에 집착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중학생이 되어서 무슨 마음이었는지 공부를 잘하고 싶었다. 공부 때문에 무시받던 내가 싫었다.  워낙 기초가 쌓이지 않는 상태에서 요령 없이 혼자 공부하다 보니 성적은 잘 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죽도록 공부했지만. 뭐가 문제였는지 늘 중상위권에 머물러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나보고 '돌대가리'라고 했다. 너처럼 공부하면 전국 1등 하겠다고 비아냥 거렸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난 돌대가리였다.


<공부머리 독서법> 라는 책에서 중학생 때만이라도 책을 읽으면 문해력을 상승시킬 수 있고, 문해력이 상승하면 적은 양의 공부만 하더라도 성적이 쉽게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워낙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기본적인 문해력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매일 코피를 흘리고, 스트레스로 일시적으로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성적을 쉽게 올릴수 없었던 것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시절의 그토록 공부를 잘하고 싶었던 나는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할 것 같은 시한폭탄 같았다. 죽을 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때의 내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지 않았을까?  그때 조금이라도 공부를 했기에 현재의 내가 있고, 성장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앞으로 평생, 그토록 공부에 미쳐서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분명 지금 책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때 책을 많이 보지 못해 후회한 요소가 작용했다고 확신한다.


그 후, 성적에 맞춰 보건계열로 진학했고 대학생 시절 내내 꿈이었던 초음파실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실습 가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했다. 아이가 생겼다.  체력이 약하고 누구보다 예민한 초보엄마는 아이를 낳고 5kg이나 빠졌다. 아이가 잠을 36개월까지 자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일밤 잘 자다가 자지러지듯이 우는 것이 반복이었다.  잠을 못 자니 우울증이 올 것 같았다.


그래도 잘 이겨 냈다. 둘째가 태어났다. 첫째보다는 잠은 잘 잤지만, 조금만 불편하면 밤이건 낮이건 소리 지르고 우는 탓에 정신이 너덜너덜 해졌다. 목소리는 또 얼마나 큰지, 좁은 집이 쩌렁쩌렁 하루에도 수십 번 울려 퍼졌다. 처음에는 우리 아이가 많이 불편하구나 달래주고 안아줬다가 6개월 넘어가니 나도 모르게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어느 날은 아이가 울자 나도 같이 소리 지르고 울었다. 아이는 놀랬는지 더 자지러지게 울었지만 내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았다. 그때 부터였다. 나는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지르면서 울었다. 어떤 날은 이불을 쓰고 울기도 했고 어떤 날은 미친 여자처럼 방방 뛰면서 울었다. 그래야 살 것 같았다.


우연히 옆집 아저씨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엄마가 왜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지,  도대체 이 어린 아기가 얼마나 큰 잘못을 하면 어른이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나는 너무 부끄러워서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고 정신병자 같았던 내가 싫었다.


그날 이후,  아이를 보고 있는 내 모습이 혐오스러웠다. 괴물 같은 엄마가 아이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불안했을까. 아마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건. 나는 인간이 아니다고 생각하게 된 건... 죽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 건...


그 후, 심각한 무기력증으로 아이들은 TV만 켜놓고 방치해 둔 채 누워서 울기만 했다. 우울증이 정말 무서운 게 누워서 우는 것 밖에 하지 못 하던 내가, 아무 쓸모없는 쓰레기 같은 내가 죽어야겠다고 생각하니 귀신이 홀린 듯, 벌떡 일어나 미친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평소에 비싸서 잘 입지 못한 아끼던 원피스를 입고 죽고 싶었다. 울면서 옷을 갈아입고 남편의 몇 없는 넥타이를 옷장에 걸었다. 옷을 갈아입고 의자를 가지고 오는데 TV를 잘 보고 있던 아이들이 갑자기 내 다리를 붙잡고 소리를 지르면 우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은 엄마가 수상한 짓을 하려는 것을 눈치챈 걸까? 내가 이성을 잃고 울고 있어서 그랬을까?


 아이들을 뿌리치고 죽으려고 의자에 올라서서 목을 매려고 했을 때 아이들이 보였다. 발 밑에 있는 아이들에게 나의 마지막 장면을 보여주는게 맞는 걸까? 울면서 나가라 발길질에 소리 쳐도 아이들은 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 이 아이들, 엄마 없이 자랄 이 아이들이 과연 행복하게 잘 자랄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미치니 아이들이 불쌍해서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결국은 아이들 때문에 죽지 못했다. 아니 아이들 덕분에 죽지 못했다.  죽으려고 올라섰던 의자 아래서, 아이들을 안고 엉엉 울었다. 지금도 그 의자만 보면 그날 생각이 난다. 그 의자에 앉으면 그날 생각에 나는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리고 그날 입었던 원피스는 다음날 의류수거함 버렸다. 다시 그 원피스를 입는 날엔 그땐 정말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렇게 살아서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 볼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한다. 그때 내가 죽었으면 우리 아이들의 삶은 어땠을까?


 그 사건 이후로 정신과 치료를 결심했다. 예전부터 주위에서 병원을 권유했지만 이전에는 삶의 의미도 없었고 살아야 하는 의지도 없었기 때문에 치료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죽으려 하니 아이들이 눈이 밟혔다. 아이들을 위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무서운 병을 꼭 고쳐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를 살린 건 단 하나, 책이었다.



 아이들은 친정 엄마에게 맡기고 남편과 병원에 갔다. 여러가지 검사를 했고 의사와의 상담은 아주 짧았다. 수 십만원이 나왔고 돈이 아까웠지만 다음 예약을 잡았다.  병원 다녀오는 길에 우연히 엘리베이터에 아파트 도서관이 오픈했다는 벽보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들린 도서관은 한 달에 한 번 신간이 들어온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럼 그냥 책이나 한번 읽어볼까?'  


그때부터 일주일에 두세 번 소설을 빌려 읽기 시작했다. 한두 권씩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사는구나,  그런데 이 사람들은 왜 이런 생각을 하지?'라는 유의 사고를 가지게 되었고 그때부터 나의 삶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이들을 낮잠 재우고 누워서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책을 읽는데 갑자기 내가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고 있는 바로 내 모습, 맞다. 바로 몰입이 시작된 것이다. 그때 아이가 깨어나도 보는 둥 마는 둥, 남편이 올 때까지 책을 읽고 있었다. 집은 엉망진창, 아이들은 방치된 모습.  남편은 놀랐지만,  그날 내가 울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눈이 초롱초롱 신이 난 얼굴이라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내가 그때 읽었던 소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죽음>이라는 책이다.  정말 역설적이게도 나에게 처음 몰입의 즐거움을 줬던 책의 제목은 '죽음'이었다.


내가 내 삶에서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바로 몰입이 아니었을까? 나에게 처음 몰입의 세계를 알려 준 것은 바로 책이었다.  황농문 교수님의 <몰입>이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몰입에 뒤이어 오는 행복감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행복을 정복하는 법은 바로 몰입에 있었고 나는 그 행복을 책에서 배웠다.


 그때쯤 읽었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것은 신경숙 작가님의 <엄마를 부탁해>, 법륜스님의  <엄마 수업>이었다.


 <엄마를 부탁해>를 보면서 자식은 부모에게 이런 존재구나. 하며 대성통곡을 했는데 우울증 걸렸을 때 제일 고생했던 친정엄마가 생각이 많이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륜스님의 엄마 수업>을 읽고 '아이는 태어나서 엄마에게 사랑받을 권리가 있고, 엄마는 일단 아이를 낳으면 아이를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말이 어찌나 나를 찔리게 하던지 책을 읽으면서 얼굴이 벌게지기도 했다.


 그 후 읽었던 윤우상 박사님의 <엄마 심리 수업>에 나오는 이 말을 가슴에 새겼다. ' 살아만 있으면 100점짜리 엄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얼마나 안심했는지 모른다.  '내가 살아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내가 그때 죽지 않고 살아서 아이들에게 100점짜리 엄마가 될 수 있겠구나' 하면서.



나는 그때부터 달라지기로 마음먹었다.



 육아휴직을 다 쓰지 않고 회사에 복직을 했고 육아를 하면서 그때부터 일주일에 3권씩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직도 성공을 했다. 내가 책 읽기 전 다니던 회사는 풀근무로 일하면서 업무 강도도 높아 집에 오면 항상 녹다운이었고 인간관계도 힘들어 밤만 되면 불면증에 시달렸다. 현재는 9시부터 1시까지만 근무하고 아주 여유로운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연봉은 50% 이상 인상되었다. 나는 그즈음 상담 치료도, 약물 치료도 모두 끊게 되었다.


 아무 이유 없이 내가 이렇게 성공적으로 병을 치료하고 이직을 할 수 있었을까? 세상에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거짓말 같지만 나는 이게 전부다 책 덕분이라 확신한다.


내가 인생을 다시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책이다. 난 그때 죽었고 지금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다.  책 덕분에 우울증도 치료했고, 이직도 했고, 성격도 긍정적으로 변했다.


인생은 늘 후회의 연속이다. 내가 만약에 초등학생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면, 아니면 중학생 때 만이라도 나를 바꿔줄 단 한 줄의 글을 읽었다면 나의 삶은 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그 누구보다 예민했던 내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육아를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내가 미리 책을 알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잘난 내 덕이라 생각했을 것이고, 책의 소중함을 아마 끝까지 몰랐을 것이다.


나는 책을 읽지 않았던 남편에게도,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책을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고 우리 가족은 매일 저녁 함께 책을 읽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내 주위 엄마들과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는 책 전도사가 되었다.  


나는 언젠가 작은 도서관을 설립해 아동학대를 당하거나,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도와 주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 생각한다.  그 누가 됐든 가난해서 어릴적 나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게 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책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는 독서 운동가의 삶을 사는 것이다.  


나는 책으로 그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

그리고 이 글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것이라 나는 믿는다.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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