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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있나요? 왜 그랬나요?

사람이 한순간에 그렇게 차가울 수 있구나

by 마르쉘

삼성생명 홍보실장'으로 있던 '인ㅇㅇ'이라는 사람이

내가 있던 우리 홍보실 실장으로 왔다.

헤드헌터의 적극 구애를 받고 한컴으로 오게 되었다.




우리 홍보실은 세 가지 파트 영역의 전담업무를 가지고 있었다.

언론홍보, 광고, 그리고 웹&온라인홍보였다.

그중에 내가 책임지고 담당한 파트는 웹&온라인홍보 파트였다.

온라인 홍보뿐만 아니라 웹사이트... 그러니까 웹마스터도 역할도 병행하며 홈페이지 운영도 담당하였다.


국민 워드프로세서인 '아래아한글'이나 오피스 프로그램을 만들고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IT기업이기도 하지만, 고객대상 교육도 해야 하고 서비스도 해야 하는 기업이다 보니

당연히 고객들은 자신들이 구매하고 설치한 '아래아한글'이나 오피스 프로그램의 문제,

또는 심각한 버그가 발생하면 한컴 홈페이지를 통해 클레임이나 CS를 접수하였고...

나는 그 접수한 불평불만 에러 버그.. 등등 CS 사안을 가지고 올빼미족 개발자들이 모여 있는...

신제품 출시 때마다 밤새 근무하고 낮에는 자는.. 그래서 늘... 좀 어두컴컴한 프로그램 개발실에도 가야 했고,

허구한 날 고객들의 욕을 직원들이 전화로 다 받아내고 삼켜야 해서 언제나 신경 날카롭고 예민하고

좀 우울할지 모르는 직원들을 위해 창도 넓게 하고 언제나 사무실을 밝게 밝히고 있는

고객지원실에 가서는 고객의 CS건을 전달하고 빠른 해결을 종용하고 지시하는 입장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떨 땐 개발실장과.... 어떨 땐 고객지원실장과도 마찰을 빚고 하다가

또 누그러지고 또다시 마찰 빚다가 누그러지고.... 그러는 게 일상 다반사였다.


물론, 업무 때문에 그런 거지.. 그 사람들과 술이나 밥도 같이 못하겠다는 그런 정도

'꽝꽝' 냉각된 그런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월요일 아침..

그때가.... 점심시간이 어느 정도 가까워 오고 있었으니 한 11시 정도 되었을 것 같다.

'고객지원실장'이 얼굴이 불그락 푸르락 해가지고는 우리 홍보실로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리고는 나를 불렀다.


"강 과장님~~~~!!"


"네? 안녕하세요? 저요? 무슨 일...."


내 책상 옆자리로 와서 파티션 위에 한 팔을 걸터 올리고 기대어 서서는

대뜸.. 따지는듯한... 많이 화가 난 듯 한... 그런 말투로 말을 한다.


"아니... 강 과장님이 '대형 사고' 친걸..... 왜 우리 직원들이 고객들 총알받이를 하고 있게 만드세요?

강 과장님이 사고 친 거 아니에요??

아니... 사고를 쳤으면... 아니지, 그래서 우리가 월요일 아침부터 고객들 총알받이를 하게 생겼으면...

미리 무슨 언지라도 주던가... 아니면 고객들에게 답변이나 안내라도 하게

미리 답변 FAQ를 만들어 주던가 하는 거 아니에요?..... 네??"


하면서 정말 화가 점점 폭발하고 있었다.


더욱이 고객지원실장은 여자분이어서 특유의 히스테리 같은 격앙된 카랑카랑 한 목소리가

우리 홍보실안의 허공을 떠다녔다.


나는....

안 그래도 나는 지난 주말 동안 집에서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게 되게 찌운했는데....

왜냐하면.... 개발실로부터 받은 패치파일이라는 게...

파일명에 날짜가 같이 적혀 있어서...

이 파일이 맞나... 싶었지만, 약간의 귀찮음이 한편으로는 "에이... 설마~~~ "

하고 파일을 그냥 등록해 버렸다.


그런데 설마가 아니라 정말로 사고가 터진 거다.

고객지원실에는 월요일부터 고객들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클레임이 밀려 들어오는 사고가 터진 거다.


결론부터 말하면 '패치파일'을 잘못 등록한 것이다.


'패치파일'을 잘못 등록하여 아래아 한글프로그램 자체에 치명적 오류가 발생하여

월요일 아침부터 고객지원실에 고객의 문의와 항의가 빗발친 것.

그것 때문에 아주 시끄러웠다.


사무 업무라든가.. 각종 생활과 여러 업무를 편리하게 할 수 있게 해주는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라는 게 원래...

출시할 때 미처 발견하지 못한 버그라든가,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게

정기적 비정기적으로 패치파일을 제공을 한다.


이는 컴퓨터에 사용되는 여타 다른 프로그램도 모두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패치파일'이라는 게... 개발실에서 업데이트 계획과 배포 일정을 회사 내부적으로 공지하고,

나는 그 공지를 참고하고 있다가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패치파일 업데이트 업로드 예정일에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게시판에 공지룰 하고... 홈페이지 내 다운로드 자료실에 게시판에도

한번 더 게시룰 한다.(그 해당 패치파일은 파일형태로 미리 넘겨받는다)


우리 홍보실장이 나를 따로 불러 얘기를 한다.


"강 과장님이 생각할 때... 자신의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볼 때는 개발실이 약속을 안 지켰기 때문에 이 모든 사태가 발생했다고 본다..

강 과장님이 억울한 부분이 있고 오히려 개발실에 책임을 묻고 싶다면...

그리고 누군가 징계를 받아야 한다면 내가 개발실장을 찾아가서 치열하게...

처절하게 개발실장과 싸우고 오겠다..." 한다.


그날 오후에 결국에 가서.... 나의 억울함이 풀렸다.


파일을 다운로드 자료실에 올린 것은 내가 맞으나 개발실로부터 자료파일을 받았고,

사실 실제로 그 파일은 파일이 아닌 새로운 버전을 개발 중에 있었던 베타 프로그램의 패치파일이었다.


내가 잘못 올린 것이 아닌 개발실에 파일을 혼동하여 나에게 전달한 것.

그 상황도 모른 채 자초지종을 파악하지도 않은 채 고객과의 최우선 접전공간인 홍페이지의 담당 운영자가

잘못된 파일을 공지했다고 탓하며 고객지원실실장은 나를 잡아먹을 듯 덤벼들었던 것이다.


그냥 안 넘어가겠다고.... 문제 삼겠다고... 인사팀에 말해서 징계위원회에 넘길 거라고...

험한 말도 나오고 하던 차에 이 광경을 지켜보던..... 우리 새로 온 홍보실장이 나섰다.


일은 일이고 나쁜 일이고 무조건 사람을 협박이나 겁박부터 주는 건 어디서 배워먹은 짖이냐라고 몰아치고 '고객지원실장'을 돌려보냈다. 무조건, 강 과장(나)한테 사과를 하라고 하고 돌려보냈다.


그런 일들이 있었다.

그때도 나를 믿어주고 무조건 내편이 되어준... 사람이 있었다.




이제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러갔고 아득한 기억처럼 느껴지지만,

여전히 내 마음 한구석에는 그 인○○ 실장님과의 소중한 순간들이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다.

실장은 내게는 단순한 상사 그 이상의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다른 부서의 장이 우리 부서 직원의 실수와 잘못에 대한 추궁을 하게 될 때 설사, 우리 직원의 실책이 있었다고 해도 우선 우리 직원의 편에 먼저 서서 우리 홍보실 직원의 방패막이... 바람막이가 되었던 실장.

늘 가장 먼저 우리 부서직원 편에 서서 굳건한 바람막이가 되었다.


홍보실 직원들을 항상 가족같이 대해주고 각 가정에 어려운 일이 발생했을 때 실장이 할 수 있는

최대한 권한으로 편의룰 봐주었던 실장...


큰애가 태어나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을 때 하루에 딱 한번 있는 면회를 위해 업무 시간에 다녀올 수 있게

배려해 준 실장.


자신은 운전을 못한다며 실장급에게 나온 정기 주차권을 매달 나에게 넘겨주며 웃으며"

나도 가끔 태워줘야 돼~" 하던 고마운 실장.


홍보실 워크숍은 잘 놀고 잘 뭉치고 오는 게 목적이라며 워크숍 보고서는 자기가 쓰겠으니...

우리 홍보실 직원 다 같이 강원도 강릉 속초에 가서 1박으로 쉬다 오자고 선동하고 진짜로 이행을 했던 실장.


워크숍은 이름뿐... 여섯 명이던 우리 홍보실 식구들은 그냥 여행을 즐겼다.


나의 큰 아이 돌잔치를 바로 코앞에 두고 원치 않는 퇴사로 회사를 나가게 되었을 때,

사직한 직장 동료 직원들이 많이 와주지 않으면 돌잔치 분위기 아주 조용할까 걱정이던 때,

돌잔치 당일날 전 직장의 여러 부서 직원들까지 몽땅 끌고 와서는

돌잔치 분위기를 아주 신나고 즐겁고 재밌고 난리난 집으로 만들어 주었던 실장.


내가 다른 직장을 다니면서도 이직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마다 퇴근 후 소주 한잔 같이 하며

"치열하게 같이 고민해 보자" 며 내 고민을 잘 들어주던 실장.


헤드헌터를 통해 더 크고 좋은 그룹 홍보실장으로 가게 되었다고 같이 기뻐해줄 거냐며

먼저 전화를 해오던 실장.


홍보실에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이 다 회사를 나오고 각자 또 다른 직장을 다니면서 정기적이지는 않아도

OB모임을 만들어 가끔 다 함께 좋은 시간들을 함께 한 실장.


사람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매주 한 권씩의 독서를 하던 실장.


그렇게 매사 모범이 되고 귀감도 되던 참 친절한 친구 같은 실장이었다.


실제로 나와 인ㅇㅇ실장은 나이가 동갑이었다.

명문 K대학을 나온 만큼 화려한 경력을 쌓아서 현재 위치까지 왔지만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단지, 자기가 생일이 빠르다고... 3월이라고.... 나보고 '형님'이라고 우수개...라고 하던 편안한 사람.


겸손하고 솔선 수범하며 살고 있는 사람.. 실장.(나는 지방대를 나와서 과장)

그렇게 우리는 사이가 돈독했고 가끔 OB모임처럼 만나서 소주 한 잔 마시고..

마치 회사 회식하듯이.. 2 차가서 맥주 마시고 3차는 라면 어묵 먹고 헤어지곤 하던...

그런 만남을 지속해오고 있었다.





2023년 3월....

강남역 부근의 어느 부대찌개 식당

그동안... 몇 번이고 OB모임을 갖자고... 갖자고... 했지만 각각 일정들이 다 바쁘고....

누구는 직장이 너무 멀어서 퇴근하고 오면, 약속시간 지키기가 힘들어서 안된다 하고..

그러니 주말에 보자 하고... 주말에는 다 못 모이고....

그런데 내가 가장 바쁜 것 같다고 나 때문에 OB모임 성사가 안된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런 것 아니라고... 말할까 하다

그냥 일정을 잡고 이번엔 둘이 됐건.. 넷이 됐건 한번 만나자 하고 몇 날 며칠에 강남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분위를 보아하니,

결국 요번 모임에 나올 사람은 '인ㅇㅇ실장'과 함께 홍보실에 있었던 영식 대리 (지금은 차장) ,

그리고 '나' 이렇게 셋 뿐이었다.


회사사무실이 여기 '강남역'에서 몇 정거장 되지 않는 '도곡역'에 있는 ㅇㅇ실장에게서

"아주 쪼금 늦는다"라고 '카톡'이 왔다.

금방 마무리하고 갈 거고 대학 후배가 만나자는 거 뿌리치고 우리 보러 갈 거니까 쪼끔만 기다리고..

먼저 먹고 있으란다.

우리는 알았다고 빨리 오라고 했고.... 시간이 한 20분 지났나?


인ㅇㅇ실장에게서 카톡이 왔다.

우리셋만 있는 단톡방을 열었더라..


출발했다고...

급하게 뛰다가 지하철역에서 넘어질 뻔했다고....


나는... 반가운 친근감에 "아까비~ 보낼 수 있었었는데..ㅋㅋㅋ"라고 톡을 보냈다,

농담으로 장난을 쳤으니 가벼운 농담의 문자정도 '카톡~' 하며 날아오겠지 싶었다.


"이 사람들이.... 예의가 없네"라고 카톡이 왔다.


장난인가 싶었는데.. 예의가 없다는 톡 메시지를 남기더니...


오지 않겠단다.


참석하지 않겠단다.


아까 후배가 밥 먹자고 한 거 취소했었는데 다시 약속 잡아서 거기 간단다...

우리 둘이 밥 먹고 술 마시고 헤어지든 말든 하란다.


영식 대라가 "장난치지 말고 얼른 오세요"라고 톡을 날렸다.

'교대역'에서 3호선 열차로 갈아다러 가는 사진을 보내왔다.

다시 말해, 강남역은 이미 지나친 거였고... 그 카톡메시지는 '농담'이 아닌 '진담'이었다.


미안했다고 진짜 후배님 만나러서 가는 거냐 물었더니.......


대답이 없다.....


문자를 읽었는데....

대답을 안 한다...


계속.......


우리는 둘 다 잠시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아마 농담에 마음이 좀 상했나 보다.... 하고 우리 둘이 위안을 하고 있다가

'그거 가지고 사람이 그렇게 나오는 건 또 뭐냐고 흉도 보고 하다가...

결국,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도 연락도 카톡도 전화도 없었다.


아마도 그동안 서로 친구였던 카톡도,, 페이스북도 다 '친구관계'를 다 끊은듯했다.


기분이 묘했다.


그렇다면.... 여태껏... 지금까지 수년동안을 내가 그 사람한테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어서

자기를 대해주기를 바랐던 것인가?


"예의가 없다니.."


정겹도 친구 같고 따뜻하고 배려신 깊어서.. 비록 동갑이지만 존경까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히려 나에게 "예의가 없다"는 말을 남기고 갑자기 느닷없이 연락울 끊어버리고 인간관계도 다 끊어버리는

그 사람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예의를 갖춰서 대해야 했던 사람인가?"


" 나에게 그런 대접을 받고 싶었나?"


계속 이런 생각만 들었다.




그 일이 있은지 2년이 지났다.


그리고 어제... 그날이 생각났다.


인ㅇㅇ실장님아!~ 잘 지내고 있는지..


내가 많이 경솔했었다는 생각이다.

편하다는 이유로 정말이지 예의가 없게도 하진 않나 하는 생각들이 든다.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그때 왜 그랬을까?


왜 별안간 아주 갑자기 사람사이의 이별을 택했을까?..... 하는 생각이 다시 든다.

계속 인간 간계를 유지해야 함을 생각할 때..

어차피 일로 만난 사람들이라서 의미 없고...

언젠가는 흐지부지 안 보게 될 사람사이라고 생각을 했을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도 그런 생각이 들고 있는데 말이다.)


허무하지만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끝'은 있는 건가 싶다.

경솔함이나 편안함에서 오는 인간 사이의 '끊어짐'이라는 불편함 감정을 생각하게 된다.


잃고 싶지 않은 사람들...

나는 그 속에 있을까?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지만...

지금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지만...

그렇게 추억을 꺼내었다가 다시 묻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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