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돈/혼/집/물/불/별/일/쉼/밥/똥/낮/밤/잠/피/숨 ...
숫자 세기를 좋아하는 우리 아들은 1을 꼭 ‘엄지 척’으로 세야 한다고 주장한다. 5개 손가락 중에서 그냥 하나만 들면 1이라고 알려주었지만, 1은 엄지로 3은 가운데 3개로 해야 한단다.
자기가 생각해도 엄지가 제일 대장 같아 보였을까. 이름이 외자인 아들에게 ‘네 이름은 엄마가 지었단다. 엄마가 산을 좋아해서, 산 같은 사람을 좋아해서, 꼭 너도 그런 사람이 되라고.’
말해 주었다. 아이는 그 사실을 꽤나 흡족해하는 것 같다.
너를 만나기도 훨씬 전에 너를 만날 생각 같은 것도 아예 하지 못 했을 때부터 엄마는 이다음에 아들을 낳을거고 그 아들의 이름은 ‘산’이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말은 구태여 하지 않았지만.
산이를 비롯해서 인생에 정말 중요한 것들은 한 글자로 된 것이 참으로 많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몸/돈/혼/집/물/불/별/일/쉼/밥/똥/낮/밤/잠/피/숨 등
이 중에 제일은 혼이고 다음은 몸이며 그 다음은 일 또는 돈, 집 그런 순서일테지.
정말 사랑하는 시인 ‘심보선’님께서 <오늘은 잘 모르겠어> 시집을 출간하고 하신 인터뷰에서(100퍼 정확한 건 아님) 이런 말을 하셨다. 외진 동네 어떤 허름한 식당에서 한 남자랑 한 여자가 다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아줌마가 아저씨한테 ‘야 이 인간아 너 때문에 내 영혼이 망가질 거 같아...’ 라는 류의 말을 했단다. 그때 시인은 영혼과 그토록 안 어울리는 곳에서조차 말하자면 고등어백반이나 순두부찌개가 놓이는 그런 곳과 같은 시공간에 ‘영혼’이란 단어가 놓여 있음에 놀랐다고. 그건 놀라움일까 아니면 일종의 안도감일까. 만약 나였다면 안도감 같은 걸 더 느꼈을까.
아이를 기르면서 사람의 영혼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 태어나면서 이미 주어진 완결된 형태로 갖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양육과 환경의 영향으로 그 모양과 색깔을 갖추게 되는 걸까 헷갈리게 되었다. 영혼의 씨앗 같은 건 안에 있을까. 무엇이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혼이, 살아있는 것들에는 그들 각자의 혼이 있다. ‘혼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자신의 영혼이 꽃망울 터뜨려 꽃을 피우게 하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평생의 과업이다. 이 사실을 아는 이의 눈빛은 형형하고 시간과 자신의 몸과 에너지를 함부로 낭비 하지 않는다. 인생이 설령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좌절하는 대신 돌파하고 모색한다. 혼은 그 인간의 지금과 과거와 미래를 결정하는 전부다. 틀이랄까. 혼이 삐뚤삐뚤하면 삶도 삐뚤삐뚤하며 앞날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 혼이 활짝 피어나, 나비처럼 훨훨 나는 사푼사푼 가볍고 아름다운 것으로 만개하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생각해본다. ‘자유’가 아닐까. 100세 철학자 김형석 선생님이 최근 하신 말씀을 봤는데, 아이를 기를 때는 ‘아이의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가 고민해야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유를 주는 것이다. 그 아이의 자유를 사랑해야 한다.’ 평범해 보이는 이 문장은 사실 뼈를 때리는데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의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한다. 때론 사랑, 때론 훈육의 이름으로. 나도 아이의 가능성, 실수하고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는 대신 무수히 개소리를 떠들어대고 일일이 다 해주려고 했던 우를 반성해본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나의 이미 완성된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해야지, 선택지를 주고 고르게 하고, 기다려줘야지 다짐하지만 정말 쉽지 않다. 다행인 것은 산이가 벌써 ‘내가 할게’, ‘할 수 있어’, ‘그거 아니야’ ‘싫어’ 같은 말로 스스로의 혼을 지키려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다행이다.
내가 지금 내 결혼 생활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 역시 내가 살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바로 ‘자유’를 억압받고 있기 때문이다. 같이 있기 싫은 사람과 같이 안 있을 수 있는 자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자유, 자기 싫을 때 잠을 안 잘 자유, 하기 싫은 걸 안 하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그 모든 자유. 도대체 언제까지 유예되어야 하는지 아득하기만 한 일상. 아이를 다 키우고 독립을 하면 자유가 가능할까? 아니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그럼 내가 한 60은 될텐데 근 25년 시간 동안 억압을 견디는 삶이 가능하기는 할까. 그래서 해법은 결국 내 자유를 사수하기 위해서라도 아이의 자유를 사랑하고 존중해서 그 역시 하나의 자유로운 인간으로 성장하게 돕는 것으로 귀결된다.
혼은 인간 삶의 본질이자 틀이다.
그 혼이 외형을 갖춘 물질이 바로 몸이다. 혼이 깃든 덩어리가 몸이다.
혼이 없는 몸은 시체겠지.
혼이 깃든 몸이 사는 곳이 집이고
몸 속의 혼이 잘 작동되게 하려면 물과 불이 있어야 하며
몸이 밥과 물을 먹으면 피가 잘 돌고 똥을 잘 싸겠지
낮엔 해를 보며 적당하고 좋은 일과 쉼의 균형 속에서 생을 일구고
밤엔 달과 별을 보고 잠을 잔다.
의식하지 못해도 숨을 쉬고
내 곁엔, 내 속엔 ‘산’이가 있다.
돈?은 이 모든 인간 생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도구이자 수단.
그러나 없으면 안 되는 물질 사회의 물 같은 것.
한 글자로 된 중요한 것들 중 제일은 삶일까. 나일까.
뭐든 찾으시길.
그 어떤 순간에도 나는 나를 사랑할 것이고, 지킬 것이다.
자유롭고 행복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