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 즈음에
내일은 춘분.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 6월 중순인 하지까지 점점 더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
양력이나 음력 1월 1일을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라고 우리야 여기지만,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춘분이 있는 달의 초승달이 뜨는 날을 새해의 시작이라고 여겼다. 점성술에서도 춘분을 ‘하늘의 새해’라고 부른다.
요 며칠 하늘에 걸린 초승달이 참으로 곱다고 생각했는데 우주의 봄을 알리는 달이어서 그랬을까.
초겨울에 태어났지만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겨울이 참 힘이 드는데, 내게 계절의 변화는 손발의 온도로 가장 먼저 다가온다. 낙엽들이 잎을 떨구는 것보다 먼저 발이 싸늘해지고,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것보다 먼저 손끝에 온기가 돈다. 추분 정도부터 싸늘해지는 손발의 온도는 동지 즈음 극심해져서 음력 정월이 지나도 돌아올 줄 모르다가, 춘분이 되면 해빙을 앞둔 개울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그제서야 피가 돈다. 이제 춘분이라니 내 손발도 따뜻해질까.
골목 어귀마다, 하다못해 여의도 공원 야트막한 언덕마다 매화꽃이 지천이다. 문득 지나다 ‘어 이거 매실주 냄새인데?’ 라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돌려보니 벚꽃보다 더 고운 연분홍 꽃들이 달큰한 향기를 바람결에 실어 보내고 있다. 어제는 안 보였던 개나리꽃이 오늘 가보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잔디는 한 마디씩 더 돋아나 있고, 우리 아들은 퇴근해서 집에 가보면 쑥쑥 자라 있다. (기분 탓일까?)
하늘 색깔도, 공기의 냄새도, 발을 딛는 땅의 무르기도 모든 것이 봄을 머금어 따스함으로 풀리고 있다.
내 수족냉증도 봄의 기운을 먹고 그만 사라져 주기를. 입김을 불어본다.
손이 차가운 사람이 마음이 따뜻하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나는 지극히 차가운 사람이고, 계산적이고, 나밖에 모른다. 마음의 온도야 보이지 않으니 손이 따뜻한 사람이 마음도 따뜻한 거라고 믿는 편이다. 손이 따뜻한 사람이 좋다. 그 손을 기꺼이 누군가를 위해 부지런히 쓰는 사람이 좋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은 차가워지기 마련인데, 오래 살고 면역력을 강하게 하기 위해 체온을 올리자고 하는 말이 허튼 말은 아니다. 아들의 손과 발은 참 부러울 정도로 따뜻한데, 내 손이 상대적으로 차가워서 얘가 열이 있는 거 아닌가하는 마음에 체온을 재본 적이 여러 번 있을 정도다.
우연히 스치는 따뜻한 손의 잔상이, 요즘 잘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 뿐일까. 어떤 냄새가, 어떤 말들이, 어떤 분위기가 주는 잔상들이
연필로 꾹꾹 눌러쓴 종이의 뒷면처럼 마음에 남는다.
늙은걸까.
아니면 무엇 하나라도 놓치기 싫어서 필사적으로 마음에 담고 있는걸까
모든 살고자 하는 것들은 온기가 필요하다.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