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8할
너의 어깨가 부서져라, 부딪혀야 해!
1 & 2 & 3 & 4!
안녕, 여보. 아침부터 좀 신이 났어. 요즘 우리 아침의 시작은 긍정문 말하기로 하고 있잖아. 아이들을 위해 어린이 긍정 확언을 틀어놓는데, 내가 좋아서 자꾸 따라 하게 되네. 나를 위한 긍정 확언은 4시에 일어나서 쓰고 읽고 있으니 난 하루 2번 긍정문을 외치고 있는 셈이야. 말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끼는 요즘이야. ‘오늘도 즐겁고 기대되는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외치는 순간 정말 기대가 되거든. 오늘 왠지 즐거운 일이 가득할 것 같은 기대감에 기분이 좋아지고, 말을 하는 순간 즐거워지니까 이미 이루어진 것이기도 해.
처음 어린이 긍정 확언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은 거부감이었어. 괜히 반대로 이야기하기도 하고. 나도 처음엔 그랬던 것 같아. 괜한 반발심이 들었지. 뭐가 기분 좋다는 거야? 이런 삐뚤어진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 기저에는 내 삶의 만족감이 떨어져 있는 것도 있었고, 이렇게 말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는 마음도 있었지. 그래도 일단 해보자 싶었어. 자꾸 반복하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스며들겠지 하고. 아이들의 긍정 확언문 외치기가 3주 차에 접어들었어. 이제는 따라서 외치기도 하고, 신나서 오늘 어떤 즐거운 일이 있을지 이야기하기도 해.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변화에 민감하고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놀라웠어. 이것은 희망이기도 했고. 이전에 내가 엄마로서 보여준 행동방식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에 아이들이 무의식 중에 반응했을 거란 생각에 슬프기도 하지만, 희망은 지금 시작해도 충분히 좋아질 거란 사실이야. 그런 아이들만 아니라 나에게도 적용될 거고. 그래서 조바심 내지 말고, 또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할 일들만 생각하겠다고 결심했어.
어제 보낸 편지에서 참으로 반가운 말을 보았어. 결혼 10주년 선물로 ‘앞으로 두려움 없이 살겠다!’란 다짐을. 벅찬 기쁨과 응원하는 마음으로 받았어. 두려움 없이 사랑하고 살아가는데 나도 함께야. 어떤 면에서는 무모할 정도로 겁 없고 두려움 없이 마구 지르는 나지만, 유난히 겁내는 게 딱 하나 있지. 그건 바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야. 딱 봤을 때 ‘좀 어려워 보인다.’ 싶으면 난 금방 포기했어. 그러고는 내 스타일 아니야,라고 합리화했었지. 그렇게 합리화에 익숙해지고 내가 원하는 삶에서 멀어졌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 그동안 별문제 없이 잘 살아왔는데 지금 내 삶은 왜 이렇지? 내가 바라던 모습이 아니었어. 행복해지려고 발버둥 칠수록 더 진창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걸 그제야 자각한 거야. 이 모든 것이 내 선택에서 시작되었어. 앞으로 내가 할 선택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겠구나.
이 깨달음의 8할은 여봉의 헌신이 있었지. 알아듣든 말든 주야장천 얘기하고 또 얘기해 주었으니까. 나머지 2할은 아이들이었어. 아이들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었지. 내가 한 말과 행동에 아이들이 보인 반응 말이야. 내가 짜증을 내고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면, 아이들도 짜증을 내고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어. 우리 아이들은 왜 이렇게 소리를 지를까 생각했는데, 우리 둘이 이야기하다가 싸울 때 큰소리가 오가고 감정적으로 대했던 것을 아이들이 모두 보고 있었지. 심지어 아이들은 우리에게 ‘엄마 아빠 그만 싸워.’라고도 자주 말했어. 할 말이 없더라. 친절한 말, 상냥한 말, 부드러운 말을 하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엄마였어. 그러니 어쩌겠어. 이제부터라도 그런 말에 많이 노출시켜야겠지. 우리부터 말이야.
요즘 우리 제법 서로에게 상냥해진 것 같아. 여봉이 나를 ‘사랑둥이’라고 부르면서부터 인가? 아니면 내가 아침 긍정문에 ‘나는 나의 남편을 사랑한다.’라고 쓰고 말할 때부터였을까. 분명한 건 처음엔 정말 닭살이 돋았다는 거야. 좀 억지로 했어. 아니 많이 억지로. 이렇게 지지고 볶는 게 무슨 사랑이냐는 마음이었지. 자기는 어떤 마음으로 나를 ‘사랑둥이’라 불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보았어. 그렇게 말할 때 자기 입술의 떨림을. 그거 입술에 닭살 돋은 거 아니야? 자연스럽지 않았지만 듣고 기분이 이상하게 좋더라. 늘 아이들만 귀염둥이, 사랑둥이라고 했지 나에겐 ‘여보!’하고 심드렁하게 불렀었는데, 나도 사랑둥이가 된 느낌이 들었어. 자꾸 들을수록 진짜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구나, 느껴졌달까. 내가 외치는 사랑 고백도 그랬어. 처음에 돋았던 닭살도 매일 읽다 보니 당연하게 느껴지는 거야. 그렇지. 내 남편을 나는 사랑하지. 사랑해서 결혼했고, 아웅다웅하긴 하지만 결국 둘이 더 잘살아보려고 애쓰고 있는 거지.
자기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각했어. 그래, 명분! 내가 사랑해서 선택한 사람이고, 매우 정직하고 신념이 뚜렷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살아내고 있는, 기본적으로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진 사람. 자기는 언제든 먼지처럼 사라져도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말인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오늘 이 삶을 정말 내 온 존재를 바쳐 후회 없이 살아보겠다는 의지도 강한 사람이지. 나를 어떻게든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말을 아끼지 않는 조력자. 때론 비수가 되어 내 가슴을 찌르기도 하지만, 결국 옳은 말이란 것을 알고 나면 신기하게도 그 구멍이 고마움으로 메워지는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 어때, 이만하면 내가 자기를 사랑할 수밖에 없겠지? 거기에 하나 더, 두려움 없이 살아가겠다는 출사표까지. 너무 완벽한 거 아닌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