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내킬 때 맥주 한 캔을 마실 수 있다는 것
군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씩 마음 한 켠에서 아득하게 심장을 짓누르는 감정이 들 때가 있다.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수많은 어려움들. 그리고 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홀로 가만히 서 있는 것.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 자리에 홀로 서 있는 것만이 그 정답인 것. 그런 중압감은 또 힘들면 멈출 수 있는 학생일 때와는 다른 중압감이다. 그런 무거움을 잠시나마 잊고 싶을 때면 정말로 맥주 한 캔이 눈앞에 아른거릴 때가 있다.
그래도 우리는 맥주를 살 수 없다. 간부의 허락이나 휴가라는 사유가 없이는 병사들은 주류를 살 수 없다. 병사들을 고등학생과 같이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존재로 바라보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규정은 그렇다. 군대에서 규정은 곧 생명과 같다. 더도 덜도 말고 일과가 끝나고 전우들과 TV를 보면서 맥주를 한 캔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군생활의 즐거움이 있을까?
이런 말이 있다. "안 걸리면 장 땡" 그렇다. 사실 군대라는 시스템에 들어와 잘 관찰하다 보면은 결국에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갖은 방법을 써서 술을 몰래 훔쳐놓기도 하고, 어떤 때는 대담하게 허락을 받아서 술을 마시기도 한다. 물론 사유는 그럴 듯하다. 그것 또한 군생활의 추억이라면 추억이지만 내가 마시고 싶을 때 마음대로 냉장고에서 꺼내서 캔을 딸 수 있는 소중함과 비할까...
술이 무엇이라고 사람 마음을 이렇게 녹이는지, 어느 누가 토닥여 주는 것도 아닌데 살짝 기분을 좋게 하는 그 마법 같은 작용은 시시각각 자신을 잃을 위험에 처한 지금의 나와 너를 감싼다. 소중한 것은 잃었을 때에 그 소중함을 알 수 있다. 그 소중한 것들은 공기처럼 당연해 우리는 어쩌면 죽을 때가 되어서야 소중한 것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소중한 것들은 또 익숙해지고 당연해진다. 그렇기에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나는 또 기록하고, 돌아본다. 그래. 나는 맥주 한 캔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