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에는 정신과 의사로 일한 지 10년이 되어 환자들 앞에서는 내가 아는 지식들과 공감 섞인 말로 포장된 문장들을 내뱉으며 그들의 말을 경청하려 노력한다. 진심 다해 그들의 삶의 무게를 느끼며 어떻게 하면 더 잘 도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끊임없이 하며 내가 아는 모든 의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그들을 돕는다. 이런 나의 모습에 가끔은 이질감이 느껴지곤 한다. 특히 나도 힘들 때. 나도 대인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가족들끼리 갈등이 있을 때, 혹은 이유 없이 힘들 때. 정말 신기하게도 내가 나에게 해줄 말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정신과 면담에는 전이 감정과 역전이 감정이라는 게 있다.
쉽게 말하면 내담자의 과거에서 대상관계라고 하는 부모님과 같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에서 느낀 감정이 치료자인 정신과 의사에게 투사되는 것을 전이라 하며, 그와 반대로 치료자가 그 비슷한 것을 내담자에게 경험하는 것을 역전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정신과 의사들은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면담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서로의 이해관계 때문에 혹은 전이나 역전이 감정이 더욱 쉽게 유발될 가능성으로 인해, 그리고 내담자가 의사에게 완벽히 털어놓지 못할 방어적일 수밖에 없는 태도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가끔은, 정신과 의사로서 이러한 전의식이 작용해 환자들 앞에서의 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임할 때가 많다. 특히 가족들 앞에서 그렇다.
상담을 하지 말라는 거지, 이해하지 말란 것은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껴야 하는 분들에게 상처를 줄 때가 많아 내 모습이 한없이 작아지곤 한다.
그럴 때 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른다.
정신과 의사가 왜 그런식이냐는 아프지만 정곡을 찌르는.
이런 좌절감과 일상생활에서의 우울감이 느닷없이 닥쳐올 때는 내 직업적 사명감을 집어던지고 쥐구멍에라도 숨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다. 완벽할 수도 없다.
나름대로 마음의 수양을 쌓기 위해 한 줄의 글을 더 읽어가며, 보다 첨예하게 다져진 의사가 되기 위해 또 노력한다.
그리고 부족한 나로 인해 상처받았을 많은 이들에게 미안하고, 이해해줘서 참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