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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아빠 Sep 16. 2022

독서의 계절

법정스님께서는 가을을 두고 독서하기에 가장 적당하지 않은 '비독서지절'이라고 하셨다.

하늘이 높고 말도 살찌우는 이 좋은 날에 종이와 활자로 된 책만 보고 있는 샌님들을 향해 하신 말씀이니라. 




"날도 좋은데 좀 나가 놀다 오렴, 꽁생원처럼 있지 말고." 

어렸을 적 집에서 형제끼리 방구석에 틀여 박혀 게임만 하고 있노라면 들려오던 어머니의 말씀이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윤선생 파닉스 영어, 눈높이 수학 학습지를 하던 게 전부였던 터라 보통은 이렇게 게임을 하거나 애들이랑 밖에서 뛰어놀기만 하였다. 집에서 거의 유일하게 책을 좋아하셨던 어머니는 우리에게 마음의 양식을 쌓기 위해서는 꼭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하셨지만 그때는 왜 이렇게 재미가 없었던지..

심지어 매일 연산이 비슷하게 반복되는 눈높이 수학도 하기 귀찮아 당시에 나처럼 학원을 다니지 않던 반 친구들에게 공짜로 학습지 해 볼 기회라고 꼬드긴 후 같이 풀게끔 하거나 몰래 몇 장씩을 찢어서 버리곤 했다. 글씨체가 달라지고 찢긴 흔적을 완벽하게 숨기지 못한 터라 내 실수투성이인 완전범죄는 어머니의 꾸짖음으로 일단락되었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공부도, 책도 싫어하던 아이였다.


많이 개발되지는 않았던 도시에 있던 우리 집은 지금에 비하면 참 정겨웠다. 초가을에는 통풍을 위해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새소리와 각종 곤충 우는 소리를 들으며 거실에 요를 깔고 누워 선선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는 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다. 그까짓 책이 대수냐~ 이게 바로 신선놀음이고 해탈이지~





한 살, 두 살 나이가 먹어가니 삶이 바빠 그때의 여유를 가지기 힘들어졌다. 요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진료를 보느라, 나머지 시간에는 학회를 듣거나 따로 전문과목 공부를 하기도 하며 날짜에 맞춰 집안일을 하느라 친구들도 만날 시간조차 부족하다. 평소에는 여유가 없으니 주말에 특별한 일이 없을 때 늦잠을 자며 침대에서 푹 쉬는 자유를 만끽하곤 하는데 이상하게도 이전만큼 온전히 쉰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한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탓일까, 아니면 내 마음 탓일까.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나는 천근만근인 몸을 질질 끌고 가기 싫은 회사에 간다" 

"니 몸은 기껏해야 백이십 근, 천근만근인 것은 네 마음"


맞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어릴 적의 그때 그 순수하던 마음으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돌아갈 수도 없고, 그 시절처럼 돌아가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성인이 된 우리는 다시 어머니의 말씀처럼 마음의 양식을 쌓아야지만 지혜와 평온을 얻을 수 있다. 그 도구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성비와 가심비를 동시에 잡을 수 있으며 한 사람의 인생 30년 내공을 한 번에 흡수할 수 있는 기가 막힌 방법은 당연 독서뿐이다. 


요즘 정말 바쁘게 살아가는데 도 불구하고 책을 한 달에 열 권 이상을 읽는다. 한평생 살면서 1년에 한 두권 읽을까 말까 수준의 '책린이'라 1년 전의 나라면 말이 안 될 정도의 독서량이지만, 인생 책들을 만나게 되니 독서의 중요성과 효과를 절실히 깨닫게 되어 정말 수시로 읽고 있다. 종이책을 선호하지만, 자투리 시간의 경우 특히 출퇴근 시간 왕복 2시간 거리는 오디오북을 틀어놓고 듣고 있으며 화장실에 갈 때나 편의점을 갈 때, 심지어 자기 전에도 아내가 잠든 것을 확인한 후 바로 이어폰을 꽂는다. 책을 통해 작가님들이 주는 울림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평온해 짐을 느낀다. 단순 지식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책을 읽는 행위는 지혜의 그릇을 크게 함에 있어서 내면 안의 콩나물에 물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 일단 계속 붓고 나면 어느새 콩나물은 자라 있다. 얼마만큼 많이 알고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지식을 얼마큼 적시에 써먹냐가 중요하다. 그게 바로 지혜로움이고 이런 통찰력을 통해 나 자신도 더욱 단단해진다. 




법정스님 말씀도 충분히 공감되지만, 가을 한가로운 주말 오후에 외곽으로 나가 카페 야외 자리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독서를 하게 되면 나에게는 그것이 바로 어린 시절의 신선놀음과 같다.

읽는 것이란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 나 자신의 근원적인 음성을 듣는 일이라 하지 않던가. 


그런 끝없는 소통의 즐거움을 여러분도 같이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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