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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K Feb 28. 2024

어른이의 첫걸음

여덟 번째 이야기

대학생들의 진로를 상담하는 직업을 가진 친구가 있다. 워낙 직종과 직무가 다양하고 회사마다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상담 신청이 오면 그 친구는 문의사항을 파악하여 관련 직종에 있거나 해당 직무를 잘 알고 있는 다른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한다. 나도 종종 그 친구의 연락을 받곤 하는데 생각보다 너무 넓고 심오한 상담 주제에 깜짝 놀라기도 하고 많은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친구가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친구의 SOS 요청을 듣다 보면 학생들이 과연 실질적인 정보나 명확한 디렉션을 원해서 상담을 신청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곤 한다. 물론 상담원의 전문성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본인이 평소에 답답했거나 의문이 들었던 부분들을 해소하기 위해 상담을 신청한 경우도 많겠지만, 친구의 상담 후기를 전해 듣고 나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사실 상담사가 해 줄 수 있는 조언은 상당 부분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어려움이나 고통에 대한 원인이 분명하여 해결책을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는 질문이거나 명확한 긍정적인 방향성이 제시되어 있는 경우라면 또 모르지만, 진로의 영역에서는 사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답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내담자의 개인적인 성향과 경험, 능력의 차이는 다양하고, 그러한 개인적 역량이 어떻게 활용될지는 가능성과 미지의 영역이다. 무엇보다도 결국 내담자의 선택이 크게 작용하는 부분이라 상담하는 사람도 뚜렷한 지시를 내려주기엔 어려운 점이 많다. 오히려 그런 상담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결국 결정을 내리는 것은 본인의 몫이고, 그것에 대한 책임도 본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친구를 찾아오는 많은 학생들도 이를 알고 있다는 점이다. 상담에 대한 기대치의 정도는 개인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상담자의 조언이 절대적이지 않으며, 적당히 본인의 상황과 역량에 맞게 걸러 들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특히 정말 바쁘게 대학생활을 보내며 입이 떡 벌어질만한 경험과 능력을 쌓아온 친구들의 경우는 더욱 그런 경우가 많다. 나도 전 직장에서 조언을 구하는 학생들을 만나는 업무를 담당한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적극적으로 조언을 구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이미 나무랄 데 없이 잘하고 있는 우수한 친구들인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굳이 시간을 들여서 왜 상담을 오는 것일까.


정작 그들에게 필요한 건 본인이 잘하고 있다는 응원과 격려인 경우가 많다. 미지의 하루하루를 헤쳐나가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그 자체로 기대감과 성취감으로 가득한 여정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구나 처음으로 가득한 인생이고, 특히나 사회로의 첫 발을 내딛는 대학생들은 불안하고 두려울 수밖에 없다. 많은 것을 열심히 준비해 두었으니 불안함이 덜하겠지라는 시선은 그들의 불안감을 더할 뿐이다. 소위 말하는 스펙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친구들은 더더욱이나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내딛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심호흡 크게 쉬고 안정적인 자세로 집중하여 발을 내딛으라는 조언뿐만 아니라 잘하고 있다는 진심 어린 응원이다. 잘 모르는 타인의 인생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현실이라는 장벽 앞에서 어디로 발을 내디뎌야 좋을지는 섣불리 말해줄 수 없는 부분이다. 기본적인 방법은 알려줄 수 있지만 그 방법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오롯이 본인의 몫이다. 그리고 그 몫을 다하는 그 사람을 위해서 옆에서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이 그를 아끼는 주변 사람들의 몫이 아닐까.


아빠와 엄마의 곁을 지키는 나도 마찬가지다. 생전 처음 마주하는 아빠의 축 늘어진 어깨와 엄마의 주름살을 바라보며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비슷한 길을 가본 사람들의 실질적인 조언을 듣는 것도 너무 감사한 일이고,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다. 그러한 귀한 조언과 나의 고민을 종합해서 내린 나의 선택과 결정이 과연 최선인 것일까를 걱정하며 주변을 둘러볼 때, 곁에서 굳게 고개를 끄덕여줄 사람도 필요하다.


나이는 먹었고 갈수록 어른다움을 강요받지만 놀랍게도 끊임없이 새로움을 마주한다. 사실 사회의 첫발을 내딛는 대학생처럼 어른들의 삶도 끊임없이 첫발을 내딛고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나의 곁에 나의 결정을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 가슴 벅찬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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