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같이 지친 저녁이었다. 나는 갓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회 초년생으로, 동생은 대학원생으로 정신없었던 하루의 피로를 등에 업고 식탁에 앉았다. 당시 부산에 계셨던 부모님과 떨어져서 동생과 꾸려가는 서울 생활에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그날은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의 분주함에 한껏 치이고 돌아와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었다. 퇴근길에 식당에서 포장해 온 김치찌개를 끓여 동생과 마주하고 앉았다. 김치찌개는 괜찮았다. 뻘건 국물은 칼칼했고, 깔끔하게 기름기를 걷어내었는지 시원했다. 푹 익은 돼지고기는 부드럽게 입안에서 풀어져 달큼한 쌀밥과 잘 어우러졌고, 김치도 몰캉하니 부드러웠다. 정신없이 배를 채우다 서로 눈이 마주친 순간, 동생이 말했다.
"형아. 아빠 김치찌개 참 맛있었는데."
아빠의 김치찌개는 조화로웠다. 두툼하게 썰어낸 돼지고기에서 충분히 고소한 기름이 배어 나와 국물에 녹진한 무게를 더했고, 그럼에도 고기 자체는 탄력을 잃지 않고 쫄깃했다. 겨우내 잘 숙성된 김장 김치는 너무 뻣뻣하지도, 너무 무르지도 않게 적당히 익어 부드럽게 씹히는 듯하면서도 아삭했다. 살짝 더한 설탕은 새큼한 끝 맛을 깔끔하게 마무리해 주었고, 몇 방울 떨어트린 참기름도 은은하게 제 몫을 다했다. 갓 지은 쌀밥을 한 숟갈 크게 떠 입에 욱여넣고, 국물을 살짝 뜬 숟가락에 김치 한 조각, 고기 한 토막 올려 입에 넣으면 그렇게도 맛있을 수 없었다.
아빠의 김치찌개를 자주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아빠 또한 그 시절의 여느 가장처럼 다소 가부장적이었다. 청소나 설거지는 함께 하셨지만, 요리는 99% 엄마 몫이었다. 엄마는 눈뜨자마자 부엌으로 가서 아침을 하셨고, 퇴근하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고 부엌으로 가서 저녁을 하셨다. 부지런하고 손맛 좋은 엄마 덕에 우리 집 밥상은 늘 풍성했고, 아빠는 자연스레 부엌에서 더욱 멀어졌다. 아빠가 부엌에서 칼을 잡는 것은 엄마가 늦게 들어오거나, 아플 때였다. 아빠가 할 줄 아는 몇 개 안 되는 음식 중 하나가 김치찌개였고, 배고프다고 보채는 두 아들을 위해 아빠는 서툰 솜씨로 서둘러 찌개를 끓여내었다. 모처럼 아빠가 지나간 부엌은 언제나 잔뜩 어질러져 있었지만, 그 맛은 두 아들의 엄지를 척 치켜들게 했다. 괜스레 "네 엄마가 해준 것보다 맛없다!" 하시면서도, 두 아들의 터질듯한 볼을 보며 아빠는 안도의 미소를 지으시곤 했다.
아빠의 김치찌개는 엄마의 김치찌개와는 달랐다. 엄마는 기름 한 방울 없는 깔끔한 찌개를 좋아했다. 참치를 넣을 때도 기름은 따라 버리고 담백한 맛을 살렸고, 멸치로 육수를 내어 시원함을 더했다. 자취를 시작하면서 내가 끓여 먹는 김치찌개도 엄마의 찌개에 가까웠다. 훨씬 자주 먹었던 엄마의 김치찌개에 더 익숙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어깨너머로 본 기억을 더듬어아빠의 맛을 내보려 한 적도 있었지만 결과는 늘 실패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빠의 김치찌개는 아빠와 많이 닮아있었다. 투박하게 숭덩숭덩 썰어 넣은 고기와 파는 꾸밈없었던 아빠의 털털함이었고, 뻘겋지 않고 수수한 주홍빛을 띄던 찌개 빛깔은 아빠의 온화함이었으며, 진하게 우러나온 국물 맛은 아빠의 진중함이었다. 애정 표현에 서툴고 아들이 잘못했을 때에는 회초리를 드셨던 엄하고 무뚝뚝한 아빠였지만, 아들이 힘들 때면 늘 두툼하고 따스한 손으로 토닥여주셨던 속 깊은 아빠의 모습이 바로 김치찌개 한 그릇에 녹아있었다.
지쳐있던 날 아빠의 김치찌개가 생각났던 건, 단순히 김치찌개를 먹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살이에 힘들어하는 아들을 위로하던 아빠의 눈길과, 잠자는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마를 쓰다듬던 아빠의 손길과, 아들에게 기쁜 일이 있으면 고생했다고 꼭 안아주던 아빠의 온기가 그리웠기 때문이리라.
서울 집 냉장고에 김치가 떨어질 무렵, 하루는 부모님이 김치를 가지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그날 나는 아빠에게 김치찌개를 끓여달라고 이야기했다. 당시에는 아직 치매 판정을 받지 않은 상황이었고 증상도 그렇게 심하지 않았지만,아빠는 찌개 끓이는 법을 모른다고 하셨다. 과거에 얼마나 우리가 맛있게 먹었는지를 말씀드려도, 아빠는 손사래를 치며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결국 그날 아빠의 김치찌개를 먹지 못했지만, 설령 그랬다고 하더라도 그 맛은 예전과 달랐을 것이다. 단순히 레시피가 기억나지 않아서가 아니다. 숭덩숭덩 거침없이 고기를 썰고 김치를 볶아내던 아빠의 어깨는 세월의 무게에 축 내려앉았고, 큰 대접에 푸짐하게 붉은 찌개를 담아냈던 두툼한 아빠의 손은 고요하다 못해 권태로워진 퇴직 후의 일상에 무뎌졌으며, 양볼 가득 찌개 건더기를우물거리는 아들을 보며 미래를 꿈꾸던 맑은 눈은 청춘의 아득함에 쓸쓸히 과거를 톺아볼 뿐이다.
알고 있다. 과거의 아빠와 지금의 아빠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아빠에게는 서글픈 일임을. 기억 속의 활기 넘치는 푸른 아빠의 모습은 추억으로 간직하는 것이지, 억지로 들추어내어 현재의 아빠를 초라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의 아빠를 힘껏 끌어안아야 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