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틴K Jan 31. 2024

조금 늦어버린 겨울용 타이어

다섯 번째 이야기

윈터 타이어로 바꿔 달았다. 몸을 한껏 움츠리게 만들던 지독했던 추위도 몇 차례 기승을 부리다 물러가고, 알록달록한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린 폭설의 흔적도 그나마 햇볕이 들지 않는 담벼락 구석에서나 볼 수 있는 1월 말에 접어든 지금에서야 부랴부랴 윈터 타이어를 장착했다. 타이어 규격이 특이해서 급하게 타이어를 찾기도 힘들었고, 그나마 찾은 타이어도 하나에 18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라 경제적인 부담이 컸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나의 마음도 단호했다.


우리 집은 급한 경사로에 위치해 있다. 처음에 이사 올 때, 이사 올 집을 미리 보지 않은 이삿짐센터 아저씨가 이럴 줄 알았으면 사람을 더 불러올걸 그랬다며 툴툴을 넘어 화를 낼만큼, 공사하나 할 때에도 그나마 평지가 있는 이웃집에 양해를 구해야 할 만큼 가파른 경사로이다. 우리 집 앞을 자주 지나다니는 수사님이 우리 집 앞 언덕을 오를 때마다 숨이 넘어간다고 꼴딱 고개라고 부를 정도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겨울에 우리 집 앞을 오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윈터타이어 장착을 애초에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재작년에도 겨울에 고생을 한 적이 있었기에, 작년 11월 무렵부터  좀 서둘러 타이어를 알아보았다. 재작년에는 사실 직장에서의 퇴근이 늦어, 저녁에만 주차가 가능한 집 주변 주차장에 주차하며 버텼지만, 작년부터는 이직을 하면서 퇴근 시간이 빨라졌고 최대한 빨리 귀가하여 부모님을 돌봐야 해서 해당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쉽지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가끔 눈이 올 때만 사용할 요량으로 주차비를 내고 자리를 확보해 두었지만, 실제로도 7시 반이라는 주차 가능시간까지 주변에서 대기하며 기다리기는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었다. 그래서 윈터 타이어를 알아보았지만 내 규격에 맞는 타이어를 구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러던 중 기본으로 장착된 타이어가 사계절 타이어라 웬만하면 겨울 운전도 문제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순간 안심이 되었고 타이어 찾기를 단념했다.


'이번 겨울도 별 일 없이 지나가겠지. 긴급한 상황에서는 조금 불편해도 집 앞의 주차장을 사용하면 되니까 큰 문제 있겠어?'


그런데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2주 전 주말 낮. 나는 차를 대기 위해 언덕을 올랐고, 차는 뒤로 힘없이 미끄러졌다. 도로 위에 얇게 깔린 살얼음과 염화칼슘 덩어리들이 어떻게든 언덕을 오르려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바퀴 주변으로 튀어 올랐다. 게다가 차를 4대나 소유하고 있는 옆집이 여유공간에 차를 빡빡하게 대어 차를 돌리기도 쉽지 않은데 바퀴까지 헛돌고 핸들도 맘대로 돌아버리니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조금만 엇나가도 옆집의 차를 박을 기세로 미끄러져내리는 차를 드르륵 거리는 브레이크에 의지해 조금씩 겨우겨우 돌려서 주차를 한 후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뻗어버렸다. 한껏 신경이 곤두서서 멍하니 소파에 앉아있는 아들에게 아빠는 영문을 모른 채 걱정스럽고 의아한 눈길을 보냈지만, 일단 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무조건 윈터타이어를 구해야겠다는 생각만 되뇌었다.


다행스럽게도 두 번째로 연락한 타이어사에서 타이어를 구해주겠다고 답변이 왔고, 이틀 후 윈터타이어를 장착했다. 기름은 눈에 보일 정도로 전보다 빨리 떨어지는 듯했지만, 차는 더 이상 미끄러지지 않았다. 옆집 사람의 이중 주차에도 끄떡없이 요리조리 빠져나와 무난히 주차도 가능해졌다. 이렇게 될 거였으면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진즉 바꿔 끼울걸이란 생각이 계속 들었다.


문득 아빠, 엄마를 돌보며 마주하게 될 위기 상황 속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면 내 마음도 타이어를 바꿔 끼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끄떡없이 괜찮다가도 좌절하게 되고, 좌절에서 빠져나왔나 싶으면 새로운 변수에 툭 무너지고 마는 소용돌이치는 하루하루 속에서 그동안 나는 미끄러짐을 예방하기보다는 브레이크만 눌러 잡으며 식은땀만 흘려댄 게 아니었을까. 겨울이 오고, 한파가 몰아치고, 눈보라가 휘날리는 상황이 오기까지 내가 좀 더 현실을 직시하고 대비책을 세운다면 이미 얼어버린 도로에서 안전하게 미끄러질 방법을 찾기 위해 전전긍긍하기보다는 아예 미끄러지지 않을 대비책을 가지고 여유롭고 담대하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아빠의 병과 같이 치료법이 없어 점점 나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당장의 마음 아픔이나 짜증을 피하기 위해 현실을 외면한다면 앞으로 닥칠 큰 파도 앞에서 나는 더 큰 좌절을 맛보게 될지도 모른다. 당장은 고통스럽고 힘들고 금전적으로나 심적으로 많은 부담이 된다고 하더라도, 어떤 눈보라에도 미끄러지지 않도록 마음에 깊숙한 홈을 내어 나의 길로 똑바르게 굴러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부터 웃음기가 사라지는 오르막길이 내 앞에 버티고 있다. 오르막길만으로도 힘든데 눈과 비가 몰아치면 그냥 주저앉아버리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마음의 힘을 기르자. 더욱더 현실을 바라보자. 힘내보자.

이전 05화 악몽을 꾸고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