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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K Jan 24. 2024

악몽을 꾸고 있다

네 번째 이야기

악몽을 꾸고 있다. 특히나 이번주는 거의 매일 악몽을 꾸는 것 같다. 어젯밤에도 무엇인가에 한창 쫓기다가 넷플릭스 액션 스릴러 드라마에 버금가는 반전을 마주하고 소리를 지르며 깼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깜빡이는 전자시계를 보니 3시 40분경. 웅웅 거리며 돌아가는 5년이 넘은 가습기 소리만 까만 정적을 채우는 방 안에서 나는 홀로 있음을 두려워했다. 얼른 휴대폰을 들어 유튜브 쇼츠를 틀어, 가장 자극적인 정보로, 가장 높은 텐션으로 나의 도파민을 자극하는 영상을 연달아 보며 끔찍했던 악몽의 잔상을 지워버렸다. 1시간쯤 지났을까 겨우 잠을 다시 청해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또 다른 악몽 속에서 고통받다가 익숙한 알람 소리에 잠을 깼다. 글을 쓰는 지금은 어떤 꿈이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잠을 깨보니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너무 힘들고 피곤할 뿐이다.


"아들 어젯밤에 꿈자리가 너무 사나웠어. 오늘 조심해서 다녀."


꿈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미래를 걱정하는 엄마의 영향 탓인지, 그러지 않으려 해도 나도 어느 정도는 꿈에 대해 곱씹는 경향이 있다.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했던가. 엄마처럼 미래를 내다보진 못하지만, 꿈을 통해 '내가 이런 것도 생각하고 있었나?', 혹은 '내가 이런 걸 좋아했나 보네', 혹은 '내가 생각보다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나 보네'라고 생각하곤 한다.


특히나 엄마가 잠깐 집을 비웠던 작년 한 달여 기간 동안 나의 학업과 이직 문제까지 겹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때, 나는 끊임없는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소리 지르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버둥대다가 소리를 지르며 깨기도 했고, 어떤 커다란 물체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다가 벽에 발을 부딪히기도 했다. 그 당시에 나는 늘 피곤했고, 점심을 포기하고 근처 성당에 가서 잠을 청했다. 그런데 이렇게 꿈을 곱씹다 보니, 간병을 하는 것이 더더욱 힘들어졌다. 꿈에서까지 간병의 스트레스가 이어지는 것 같았고,  여파는 현실에까지 미쳐 아빠에게 더욱 툴툴대곤 했다. 


나는 무의식 중에 악몽을 꾸는 가장 큰 원인을 아빠에게 두고 있었다.


사실 꿈뿐만이 아니다. 아빠 때문에 힘들다는 핑계는 다양한 상황에서 적용된다. 운동을 내 마음대로 충분히 할 수 없는 상황, 사랑하는 사람과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없는 상황, 회사에서의 회식이나 출장, 야근 스케줄도 필요한 대로 덥석 잡아버릴 수 없는 상황, 관심 있는 취미 생활을 충분히 할 수 없는 상황, 혼자 조용한 주말을 보내며 에너지를 충전할 수 없는 상황. 일상생활에서의 다양한 불만족스러운 상황들의 중심에는 아빠, 그리고 아빠 곁에서 힘들어하고 있는 엄마가 있었다.


그러던 중 문득 아빠를 편리한 핑계로 삼고 있진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빠가 아프고 나서 많은 부분들에 있어서 아빠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녹록지 않은 상황들이 오롯이 이러한 우선적인 고려로 인해서 발생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악몽은 회사에서의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고, 추워진 겨울날씨에 나빠진 컨디션 때문일 수도 있다. 운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은 저녁에 운동하기를 고집하는 나의 생활 습관 때문일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은 궁극적으로 그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나의 탓일 수 있으며, 회사에서의 스케줄도 내가 조금 양해를 구하거나 불편함을 감수하면 지나갈 수 있는 일이 대부분이다. 취미생활도, 혼자만의 시간도 내가 조금 더 부지런해지면 되는 일일 수 있다.

 

물론 모든 것의 원인을 나에게로 돌려, 오히려 자괴감에 빠지는 것도 경계해야 할 일이다. 분명 모두 다 나의 탓은 아니고, 내가 변화함으로써 변화될 수 있는 부분이 제한적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서 원인을 찾지 않고 가장 편리한 핑계인 아빠에게 돌리는 것은 더더욱 경계해야 할 일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아빠의 상황은 나의 신체적 노력이나 사고방식의 전환으로 좋아질 수 없는 상수이기 때문이다. 아빠의 상황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일들에 대해 나의 변화로 개선될 수 있는 여지는 없는지 따져보고 노력해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작년 말부터 나는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조금씩 변화해가고 있다. 우선 주된 운동시간을 새벽으로 변경하였다. 아침 운동은 강도가 떨어져 효과가 낮을 수 있기에, 혼자서 운동하기보다는 그룹으로 진행하는 인터벌 트레이닝을 신청하여 혹독하게 적응해나가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여전히 힘들지만 규칙적인 고강도 운동 덕분에 몸의 변화가 더 뚜렷하게 보여서 동기 부여도 되고 신체적인 활력도 더 높아졌다. 시간을 쪼개서 사람들도 더 만나려 하고 있고, 새벽운동 후 출근 전까지의 시간 그리고 엄마의 양해를 구해서 일요일 오전에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글을 쓰며 제한적인 시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아직은 갈길이 멀고, 적응해 나가야 할 부분들이 많다. 요 근래 계속되는 악몽은 여전히 힘들지만, 진짜 악몽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실을 간호라는 프레임 속에 갇혀서 본인만을 갉아먹는 삶이 아닐까. 이렇게 현실 속에서의 꼬물꼬물 몸부림치는 변화를 통해, 나의 무의식의 세계도 더 밝아져 악몽도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오늘 밤에는 편안한 꿈을 꾸며, 마음 따뜻한 내일을 준비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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