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돌볼 때에 가장 유용한 도구가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나는 TV에 연결된 Youtube라고 말할 것이다. Youtube가 없었으면 과연 아빠를 돌볼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시간을 Youtube에 의존하고 있다. 영상의 힘을 빌리지 않고 내가 아빠에게 계속 긍정적인 자극을 주며, 부정적인 생각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나에게는 그런 재주도, 에너지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엇보다도 나의 찰랑거리는 인내심과 욱하는 성격은 환장의 콜라보를 통해 가뜩이나 불안정한 아빠의 마음을 휘저어 놓을 때가 많다. 그럴 때엔 그냥 아빠의 마음을 다독이며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릴 수 있는 Youtube 영상을 재생하는 편이 낫다.
아빠의 취향을 파악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다행스럽게도 아빠는 눈이 동그란 귀여운 아기 영상이나, 사람만큼이나 말을 잘 알아듣는 똑똑한 동물들 영상,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레전드 올림픽 영상 등 다양한 영상에 관심을 보였다. 물론 혼란이 극심할 때에는 눈을 꾹 감고 이러한 영상을 볼 생각도 하지 않고 본인만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지만, 그때에 아빠를 다그치기보다는 당장은 그 영상에 관심을 보이지 않더라도 틀어두고 가만히 아빠의 마음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시간을 갖곤 한다. 그 공백을 메워주는 용도로도 Youtube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욱 하고 올라온 나의 성질머리도 하염없이 흘러가는 영상과 소리에 섞여 조금씩 누그러진다. 그리고 정신이 돌아올 때 즈음 눈을 떴을 때 펼쳐지는 아빠의 취향에 맞는 영상은 아빠의 회복을 빠르게 돕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효과가 좋은 영상은 노래 영상이다. 우리 가족은 모두 음악을 참 좋아한다. 클래식, 뮤지컬, 가요,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어린 시절 대청소 시간에 울려 퍼졌던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은 아직도 귓전에 맴돌고 있고, 주말 저녁마다 우리 가족은 열린 음악회를 함께 보며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다. 아빠는 병에 걸린 후에도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은 노래를 들으며 행복해한다. 정말 신기한 것은 아내와 아들의 존재마저 헷갈려하는 상황 속에서도 그 옛날 들었던 노래 가사는 또렷하게 기억한다는 점이다. 자동재생되는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나 가요무대 클립을 연속으로 보다보면 아빠는 어느새 박자를 맞추며 따라 부르고 있다. 새로운 정보가 입력되는 것은 당치도 않고 옛날의 기억조차 모래성처럼 힘없이 무너지는 상황이지만, 노래에 대한 기억력은 그 어떤 기억력보다 또렷하다.
가장 놀라운 점은 처음 들어보는 노래에 대한 기억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발병 이후 최근 몇 년간 아빠에게 새로운 정보를 입력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 어떤 정보도 3분 이내에 머릿속에서 삭제되고, 혼돈의 상황 속에서는 채 10초도 지나지 않아 휘발되어 버린다. 반복적인 학습도 소용이 없다. 오히려 반복적인 학습은 아빠의 마음을 더 불편하게 하고, 주변 사람들의 답답함을 심화시킬 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빠의 마음에 든 노래는 반복적으로 몇 번 듣고 나면 후렴구 정도는 기억하고 따라 부르곤 한다. 아직 시도해보진 않았지만 아빠에 대한 중요한 정보도 아빠가 익숙한 노래에 붙여서 따라 부르게 하면 기억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섣불리 시도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빠의 머릿속에 기억되는 새로운 노래는 슬프게도 모두 입이 떡 벌 어질 정도의 가창력을 자랑하는 가수의 노래라는 점이다.)
이러한 효과는 라이브 음악에서 더 커진다. 가수의 숨소리가 고스란히 느껴지고, 연주가의 호흡을 따라가게 되는 라이브 영상은 훨씬 효과적으로 아빠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각종 기술을 더해 깔끔하고 듣기 좋게 다듬어진 음악보다는 미세한 떨림 속에서 가수나 연주가의 감정이 전달되는 라이브 영상을 볼 때에 아빠는 더욱 음악 속에 푹 빠져있었다. 그래서 아빠의 병이 좀 심해진 이후에도 세 번 정도 아빠와 함께 음악회를 다녀왔다. 아빠의 돌발행동이 걱정되어, 출구가 가까운 가장 구석자리로 자리를 잡고 방문하였고 엄마와 내가 아빠의 양옆에 앉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했다. 놀랍게도 아빠는 전혀 이상 행동 없이 음악에 젖어들었다. 최근에는 지인 덕분에 일반 대중이 소화하기에는 좀 딱딱하고 어려운 공연을 다녀왔는데, 아빠는 손가락으로 음악의 박자를 맞추며 90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거의 흐트러짐 없이 음악을 감상했다. 오히려 나와 엄마가 중간중간 자세를 고쳐 앉으며 음악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을 정도였다.
얼마 전 알고리즘에 이끌려 영화배우 박철민 씨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신기하게도 그 어머님도 아들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였지만, 본인이 좋아하던 노래의 가사는 또렷하게 따라 불렀다. 그 모습에 박철민 씨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고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모든 치매 환자들에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실제로 음악 치료가 치매 환자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기억력을 증진시키는 데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한다. 음악뿐만 아니라 작년에 읽은 일본 소설에서도 기억상실에 걸린 주인공이 그림을 그리면서 결국엔 기억을 되찾게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러한 미술의 효과도 비단 소설에서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음악과 미술을 비롯한 예술이 가지는 힘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다.
사실 예술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정신적인 공감을 주는 영역이라는 점이다. 작품을 통해서 예술가와 그 예술을 향유하는 수용자가 서로의 감정을 어루만지는 공간이 예술이라는 분야이다. 아빠가 진심을 다한 연주가와 가수의 공연에 집중할 수 있는 것도, 많이 힘들고 상처 투성이인 아빠의 마음을 노래가 고요히 다독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치료약조차 없는 치매라는 정신병을 마주하기 위해선 결국 정신적인 토닥임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요즘 들어 아빠의 혼란의 빈도와 지속 시간이 커졌다. 얼마 남지 않았을 아빠의 삶 속에서 혼돈과 아픔의 시간이 좀 더 줄어들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작고도 큰 소망이다. 퇴근 후 저녁시간 아빠와 소파에 앉아 손을 꼭 잡고, 마음속의 울림을 나눌 수 있는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앞으로도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