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운수 나쁜 날이 있다. 유독 잘 하던 일도 잘 안되고, 거슬리는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무기력해지기만 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모든 일을 다 접어두고 더 이상의 불운을 겪지 않기 위해 얼른 나의 가장 안전한 공간인 집으로 돌아와 방에 콕 박혀서 가만히 시간을 보내고 싶어지곤 한다. 고단한 일주일을 마무리하고 손꼽아 기다렸던 지난주 토요일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아침 늦게 까지 늦잠을 자다가 눈을 뜨고 주섬주섬 준비해서 헬스장을 가려고 했다. 그런데 유독 토요일 아침에 눈이 빨리 떠졌다. 아무리 다시 잠을 청하려 해 봐도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몸을 일으켜 아침이나 먹자 하고, 부모님이 깨실까 종종걸음으로 부엌에 가서 1주일 내내 먹고 싶었던 라면을 끓여서 먹었다. 역시 이른 아침부터 라면은 무리였는지 생각보다 그렇게 맛이 있지 않았다. 엄마도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결국 잠을 깨셨다.
엄마를 다시 재우고, 겨우겨우 냄비를 비우고 나서 방으로 돌아왔더니 속이 더 더부룩 해져서 쉴 수가 없었다. 빈둥빈둥 노느니 일이나 좀 하자라는 생각에 미뤄두었던 일을 끄적끄적했다. 요새 일을 할 때 자주 활용하는 ChaGPT도 내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고 자꾸 버벅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씨름하다 운동 갈 시간이 되어 거실로 나왔다.
그런데 아빠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갑자기 혼란과 망상이 찾아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직 증상이 심하진 않았지만 경험상 5분 정도 후에는 아빠의 상태가 좀 심해질 것이 분명했다. PT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아빠의 상태를 살피느라 나가는 시간이 점점 더 늦어졌다. 지난주에도 병원 진료로 늦어서 이번에는 제시간에 가겠다고 PT 선생님과 약속을 해둔 터라 마음이 조급했지만, 예상대로 아빠의 상태는 조금씩 나빠졌다. 결국 마지막까지 아빠의 마음을 동동거리며 살피다가 나와서 차를 몰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차도 막히고, 평소 한산했던 건물 주차장도 지하로 계속 내려가도 만차라 결국 맨 아래층에 겨우 주차를 하였다. 오늘따라 엘리베이터도 늦게 와서 8분쯤 기다려서 겨우 탈 수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헬스장에 도착했지만 수업은 10분 정도 지체되었다. 헬스장으로 향하면서 미리 양해를 구했지만 죄송한 마음은 여전했다. 컨디션도 별로 좋지 않았는지 어깨에 걸리는 무게가 유독 버거웠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하려고 용을 쓰면서 마음을 다독이며 개수를 채우는데 선생님이 갑자기 짜증과 화를 내며, 그렇게 세상 하기 싫은 자세로 개수만 채울 거면 주말에 왜 여기 와있냐고 몰아세웠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어, 하기 싫은 건 절대 아니고 동작을 이해하는 속도나 체력이 따라가기 힘든 경우가 있으니 이해해 달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또 다시 이런 식으로 반응을 하니 갑자기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물론 선생님도 지난번에 한번 지적한 사항인데 또 그러니 짜증이 났을 수 있겠지만, 나는 그래도 힘내서 카운트에 맞춰서 동작을 짜내고 있는데 하기 싫어한다는 말로 몰아세우니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개수보다는 자세가 더 중요하니 자세에 더 신경 쓰라고 다시 리마인드 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싶지만, 선생님은 충분히 전에도 말했다고 생각했겠지. 아무튼 찝찝한 기분으로 운동을 마무리하고 센터를 나섰다.
할 일이 많아서 카페라도 가려했지만, 아빠의 상태가 마음에 걸려 밖에서 점심이라도 같이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빠의 상태는 아침보다는 좋아졌지만 금방이라도 안 좋은 상태로 변할 수 있는 낌새가 다분했고, 엄마도 바로 밖에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집으로 일단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도 순탄치 않았다. 나는 봄이라 사람들로 가득 찬 거리를 지나가며 규정된 속도로 천천히 운전을 하고 있는데, 뒤에 있는 차가 급한 일이 있는지 계속 빵빵거렸다. 그렇다고 먼저 보낼 수도 없는 상황인데 도저히 왜 그렇게 빵빵거리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그 차와 길이 갈라지고 마지막까지 빵빵거리며 속도를 올리는 그 차를 백미러로 보면서 신호위반에나 걸렸으면 했다.
집에 들어가니 예상대로 아빠의 상태는 위태위태했다. 아빠가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을 틀어 겨우 아빠를 진정시키고 엄마가 준비가 끝난 후 함께 집을 나섰다. 아침에는 보지 못했는데 간밤에 내린 황사비로 차 뒷 유리가 얼룩덜룩했다. 세차한 지 불과 3일밖에 안되었는데. 그렇게 아빠엄마를 모시고 식당으로 향했다. 그 식당이 있는 건물에 예식장이 있었는데 마침 예식 시간과 딱 겹쳐서 또 주차할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겨우 한자리를 찾았는데 옆에 차가 내 쪽으로 차를 바싹 대어서 주차하기가 쉽지 않았다. 겨우 차를 대고 조심조심 문을 열어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콩하고 옆차 문 손잡이를 박았다. 겨우 나와서 손잡이를 살펴보니, 잔흠집도 나지 않고 괜찮아서 엘리베이터를 타러 걸어가는데 뒤차에서 갑자기 사람이 나왔다. 차에 사람이 타고 있었던 것이다. 그분이 차를 찍어놓고 왜 그냥 가느냐고 뭐라 하셨다. 다행히 언성 높여서 뭐라고 하신 것은 아니고, 점잖게 충분히 하실 수 있는 말투로 말씀하셔서, 확인해 봤는데 괜찮아서 가려고 했는데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하다고 사과드리고 차 괜찮으신지 확인해 보시라고 말씀드렸다. 그 차주분도 마음이 풀리셨는지 그냥 가라고 하셨고 어찌 되었든 나의 잘못이기에 넘어가려고 했지만, 아침부터의 여러 사건들 때문인지 몸과 마음이 축 늘어졌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시간을 잠깐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컨디션이 안 좋으셨는지 들어오자마자 침대로 향하셨고, 나는 아빠와 함께 저녁까지 시간을 보냈다. 방에서 할 일도 있었고 좀 쉬고도 싶었지만, 아빠의 손을 잡고 아빠와 이야기하며 스포츠 경기를 함께 보았다. 감사하게도 아빠는 별다른 감정의 변화 없이 편안하게 오후 시간을 함께 해 주었다. 7시쯤 저녁을 먹고, 아빠의 우울감이 한번 찾아왔을 때 엄마와 함께 아빠를 다독이고 나서 안정이 된 것을 확인한 후 9시 정도에 방으로 먼저 올라왔다.
크게 어떤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군데군데 숨어있던 진창을 하나도 빠짐없이 밟아나간 운수 나쁜 날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삶의 무기력함과 우울감이 아빠의 치매 때문만은 아니구나. 아빠의 치매 발병 이후 아빠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무의식 중에 나의 현재의 불행의 대부분은 아빠의 치매로부터 기인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실제로 아빠의 병으로 인해서 나의 일상이 많이 변화되었고 그중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사실 그 스트레스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인생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일부일 뿐이다. 직장에서 일하다가, 헬스장에서 운동하다가, 주차장에서 차 문을 열다가,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운전하다가 일상 곳곳에서 나의 마음이 다치는 순간은 (슬프게도) 무궁무진하다.
결국 아빠의 지독한 병도 그러한 나의 인생에 똑똑똑 노크도 없이 찾아온 불행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그 불행이 가져온 좌절의 정도와 지속성, 수습 불가능성 등은 여타 불행에 비해 말할 수 없이 크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인생의 한숨을 아픈 아빠로 돌리는 것도 너무 과도한 피해망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나쁜 병으로 인해서 힘든 점이 많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힘듦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결국 지쳐버리는 것은 나일뿐이다. 그 병은 나을 수 없는 병이기에 힘든 부분들을 감수할 수밖에 없고, 그 외에도 내 주변에는 너무나 많은 가시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가시를 갈아내어 뭉툭하게 만들거나 피해나갈 방법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하다. 오히려 내가 치매라는 병에 한껏 단단하고 굵은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가 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오래전 교환학생을 갔을 때에 스트레스 매니지먼트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스트레스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수업이었는데, 수업내용이 모두 다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감각기관의 자극에 대한 집중을 통해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방법을 배운 적이 있다. 오늘 집에 오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향수 가게에 들러 향낭을 하나 구매하여 차에 두었다. 그것만으로도 잔뜩 조여들었던 마음이 한결 느슨해졌다.
어차피 쉽지만은 않은 인생. 내가 굳이 더 어렵고 힘들게 만들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