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_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도박자들이 가장 많이 말하는 것.
"제 의지로 끊을 수 있어요."
"저는 의지가 강한 편이라, 실제로 한동안 도박을 하지 않고 지냈던 적도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의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하지만, 도박 문제 해결에 필요한 '의지'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 선택이나 행위의 결정에 대한 내적이고 개인적인 역량을 의미하는 의지(意志)입니다.
둘째는 다른 것에 마음을 기대어 도움을 받는 것을 의미하는 의지(依支)입니다.
이 두 가지 의지는 상반된 것처럼 보입니다. 의지가 있는 사람이 의지를 한다고? 의지가 있으면 나 홀로, 스스로, 도움 없이 해내야 하는 것 아닌가? 반대로 생각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도박중독이 병이라면, 도움을 받아 치료해야지, 무슨 의지(意志)가, 왜 필요하다는 거지? 그저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바로 그 점이 중독과 회복에 대해 가장 오해가 많은 점이자, 이해하기가 어려운 점입니다.
중독이 왜 의학적 진단 안에 들어왔을까요? 신체(뇌)의 변화가 나타나며, 치료를 통해 경과에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뇌의 변화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충동을 조절하는 브레이크(전두엽)가 고장 나는 것이고, 둘째는 보상에 대한 민감성을 담당하는 변연계 보상시스템이 오직 도박에만 반응하도록 변하는 것입니다.
도박(으로 큰돈을 따는 경험)은 자연 보상(일상적인 즐거움)으로 누릴 수 없는 도파민의 폭발을 경험하게 하며, 이는 뇌에 강력하게 각인됩니다. 하지만 모든 도박자가 뇌의 변화에 이르는 '중독'에 이르지는 않습니다. 억제 능력(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지 않는 절제력)이 약한 사람도 있고, 억제 능력은 강하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유전적 취약성을 타고났을 수도 있습니다. 도박을 부추기는 환경을 벗어나기 어려운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도박을 반복하다 보면, 우리의 뇌는 일상적인 즐거움을 더 이상 즐겁다 느끼지 못합니다. 도박과 관련된 자극만이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습니다(현저성 salience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도박을 계속하다 보면 점점 더 도박만이 삶의 즐거움이자 원동력이 되고, 도박을 멈추고자 하는 조절능력은 힘을 발휘하기 어려워집니다.
이는 뇌에 마치 '지름길'이 생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기쁨도, 슬픔도, 짜증도, 분노도, 돈이 필요한 것도, 돈이 많은 상황도 모두 도박으로 해결하고 도박만이 살아갈 유일한 길이라고 느끼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뇌에 한 번 새겨진 '도박 지름길'은 단순히 결심만으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뇌가 자동으로 도박이라는 길을 선택하게 되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 때문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알게 모르게 도박으로 향하기 때문입니다. 부지불식간에 했던 말과 행동이 도박으로 향하는 지름길인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는 정신과 마음의 문제는 피검사로, 뇌영상촬영으로 밝혀지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말과 행동이 증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도박에서 벗어나려면 우리의 의지(意志)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를 도와주고자 하는 것에 '의지(依支)'하기 위해 '의지(意志)'를 부려야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벗어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이를 '회복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 (many pathways)'라고 표현합니다. 환경을 조성하는 것, 개인 상담과 교육, 가족 상담과 교육, 자조모임 참석, 약물치료, 기타 등등 다양한 방법의 핵심은 '나 홀로의 힘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신만이 할 수 있지만, 당신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회복을 위해 돕고자 하는 손을 잡는 것(依支),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결심(意志)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