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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Feb 28.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43. 시간을 우리 편으로 만들기

  '시간'만큼 강력한 치유 도구는 많지 않습니다. 아무리 마음 아픈 일도 시간이 지나면 처음만큼 날카롭지 않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생각할 공각이 생기고 나름대로 소화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료실에서 제 목표 중 하나는 '내담자가 어려움과 고통을 스스로 소화해 낼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벌어내는 것'입니다.


  정신과 진료실에는 종종 죽고 싶은 사람이 찾아옵니다. 죽고 싶은 사람은 이렇게 살아서는 무엇도 나아지지 않고 어느 것도 해결될 것 같지 않으며 내가 죽어야지만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 순간에 주변의 권유든, 스스로의 판단으로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러 진료실에 오는 것입니다. 제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신이 주신 기회'입니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꽉' 막혀 있으면, 오죽했으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을까요? 그야말로 사면초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조이는 느낌일 것입니다. 사방에서 조여 오면 시야가 좁아집니다. 평소라면 훨씬 유연하게 생각하고 다양한 대안을 마련해 낼 수 있는 사람에게도, '그저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입니다. 시간을 우리 편으로 만든다는 것은, 중요한 결정을 잠시 보류하고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봐주는 누군가와 함께 상황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도무지 꽉 막힌' 상황도, 같이 보면 '어? 이런 구멍이 있었네?' 하는 것을 발견할 때가 많거든요. 또한 지금은 급박해 보이더라도,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면 묘한 생각의 전환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수개월 전 짧게 입원하셨고, 퇴원 즈음까지도 자살 사고가 임박했던 한 분이 떠오릅니다. 퇴원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본인이 강력히 퇴원을 주장하셨고, 퇴원의 약속은 '1주 후 외래에 오기'였습니다. 첫 2달은 매번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 1주간 살아낸 것, 죽음이라는 되돌릴 수 없는 행동 결정을 1주간 미룬 것에 대해 칭찬해 드리고, 지금 상황을 최대한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고 다양한 대안을 찾아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렇게 1주, 1주 삶의 결정을 미루면서 그분은 자신이 죽음을 결심했던 상황을 곱씹어보고, 죽음으로 잃게 될 것에 대해 생각해 보고, 죽음만이 유일한 대안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찾아내셨습니다. 매주 그분이 접수하시는지 조마조마하며 기다렸던 생각이 납니다. 이제는 꽤 많이 여유로워지셔서 농담도 하시고 지금 처한 여러 어려움을 하나씩 해결하며 지내고 계십니다. 


  살다 보면 삶에 더 이상 답이 없다고 느낄 때, 이제 정말 끝내야 될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찾아옵니다. 그럴 때 시간에게 속지 말고 시간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보세요. 중요한 결정은 최대한 뒤로 미루고, 믿을만한 사람과 상의하고, 심호흡하고, 잠을 많이 자면서 시간을 끌어보세요. '이렇게도 살아지는구나!' 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올 것입니다.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지 않는 한 삶에는 무엇이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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