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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Mar 01.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44. 기다림에 관해서

  여러분은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약속시간에 맞춰 나갔는데 상대방이 늦으면 불쾌해지고, 예상보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짜증이 올라옵니다.


  기다린다는 말은 한자로 쓰면 기다릴 ()입니다. 어원사전을 보면 ( ) 과거에 관청이었다고 합니다. () 변은 '조금 걷는다' 의미로, 기다린다는 말은 '관청에 간다' 의미였다고 합니다. 관청의 업무 속도가 매우 더뎌서 나중에 '기다린다' 의미가 되었다고 합니다. 기다린다는 것이 그저 멈추어 () 있는 것이 아니라, '관청에 간다' 목적이 확실하며 매우 적극적인 행동이지만, 많은 사람이 기다림을 지루함, 무료함과 동일시하는  같습니다.


  기다림이 싫은 이유  하나는 기다리는 대상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 기다림은 남의 손에 달린  같, 나의 통제 밖이라는  언짢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기다린다’라 동사의 주어는 ''입니다. 나를 기다리게 만든 사람은 상대방이지만, 기다림의 주체가 ''임은 변함이 없습니다. 나는 기다림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기다림을 선택함으로써 나는 상대방이 기다리지 않게 만들  있기도 하고, 기다림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언제든 기다림을 중단할 수도 니다. 그런 맥락에서 기다림은 목적이 확실하며 적극적인 행동임은 틀림없습니다.


  다만 기다림은 난이도가 높은 행동으로, 아무나 ‘쉽게’ 하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을 배울 때는 항상 연습이 필요합니다. 아이들 자라면서 기다리는 방법을 배워야 하듯, 어른이 되어서는 ‘성숙하고 세련되게’ 기다리는 것을 계속 연습해야 니다. 어른들의 기다림은 예측하기 어렵고 까다로울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기다림 자체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 기다리는 동안 나를 괴롭히지 않는 , 나아가 기다림을 즐길  있는 , 그리고 기다림 끝의 긍정적인 모습을 예상하고 그릴  있는 것과 같은 것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다행인 것은 연습할수록 숙련되고 새로운 즐거움을 찾을  있다는 것입니다.  진료시간은 상당히 들쭉날쭉해서 예측이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이 답답하기는 하지만 여럿이 근무하는 환경에서 저에게 시스템을 맞출  없으니 내담자의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여긴  이렇게 기다려요!’라고 화를 내고 들어오시던 분이 시간이 지나면서 ‘ 분은 처음 오신 분인가 봐요?’라고 물어보시거나 ‘선생님 많이 힘드시겠어요’라고 말씀해주시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기다리는 시간 동안 저와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그려보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시기도 합니다. 도무지 기다릴 수 없을 때는 ‘다시 오겠다’고 진료를 미루는 선택을 하시기도 하고요. 그렇게 기다림을 연습하고 그 안에서 나름의 기다림을 배워가시는 것 같습니다. 내담자분들의 그런 모습에서 저도 항상 많이 배웁니다.


  여러분의 기다림 스킬은 어떠신가요? 지금 당신은 무엇을,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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