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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건우 Jul 08. 2024

참을 수 없는 사랑

참을 수 없는 사랑


코엔 형제 작품. 로맨스 영화, 사랑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감독이 과연 얼마나 될까. 코엔 형제는 블랙 코미디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뛰어난 형제 감독이지만, 이 영화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또 다른 명작이다. 코엔 형제 특유의 완벽한 시나리오, 놀라운 복선과 반전이 어김 없이 돋보이고, 배우들의 연기 또한 최고여서 전혀 지루할 틈이 없다.

내가 코엔 형제를 워낙 좋아해서 그렇겠지만, 이 작품을 보는 내내 즐거웠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처음 보는데,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게 이상할 정도다. 예전에도 어딘가에서 밝혔는데, 지금까지 내가 본 수천 편의 영화 가운데 가장 훌륭한 영화를 고른다면 나는 단연코 '코엔 형제'의 영화다. 스탠리 큐브릭, 마틴 스콜세지, 켄 로치, 박찬욱, 봉준호, 페데리코 펠리니,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라스 폰 트리에, 다르덴 형제... 손가락에 꼽는 감독들도 엄청 많지만 '영화'의 재미를 말한다면 코엔 형제만큼 완벽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드물다.


헐리우드의 3류 프로듀서 도노반(제프리 러쉬)은 스포츠카를 타고 베버리 힐즈 언덕을 오른다. 그의 차에서는 '사이먼과 가펑클'이 노래하는 '더 복서(The Boxer)'가 흘러나오고, 도노반은 이 노래를 흥겹게 따라 부른다. 이 노래는 경쾌하게 들리지만, 가사는 비참하고 슬프다. 1962년, 쿠바에서 출생해 미국에서 활동하던 프로복서 베니 피랫(Benny Perat)이 링 위에서 경기를 하며 상대 선수에게 너무 많이 맞아 결국 사망한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이때 경기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심판이 상대 선수의 일방적 공격을 지켜만 보고 말리지 않고 있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사이먼은 뉴스를 보고 이 사실을 알고, 이 가슴 아픈 이야기를 노래로 만든다. 무려 7년이 지나 '사이먼과 가펑클'은 이 노래를 발표하고, 대단한 성공을 거둔다. 

도노반이 이 노래를 부르는 건, 자신이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성공한 사람이라는 걸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베버리 힐즈에 사는 사람은 이미 상류층이라는 걸 인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노반이 집에 도착하자 문앞에는 수영장 청소차가 서 있고,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 아내는 허둥지둥하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아내가 외간 남자를 끌어들여 바람을 피웠고, 도노반은 참지 못하고 도망치는 두 사람을 향해 총을 쏘지만 맞추지는 못한다. 이 장면은 주인공 마일스(조지 클루니) 변호사를 보여주는 가벼운 장치다.

이제 타이틀이 올라가는데, 이때 나오는 노래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르는 '의심하는 마음(suspicious minds)'이다. 이 노래는 엘비스가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대중 앞에 서려고 준비한 노래로, 엄청난 성공을 한다. 이 노래 가사는 그대로 이 영화의 주제가 되고, 주인공들의 심리 상태를 말한다.

마일스는 로스엔젤레스에서 매우 성공한 이혼 전문 변호사다. 그는 직업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아쉬울 것도, 부러울 것도 없는 중년 남자다. 그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그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다. 결혼하면 재산의 절반을 뺐기는 법 때문인데, 그래서 마일스는 자신만의 '혼전 계약서'를 가지고 있다. 결혼 전에 만든 자기 재산을 나중에 이혼하면서 아내가 절반을 가져가는 것을 철저하게 막으려는 장치를 만들어 두었다.


마릴린(캐서린 제타 존스)은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한 다음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하면서 남편의 재산 절반을 차지하는 걸 전략적으로 실행하는 '이혼 전문 결혼 사기꾼'이라고 볼 수 있다. 마릴린 말고도 그의 친구들 대부분이 결혼을 수단으로 삼아 재산을 불리는 게 목적이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더 없이 천박하며, 오로지 남편의 재산을 어떻게 탈취하는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코엔 형제는 이혼 전문 변호사와 사기에 가까운 결혼을 통해 돈 많은 남자의 재산을 갈취하는 여자를 전면에 드러내 이들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가를 실험한다. 영화의 주제는 '진정한 사랑'이지만, 드러내는 방식은 미국 사회의 허위 의식과 천박함, 돈만 쫓는 타락한 사회를 비꼬고 있다.

말로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하면서도, 이들의 실제 목적은 언제나 '더 많은 돈'에 있다는 걸 코엔 형제는 웃으면서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미국의 실체, 미국의 진짜 모습은 오로지 돈 밖에 모르는 타락한 세상이며, 숭고한 사랑이라는 수사는 단지 돈을 더 많이 차지하려는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걸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마일스와 마릴린의 만남은 처음에 적대적 관계로 만나고, 마일스가 자기 의뢰인이 재판에서 이기는 결과를 만들면서, 상대방이었던 마릴린이 남편의 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게 만든다. 마일스는 자기 직업에 충실했고, 의뢰인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 당연한 결과일 수 있지만, 마일스의 마음 한 쪽에서 마릴린을 향한 관심과 사랑이 폭발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영화는 역설적으로 이혼 전문 변호사와 재산을 노리는 사기 결혼 전문가가 만나 '진정한 사랑'을 한다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건 한편으로 미국의 물신주의를 극복하려는 긍정적인 장면이기도 하면서, 이런 아름다운 결론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환타지라는 걸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코엔 형제의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도 나온다. 마일스가 마릴린과 진정한 사랑이라고 확신하며 결혼했지만, 그것까지도 사기 결혼이라는 게 드러나고, 마일스의 재산 절반을 마릴린에게 뺐길 위기에 놓인다. 마일스는 마릴린을 청부 살해할 목적으로 위지 조(어윈 케이즈)를 찾아가 마릴린을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위지 조는 마릴린의 집으로 찾아가지만 암살에 실패하고, 오히려 돈을 두 배로 주겠으니 마일스를 죽여달라고 말한다. 이때 마일스는 마릴린의 전 남편 제프리 러쉬(도노반 도날리)가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엄청난 재산을 마릴린이 상속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 사실을 알리러 자신의 집(마릴린이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가는데, 그곳에서 위지 조와 부닥친다.

위지 조는 마일스를 죽이려는데, 천식이 있어 흡입기를 들이켜다 권총과 착각해 자기 입에 총을 넣고 방아쇠를 당긴다. 이 장면은 어찌보면 어처구니 없고, 말도 안 되는 듯 보이지만, 코엔 형제의 연출에서는 폭소가 터지는 장면이다.


코엔 형제의 영화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아이러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딜레마에 놓이고, 그건 아주 사소한 실수나 욕망에서 비롯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탐욕과 욕망이 우연한 사건과 겹치면서 어떻게 거대하게 자라고, 주변 사람들을 해치며, 심지어 자신까지도 꼼짝할 수 없는 지경에 놓이는가를 블랙코미디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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