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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Oct 22. 2019

인생이 공평한지 아니 공평한지

끝까지 버티는 자에게만 희망이 응답한다

“시간이 희망을 무너트리기도 하지만 반대로 시간이 희망을 완성하기도 한다.”


친구 몇몇이 영화 한 편을 보려다가 상영시간을 놓쳐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보려고 했던 영화는 「판도라」,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이야기는 분분하다. 조용히 듣던 단아가 뜬금없이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를 했다. 


 “어떡하니, 내 상자에는 아무것도 안 남아 있네. 텅텅 비었는데 말이야, 바닥에 희망 하나가 안 붙어있더라고.”


 그 이야기를 듣던 친구들은 조용히 화제를 돌렸다. 그녀의 어려운 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단아는 몇 년간 연이어 어려운 일들을 겪었다. 희망만 가지고 사는 데 마음의 근력이 딸린다. 이제 아무리 ‘세상은 공평하다’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믿기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아무리 노력해도 평탄함을 얻기 어렵다. 종교에 몸담으신 어르신들도 “사실 신은 공평하지 않다.”고 고백하신다. 세상의 불합리에 당하고 또 당하다 속상한 우리는 누구에겐가 정확히 화낼 곳도 모르면서 곧잘 화를 내고, 곁을 지켜준 이에게 곧 미안해한다. 끝까지 화를 참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광역버스 안이 어둑어둑하다. 천장에 플래시 하나만 빛나고 있다. 니콜라이 야로센코의 그림 하나가 떠올랐다. 「죄수」라는 제목을 가진 이 그림은 늘 나를 울컥하게 한다. 죄수의 외로운 몸짓과 대조되는 밝은 빛이 너무나 다정해서 그렇다. 


 이끼와 곰팡이가 잔뜩 낀 감옥에서 빛이 들어오는 곳이란 단 한 군데다. 천장 바로 아래 붙은 작디작은 창문 하나가 이 공간의 유일한 광원이다. 창문의 안팎으로 격자 모양 철창이 쳐져 있으며 벽은 흙벽 그대로의 축축한 질감을 드러내고 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책상 위에는 양철로 된 물컵 하나가 찌그러진 채 놓여 있고 그 옆에는 성경책 하나가 비스듬히 놓였다. 침대와 거리나 각도로 보아 침대에서 마시던 물병과 누워서 보던 성경책을 손닿는 곳에 올려놓은 듯하다. 그림에서 그려진 침대 옆이 벽일 것을 고려했을 때 창문 옆벽까지 좁디좁은 독방의 폭을 예상할 수 있다. 이 어두컴컴한 장소에서 죄수는 홀로 갇혀 있다. 그의 갑갑함이 숨 막히게 전해져 온다. 그런 그가 바라는 것은 바깥세상을 보는 것이다. 죄수는 이 빛을 보기 위해 부실한 책상을 밟고 올라선다. 창틀 사이로 멀리 비치는 바깥세상을 바라보려고 고개를 들고 있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역광 효과를 가지고 있으며 침체된 어두운 방과 대조된 밝은 창문과 죄수의 얼굴에 비치는 빛은 역동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작은 창문 하나만으로 죽어가는 어둠의 공간은 생생한 빛과 생명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니콜라이 야로센코, 「죄수」/ 「삶은 어디에나」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야로센코Nikolai Alexandrovich Yaroshenko, Никола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Яроше́нко, 1846~1898는 지금의 우크라이나 지역인 포르타와 출신이다. 여느 화가들이 그러하듯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화가가 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림을 좋아하던 야로센코는 일단 부모의 뜻을 따르기를 한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이어 군인 생활을 하면서 1863년, 야로센코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군대학교로 옮겨가면서 크람스코이Ivan Kramskoy의 드로잉 학교Society of Drawing School of Arts에 등록한다.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 아카데미에 청강생으로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화가로서의 길을 준비한다. 그는 소장으로 퇴직하는 생애의 말년까지 군인 생활을 하면서 화가로서 훌륭한 그림을 그렸는데, 야로센코처럼 지치지 않는 팔방미인을 보면 역시 시간은 쪼개어 쓸수록 늘어나는 것이며, 가끔은 시간을 지배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야로센코는 1875년, 이동파 전시에 처음 참여한다. 1876년, 만장일치로 이동파 학회 의원이 되었으며, 크람스코이Ivan Kramskoi와 함께 이동파의 리더십 역할을 하게 된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동파는 19세기 러시아 미술사의 꽃과 같은 존재였다. 왕과 귀족을 위해 봉사하던 미술의 역할에서 벗어나 민중을 위한 미술의 역할을 하기를 결심하고 행동한 것이 이동파 화가들이었다. 생명력에서 고상함이 나온다는 것을 나는 이동파를 통해 처음 알았다. 화가들은 가난한 민중을 찾아가 예술을 펼쳐놓았다. 민중의 생활을 기록한 풍속화나 러시아의 광활한 자연을 표현한 풍경화가 이동파 화가들의 뜻에 일치하였다. 바로 야로센코의 그것 같은 그림이었다. 


 니콜라이 야로센코는 이동파 정신을 물려받은 성골 멤버였다. 이동파의 수장과도 같았던 크람스코이의 사후 야로센코는 이동파를 추슬러 일으켜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동파의 마지막 시기는 야로센코로 인해 연장된다. 그 최선이 그의 매혹적인 그림이 아니었을까. 화가의 특기는 인간의 삶을 주제로 한 풍속화이다. 야로센코가 그려낸 그림은 사회적인 고민과 그 맥을 같이 한다. 화가는 당대 러시아 혁명가들의 생각에 결을 같이 하고 있었다. 세상의 불합리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인간의 고통에 시선을 가까이 두었다. 무엇보다도 인간을 사랑했다. 화가는 초상화를 그리는 데도 특출났다. 화가는 인물을 그리기 전에 먼저 그 인물을 이해하고자 했다. 인물의 겉모습이 아니라 영혼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야로센코는 동료 화가 뿐 아니라 배우, 작가 등 마음이 닿은 사람들을 화폭에 옮겨 백여 개의 초상화를 남겼다. 특히 그는 러시아 지식인을 그리기 좋아했다. 혁명을 마음에 품은 학생들의 모습도 그림에 담았다. 군인이나 노동자들의 삶, 주로 낮은 삶을 사는 사람을 그려낸 니콜라이 야로센코의 그림은 관람자의 마음을 건드린다. 그는 깎은 듯 잘생긴 외모 못지 않게 훌륭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타인에게 너그러웠고 자신에게 엄격했다. 동시대인들은 야로센코를 ‘예술가의 양심’이라고 불렀으며,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은 화가를 ‘경이로운 예술가이자 현실 생활의 뛰어난 심리 분석자(a marvellous artist and wonderful psychologist of real life)’라고 극찬했다. 


 야로센코 그림의 매력은 인간미와 긍정성이다. 여기 소개한 「죄수」 역시 그렇다. 죄수는 어떤 일로 감옥에 들어왔는지 알 수 없다. 타인의 접촉을 금지한 독방에 있는 걸로 보아하니 사상범이나 정치범이 아니었을까 상상해 볼 뿐이다. 당시의 러시아 뿐 아니다. 역사적으로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의 슬픔이 없는 나라가 (내가 아는 한) 없다. 큰 죄를 지어서라기보다는 작은 죄를 지었지만 큰 형벌을 받은 죄수가 적지 않다. 억울한 마음을 가지고 세상 원망만 할 법도 한데, 이 죄수에게서는 괴로움이나 원망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담담한 외로움이 흘러나올 뿐이다. 누구에게 하소연도 할 수 없는 차가운 독방에서 꽁꽁 얼어붙은 외로움, 죄수는 그것을 뒤로하고 책상을 오른다. 창살로 들어오는 빛에 얼굴을 기댄다. 그런 그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역시 ‘희망’이다. 


 그림을 보면서 쇠귀 신영복申榮福 선생님을 생각했다. 나는 통일혁명당 사건이 어떤 것인지 정치적인 내용은 잘 모른다. 그분의 얼굴을 보았고 그분의 이름이 박힌 책 몇 권을 읽었을 뿐이다. 신영복 선생님은 놀라운 얼굴을 가진 분이다. 사형을 겨우 면한 무기수 신분으로 기약 없는 감옥 생활을 버텨온 분의 얼굴에 억울함의 흔적이 없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밝고 맑은 표정을 지켜보면 그분이 통과한 고통의 시간을 가늠조차 할 수 없다. 갑작스레 닥쳐온 불행 때문에 생의 가장 찬란한 시절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20년 무기징역을 살아오는 동안 수시로 고민했습니다. 나는 왜 자살하지 않고 기약 없는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가?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햇볕’ 때문이었습니다. 


겨울 독방에서 만나는 햇볕은 비스듬히 벽을 타고 내려와 마룻바닥에서 최대의 크기가 되었다가 맞은편 벽을 타고 창밖으로 나갑니다. 길어야 두 시간이었고 가장 클 때가 신문지 크기였습니다. 신문지만 한 햇볕을 무릎 위에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은 살아 있음의 어떤 절정이었습니다.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햇볕 때문이었습니다. (중략) 겨울 독방의 햇볕은 내가 죽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였고 생명 그 자체였습니다. 


나는 신문지 크기의 햇볕만으로도 세상에 태어난 것은 손해가 아니었습니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받지 못했을 선물입니다. 지금도 문득 문득 그 시절의 햇볕을 떠올립니다. 


_신영복, 『마지막 강의-담론』, 돌베개, 2015, P.425


 햇빛 한 줌을 기다리며 하루를 기다리고, 햇빛 한 줌 때문에 삶을 버텨왔다는 그분의 고백을 떠올린다. 언젠가 석방될 것이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 채 20년의 시간을 버텨온 한 인간을 생각해 본다. 부당한 시간이 망가뜨리지 못한 맑은 인간 하나를 생각한다. 암흑의 시간 가운데 그분이 고이 품었을 빛 한 줌을 상상해 본다. 암흑의 시간 품었던 찬란한 지성과 견고한 글씨는 인문학자로서도 예술가로서도 범접할 수 없는 경지다. 그분이 품었던 희망의 빛은 마지막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희망을 무너트리기도 하지만 반대로 시간이 희망을 완성하기도 한다. 신영복 선생님의 삶이 바로 희망의 증거 아니었는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희망을 버리지 않고 시간을 버티는 것이다. 야로센코의 ‘죄수’는 끝까지 희망을 간직할 것 같다. 언젠가 기한이 다 되면 그는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끝까지 버티는 자에게만 희망이 응답한다.  


 나 역시 끝까지 기다려볼 것이다. 인생이 공평한지 아니 공평한지, 그걸 확인해야 신에게 정확하게 화를 낼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

신영복마지막 강의-담론돌베개,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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