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정희매 Jun 23. 2020

연습문제_워킹맘에게 워라밸이라뇨?

워라밸을 딱 맞추고 싶은 분들께

월요일 점심, 처음으로 A와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점심시간보다 15분 앞당겨 나왔는데 식당들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북적했습니다. 원래 가려고 했던 가정식 백반집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발길을 돌렸습니다. 사람이 적은 비빔밥 가게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매주 회의 때마다 얼굴을 보고 회사에서도 자주 마주치는 직원들끼리도 마음먹고 식사 약속을 하지 않으면 이렇게 몇 년을 알고도 처음 식사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매번 우리 팀원들끼리만 식사하지 말고 가끔씩은 다른 동료들과 식사하는 약속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를 벗어나서 그런지 우리들의 이야기 주제는 좀 더 개인적이고 좀 더 다양한 내용들로 뻗어나갔습니다. A가 대학 때 교환학생으로 노르웨이를 갔는데 정작 노르웨이 친구들은 사귀지도 못하고 동양인들끼리만 지내다 온 이야기, A의 친정어어머니가 요즘 코로나 때문에 집콕하시면서 가방이며 천 마스크며 손수 만들어 주시는 이야기, 내가 지난 주말에 첫째 아이 국기원 심사 다녀온 이야기 등... 그러다가 처음 입사 면접 때 이야기로 주제는 흘렀습니다.


Ally: 매니저님은 입사 면접 때 박 팀장님이 면접 봤어요?


A: 네, 1차 면접은 저희 팀장님이 보셨지요.


Ally: 뭐 물어봤는지 기억나요?


A: 워라밸(work and life balane)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어떤 것을 고를지 물어보셨어요?


Ally: 그래서 뭐라고 답했어요?


A: 저랑 다른 남자 면접자랑 둘이 들어갔는데, 그 남자가 본인은 회사 일이 더 중요하다면서 필요하다면 야근이나 주말근무도 마다하지 않고 다 나오겠다고 거의 침 튀기다시피 이야기하는 거예요.


Ally: 하하하 진짜요? 저도 그런 사람 봤는데, 오히려 뽑아 놓으니 몸 받쳐 일하기는커녕 금방 퇴사하더라고요. 그래서 매니저님은 뭐라고 했어요?


A: 저는 그 남자랑 똑같이 이야기 하기는 싫어서 오히려 반대로 이야기했지요. 일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내 삶이 더 소중하다고. 그렇다고 해서 일을 소홀히 하겠다는 뜻은 아니고 오히려 근무시간에는 일을 더 열심히 효율적으로 일해서 퇴근시간은 지키고 싶다고 했어요.


Ally: 그게 박 팀장님 스타일인데, 효율적으로 일 잘하는 거. 그래서 매니저님이 뽑힌 거네요.


A: 네 그런가 봐요. 하하 그런데 아기를 낳고 보니 워라밸이 어디 있나 싶어요. 워킹맘에겐 워라밸은 절대 없는 것이더군요. 아무리 집에 정시에 들어가도 집안일과 육아를 하다 보면 그것 역시 '라이프(life)'가 아닌 '워크(work)'에 해당되는 거 같아요.


Ally: 맞아요. 저도 늘 하루에 2번 출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지내요. 퇴근길이 또 다른 출근길인 샘이 지죠. 그런데 2번째 출근길은 벌써 기력이 다 빠져 있을 때가 많아요. 저녁 차려 먹고 씻고 나면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 정도로 피곤한데 첫째 공부 봐주랴 둘째랑 놀아주랴 집안 정리하랴 하다 보면 10시 이후에는 양치할 기운도 없다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퇴근할 때 조금이라도 기운 내라고 스스로에게 응원하면서 홍삼이랑 비타민 챙겨 먹고 퇴근해요.


A: 네 저도 그래야겠어요. 오히려 육체전+정신전이 더 심화되는 건 회사가 아니라 집이니깐요. 저두 점점 기운 빠지니깐 괜히 딸에게 짜증 내는 게 늘어나는 거 같아요. 내년에 육아휴직하고 육아와 가사에만 전념하면 제 생활도 좀 나아지겠지요?


Ally: 악담으로 하는 얘기는 절대 아니지만, 육아 휴직한다고 절대 한가롭거나 편해지지는 않아요. 육아, 가사, 업무 3가지 영역에서 육아와 가사 2가지 영역으로 가짓수가 줄어들지만요, 육아와 가사에 대해 신경 쓰고 할 일이 양적으로 드러나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내가 할애해야 할 시간과 노력의 양은 비슷한 샘이지요. 집안일을 하고 아기를 보다 보면 회사에서 앉아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저도 누군가 '아기 볼래? 일할래?'라고 물으면 '일한다'라고 대답하거든요.


A: 아!! 정말요? 매니저님? 전 그래도 육아 휴직하면 몸과 마음이 확연하게 편해질 줄 알았는데... 전 요즘 일과 육아 둘 다 제대로 건사 못하고 둘 다 엉망이 되어가는 느낌이에요. 워킹맘에게 워라밸은 있기라도 한 걸까요? 매니저님 보면 일이랑 가정이라 다 잘 균형 있게 해 나가는 거 같은데요.


Ally: 저도 한동안은 일과 육아 둘 다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서 자책도 많이 하고 속상해할 때가 정말 많았어요. 일이든 육아든 100점, 100점으로 잘하고 싶은데, 아니 100점까지는 아니어도 각각 80점 정도는 하고 싶은데, 정작 어느 하나도 50점 못 받는 느낌이었거든요.


실제로 출산과 육아휴직 이후에 승진에서 몇 차례 누락되는 고배를 마시고 나니 이제 업무적으로 인정받고 잘 나가는 길은 끝났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첫째가 손톱을 물어뜯거나 둘째가 언어가 늦어서 언어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제가 일하느라 우리 애들이 불안감과 언어지연이 생겼나 보다 하고 정말 많이 자책하고 후회했어요. 업무로도 엄마로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서 자존감이 바닥을 내리쳤지요.


하지만 자책한다고 나아지는 것은 별로 없었어요. 그래 봤자 제 안에 저를 향한 미움과 함께 나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힘든데 나만큼 노력하며 도와주지 않는 남편에 대한 원망만 커지더라고요. 그 미움과 원망은 다시 자녀들에게 은연중에 전달되어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생각들을 조금씩 바꿔가기로 마음먹었어요. 일하고 육아하고 집안일을 하면서 이 정도로 하고 있는 것은 잘하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독려해주고 칭찬해주기로 했지요. 누구도 칭찬해주지 않는데 제 스스로에게 '잘했다' 마음먹는 것은 물론 쉽지는 않아요. 그래도 자꾸 연습하는 것이지요.


집안 정리하고 잠깐이나마 깨끗한 공간을 자꾸 들여다보면서 혼자 빙그레 만족해 보기도 하고, 퇴근 후 부지런히 마련한 저녁식사도 사진 찍어서 SNS에 올려보며 친구들의 응원을 받거나 아이들이 맛있다고 엄지 척해주는 짧은 쾌감도 느껴보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아이들의 단점이 물론 부모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확률이 높겠지만 그게 반드시 제가 직장을 다녀서라고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손톱을 물어뜯거나 언어지연은 워킹맘이 아닌 전업맘의 자녀에게서도 생길 수 있는 일이니까요. 내가 일을 해서 아이들에게 불안감과 언어지연이 생겼다고 생각하면 내가 일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그걸 해결한 방안이 없다고 생각돼요. 그렇지만 내가 일을 해서가 아닌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하면 일을 하면서도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 보이지요.


화가 날 때 큰 소리 지르지 않기(남자아이들 키우는 엄마에겐 이게 정말 고치기 힘들어요),

아이가 잘못했을 때 고의로 한 게 아니라 실수였다면 혼내지 않기(물을 엎지르는 것은 절대 혼낼 필요가 없고 다음에 좀 더 조심하라고 주의만 주면 됩니다),

출근길과 퇴근길에 아이들을 꼭 안아주면서 '사랑한다' '고맙다' 이야기해주기,

짧은 시간이지만 저녁식사 때 눈 마주치고 이야기 하기,

30분이라도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거나 원하는 놀이 같이 하기,

틈틈이 책 읽어주기 등이지요.   


자책하는 걸 멈추고, 조금이라도 나 자신과 아이에게 도움이 될 길을 찾아보세요.


A: 아! 그렇군요. 저도 자책하는 마음은 좀 내려놔보도록 할게요. 그렇지만 정말 정신과 육체적으로 힘든 날들이 끝없이 지속되기도 하고 일과 육아의 균형을 맞춘다는 게 정말 힘든 거 같아요.


Ally: 일(Work)과 삶(Lifte)이든, 일과 육아이든 평형 저울에 올려둔 것처럼 똑같이 균형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아요. 그것을 이상형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늘 터무니없이 부족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죠. 워라밸이니 일과 육아의 균형이니 하는 말들 속에 들어있는 "균형(혹은 밸런스)"에서 평형을 이룬 균형이라는 생각을 버려버리세요. 저는 시소를 타는 것처럼 살아가는 과정에서 무게가 계속 왼쪽, 오른쪽 옮겨 다니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해요. 어떤 날은 왼쪽으로 좀 더 쏠린 삶을 살고, 어떤 날은 오른쪽으로 확 기울어진 삶을 살기도 하고 그런 가운데 중간에 살짝씩 평형을 이루는 순간들도 맛보겠지요. 하지만 그건 정말 '찰나'이고, 대부분은 완벽한 균형을 이루지는 않아요. 회사일에 몰입하고 아이들에게는 다소 소홀해지는 시간도 있고, 아이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서 회사 일은 살짝 느슨해지기도 하는 것이죠.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육아휴직은 최대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이들 쪽으로 많이 기울어진 시소 모습인 샘이죠. 아이들에게 훅 빠져서 지내는 시간. 지겹도록 아이들과 몸을 부딪히고 엉겨 붙어 지내보는 시간. 다시 복귀해서는 회사 쪽에 좀 더 몰입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게 균형이 깨졌다고 걱정하거나 불안해할 필요는 없어요. 일에 집중을 하든 자기 계발에 집중을 하든 육아에 집중을 하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시점에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좀 더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게 본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A: 아~ 그렇네요. 매니저님! 완벽한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게 이룰 수 없는 욕심이 되어 버리겠네요. 저도 이제 내년이면 1년간 아이에게 확 기울어진 삶을 살아보겠네요!! ㅎㅎ 살짝 기대도 되고, 살짝 걱정도 됩니다


Ally: 에고 점심시간 지났네요. 빨리 들어가야겠어요.


우리는 서둘러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짧은 점심시간이지만 동료와 폭풍 수다 속에 먹는 비빔밥은 참 맛있었네요.

내 손으로 정성스레 (하지만 초스피드로) 준비한 저녁상을 아이들과 함께 먹는 것도 저는 참 좋아합니다.

집밥을 먹을 때는 집밥이어서 좋아하고, 회사 밥은 누가 차려준 밥이어서 좋아하고

이것 또한 제가 회사와 집을 행복하게 오고 가는 작은 기쁨입니다.

 

워라밸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일이나 삶이 아닌 '균형'이다. 균형은 어떻게 잡는가? 균형은 하루 24시간을 무 자르듯 삼등분해서 8시간은 일하고, 8시간은 자기 계발이나 취미 생활을 하고, 8시간은 잔다고 해서 잡히는 것이 아니다. 일과 삶의 균형은 나만의 템포, 즉 내 중심이 온전히 잡혀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중략)
 진정한 워라밸은 '내가 어떻게 해야 행복한가를 알고 그에 맞춰 균형을 잡는 것'이다. 어쩌면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휴식과 워라밸 개념조차 남이 정해준 대로, 물리적인 시간만을 기준으로 계산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렇게 된 이상 마트로 간다, 김경욱 지음] 중에서


육아와 일 모두 챙기며 행복한 삶을 보낼 여러분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