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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정희매 Aug 24. 2020

작은 산은 이렇게 넘어가요

육아휴직을 사용하며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오는 분들께

육아휴직을 하고 나면 느끼게 되는 것 중 하나가 하루하루가 마냥 꿈에 그리던 것만큼 행복하고
재미있는 일들로만 가득 차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기대했던 부분들이 있는데 이런 부분들이 자꾸 엇나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 기운이 빠지고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특히 올해(2020년) 육아휴직을 쓰신 부모의 경우, 여러모로 더 힘든 부분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많은 아이들 어린이집/유치원/학교를 거의 안 가고 집에 온종일 붙어있게 되었으니까요. 물론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육아휴직을 할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이 아이들을 봐야 하는 경우, 정말 참기 힘든 순간들이 불쑥불쑥 찾아올 것입니다.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면 기상, 취침, 밥 먹거나 청소하고 외출하는 시간관리에서부터 순간순간의 내 감정까지도 ‘무엇 하나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것을 느끼게 됩니다.


늦게 일어나는 아이의 기상시간을 조정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고, 외출시간을 위해서는 미리미리 준비물을 챙겨놓는 등 외부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외부 환경의 변화 말고도 또 중요한 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 몸과 내 마음 상태에 따라 그러한 외부 상황을 받아들이는 저항력(Resistance)이 바뀌게 되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어느 정도의 힘든 외부 환경에도 담담하게 대응할 수 있는 내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공유드리고자 합니다. 육아와 가사를 하면서 이따금씩 찾아오는 힘듦과 우울증을 극복하는 저만의 작은 팁들입니다. '애게~'라고 생각이 들 수 있을 정도로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 효과가 있는 것이니 육아휴직으로 힘드신 순간순간에 실천에 옮겨보세요.


1. 몸이 지치고 피곤할 때

일단 잠이 보약입니다. 너무 힘든 순간에는 친정에 가든 남편에게 맡기든 아이를 확 맡기고 푹 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취침시간과 기상시간이 일정한지, 즉 같은 시간대에 잠들고 일어나며 수면시간은 충분한지 생각해보세요.


전 육아로 인해 취침이 부족해서 온갖 병을 다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입니다. 그래서 문자 그대로 '잠을 잘 자세요'란 말이 얼마나 무성의하고 오히려 화를 나게 하는지도 잘 압니다. 숙면이 중요한지도 알고 실컷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도 아이 때문에 잠을 못 자는 현실이 정말 답답하지요. 하지만 '어쩔 수 없다'며 혹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라며 참아 넘기지는 말라는 뜻입니다.


더 늦기 전에 적극적인 SOS요청을 해야 합니다. 물론 시간이 어느 정도 해결해주기는 하지만 자칫하다가 시기를 놓쳐버리면 정말 몸이 훅 가버리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래서 무리해서라도 주변에 도움의 손길을 달라고 외치세요. 처음에는 배우자한테도 계속 잠잘 시간을 달라고 요구하고, 편한 친부모님에게도 아이 맡기고 푹 자는 시간을 가지세요. 친부모님이 어려우신 경우 형제. 자매도 좋고, 때론 다소 불편한 시부모님, 장인 장모님께도 도움을 요청하세요.

이 시기에는 체면보다도 내 몸이 훨씬 소중한 시기입니다.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게 어렵고 불편하더라도 감수하고 꼭 내가 쉴 수 있는 시간을 만드시길 바랍니다.    


2. 기분이 우울해지려고 할 때

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 있다가 우울해진 순간이 찾아온다면 1시간이라도 아이를 떼어 놓고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배우자에게 요청을 하고 잠시 다른 공간에 있거나 혹은 뭔가를 산다든가 하는 핑계로 동네 한 바퀴라도 돌고 와야 합니다. 사랑스러운 자녀지만 이렇게 잠시라도 떨어져 있는 시간을 두지 않으면 아이에게 괜히 잔 소리아 짜증을 내는 저를 많이 보게 되었어요.

저는 기분이 우울해지는 순간 걷는 것을 선택합니다. 때론 나를 괴롭힌 어떤 대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전 육아를 하면서 지치고 힘들 때, 혹은 남편과 다투거나 아이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30분이라도 나가서 걷다 보면 울그락불그락 하던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낍니다.


먼저 바깥으로 나가면 실내와 다른 공기가 확 정신을 맑게 해 줍니다. 다른 공기를 쐐는 것만으로도 같은 생각에서 맴돌고 있던 나를 멈추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주변 환경들로 시선을 돌리게 합니다. 걸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고 하늘도 바라보고 나무도 바라보고 그렇게 계속 걷다 보면 답답하게 나를 옭아매었던 그 문제들이 조금씩은 느슨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내 몸이 움직이는 것을 바라봅니다. 평생 걸어 다닌 길이고 항상 내가 내 맘대로 움직인 몸이지만, 이렇게 '걷기'를 위해 시간을 내어 걷다 보면 움직이는 내 모습이 보입니다. 뜻밖에도 내가 스스로 원하는 곳으로 이렇게 걸음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집니다. 발길을 돌려 집을 향할 즈음에는 좀 전에 나를 괴롭히던 문제들은 조금 작아지고 묵묵하게 한걸음 한걸음 걷고 있는 내 모습을 눈에 들어오며, 스스로를 격려하게 됩니다.


물론 집에 다시 들어오면 그 문제는 그대로 있어요. 내가 걷고 왔다고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지요. 하지만 변한 게 딱 하나 있는데 내가 조금 변했습니다. 조금은 내 마음이 노글노글해져서 돌아왔습니다.


특히 걷는 방법은 돈이 가장 안 드는 초절약 치료법입니다. 한동안 제가 시부모님 문제로 힘들어하며 지낼 때 우울한 마음과 슬픈 마음이 너무 가득해져서 정신과나 가족상담센터에 가서 도움을 받아야 하지 않나 생각이 되었어요. 그래서 근처 기관을 찾아 몇 군데 전화를 걸어보았더니 초기 상담료는 10만 원, 이후 상담료는 1회 5-6만 원씩 하더군요. 육아휴직 기간이라 가뜩이나 절약하면 지내고 있는데, 매주 큰돈을 지불하며 상담을 받기 힘들 것 같아 수화기만 들었다 놨다 하곤 말았어요. 물론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훨씬 빠르고 정확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겠지만, 우울증이 경미한 경우에는 제가 추천드리는 민간요법을 한번 시도해보세요.


3. 아이 혹은 남편에게 짜증이 날 때

도통 타협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남편과 말다툼을 할 때, 한없이 칭얼거리며 떼를 쓰는 아이를 바라볼 때, 짜증이 올려오는 것을 느낍니다. 심지어 과거로 막 돌아가 '내가 왜 이 사람과 결혼을 했나', '내가 왜 이 아이들을 힘들게 낳았나' 싶은 생각까지 듭니다.


이때 저는 현재의 힘듦을 느끼면서 괴로워하거나 과거를 돌아보면서 후회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반대로 잠시 미래를 생각해보는 방법을 택합니다.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 같지만 배우자의 연으로 만났지만 나이가 들면 언제가 각자 헤어지게 되는 시기가 올 것이고, 아이들도 부모의 곁을 떠나는 시기가 올 것입니다. 엉뚱하게도 전 그렇게 '헤어짐'을 생각하다 보면, 지금 제가 악을 쓰면 화를 냈던 모습들이 부끄럽고 숙연해지기까지 합니다. '죽음'을 절실히 느낄 때, '살아있음'과 '현재'의 소중함이 더 와 닿는 것과 같은 이치겠지요.   


시작하자마자 끝나는 계절이 바로 봄이지. 봄의 끝자락보다 더 덧없는 것은 없다네. 그러나 봄의 아름다움은 바로 그 단명한 아쉬움에 있다네.
인간의 삶은 슬프다네, 그 단명함 때문에. 청춘인가 했더니 벌써 내 귀밑머리는 속절없이 희어졌네. 하루가 저무는 속도가 화살 같고, 일 년이 촌음 같아, 결국 오늘이 마지막인 듯 살아야만 가장 잘 사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네.     
오늘 죽을 것처럼 살아보자 하니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어 보이네.
사랑하라,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이 말이 얼마나 좋은가!

-구본형의 마지막 편지, 구본형 지음- 중에서  


아이가 다 자라 제 곁을 떠나는 모습을 생각해보면, 지금 과자 봉지를 카펫에 잔뜩 쏟았다고, 콘센트 구멍이 6개나 달린 멀티탭 위에다가 토를 했다고, 형제들끼리 맨날 투닥거리며 싸운다고, 숙제는 하나도 안하도 학원만 왔다 갔다 하며 전기세 내주는 게 아깝다고 소리 지르며 화를 내던 제가 부끄럽고 아이에게 오히려 미안해집니다.


한 번 욱하고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순간, '헤어짐'이 있는 미래를 생각해보세요. 왠지 지금 사랑하고 다시 한 번 안아주고픈 마음이 들 것입니다.


 


용기를 가지고 육아휴직을 내신 혹은 내실 멋진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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