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찐테크 Oct 05. 2022

1기 신도시 재건축이 어려운 이유


요즘은 한 풀 꺾였지만 윤석열 정부가 취임한 시점부터 부동산 시장을 가장 뜨겁게 달궜던 키워드가 바로 '1기 신도시 재건축'이다. 1990년대 초중반에 지어진 1기 신도시는 지역마다, 아파트마다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시범단지처럼 1991년에 입주한 단지는 이미 재건축 연한인 30년을 채웠고 1994~1996년에 완공된 단지도 4년 후면 준공 30년차를 채운다. 1기 신도시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고 신도시가 설립된 이후로 재건축/재개발을 통한 신축 분양이 없었다. 도시 전체가 나이 들어가고 있다.



계획적으로 건설된 신도시이기 때문에 녹지 구성, 교통, 인프라, 학군 등 생활 환경은 잘 갖추어져 있는 편이지만 딱 하나, 아파트가 노후화된 것이 문제이다. 90년대 초중반에 지어진 아파트이기 때문에 당연히 내부 구조나 외관, 주차 등이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에 비해 구식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1기 신도시는 새아파트가 들어서기만 한다면 정말 살기 좋을 것이란 말들을 많이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1기 신도시 재건축은 그리 쉽지 않다. 물론 언젠가는 재건축이 될 것이고 재건축이 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매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문제이다. 윤석열 정부 취임 당시 1기 신도시 특별법을 만들어 1기 신도시의 재건축에 속도를 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8월 발표한 250만호 공급 대책에 써있던 한 문장 '연구용역을 거쳐 도시 재창조 수준의 1기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 수립 추진('24년 중)' 이 문구 하나가 시장의 기대감에 찬물을 확 끼얹었다.



재건축 사업은 그 자체만으로도 최소 10년은 걸리는 장기간의 사업이다. 그마저도 순차적으로 사업이 차근차근 진행됐을 때의 이야기이다. 재건축 분쟁의 대백과사전이라 불리는 둔촌주공 사태를 보면 알겠지만 재건축은 너무 많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이다. 돈이 걸려있는 문제이다 보니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마찰과 분쟁은 피할 수 없고 사업이 장기화되는 경우는 흔하다.



안 그래도 오래 걸리는 사업이기에 지금 당장 사업  추진을 한다고 해도 정말 빨라야 준공 40년차인 2033년 즈음에 입주를 할 수 있는데 2024년에 겨우 마스터플랜 수립을 '추진'한다니.. ? 계획대로 마스터플랜이 수립되지 않아 미뤄지고 사업 추진 과정에서 이런저런 이슈로 사업이 장기화된다면 준공 50년차에도 재건축이 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더 큰 문제는 마스터플랜 수립 이후이다. 설령 마스터플랜이 2024년에 수립된다 하더라도 '도시 재창조 수준'의 재건축을 진행하는게 과연 쉬운 일일까? 안전진단 통과, 조합설립 인가 같은 것들은 1기 신도시 특별법으로 어찌저찌 빠르게 진행한다 해도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30만호의 가구를 일시에 재건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1기 신도시 재건축을 순환 재건축 방식으로 진행하려고 하는 것인데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1기 신도시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빈 땅에 대규모로 아파트를 지었기 때문에 이주 수요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1기 신도시에는 30만호의 주택이 있고 그 만큼의 사람이 살고 있다. 재건축 사업이 진행되어 이주·철거 단계에 이르면 해당 단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만 한다. 이 때 갑자기 임차 수요가 폭발하게 되고 그 많은 수요는 해당 지역에서만 커버할 수 없기 때문에 주변으로 퍼지면서 주변 임차료가 상승한다.



30만호에 이르는 1기 신도시가 짧은 기간 동안 동시에 정비사업을 한다면 아무리 순환 재건축 방식으로 한다 해도 매년 3만호 정도의 이주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이게 1기 신도시에서만 발생하는 이주 수요라는 것이다. 1기신도시가 아닌 다른 지역도 이미 노후화가 심각하기 때문에 재건축, 재개발 등으로 인한 이주 수요는 계속해서 있다. 게다가 주택 건설은 최소 3년의 시간이 걸린다. 한 번 멸실로 이주 수요가 발생하면 해당 이주 수요가 최소 3년간은 지속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되면 매년 3만호의 이주 수요가 균일하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발생한 이주 수요에 누적이 된다.



또 재건축으로 인한 임차 수요는 일시적인 멸실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임차 수요는 주변 지역으로 쏠린다. 재건축 이주 때문에 일산에 살던 사람이 갑자기 의정부로 이사가지 않고 분당에 살던 사람이 갑자기 인천으로 이사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문제는 주변도 다 같은 1기 신도시이기 때문에 주변에서 그 많은 임차 수요를 감당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주변 지역인 용인, 수원, 의왕, 광명, 고양, 운정 등으로 임차 수요가 퍼지면서 인근 지역의 전월세 가격이 상승하고 이는 매매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1기 신도시 내에서 누가 먼저 재건축을 시작할 것이냐도 문제이다. 1990년대 초반에 지어진 아파트가 1990년대 후반에 지어진 아파트보다 먼저 재건축을 시작하는 것은 큰 이견이 없을 수 있으나 같은 1990년대 초반에 지어진 아파트들 중에서 누가 먼저 재건축을 시작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잡음이 있을 수 있다. 같은 연식임에도 불구하고 어디는 먼저 하고 어디는 나중에 한다면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형평성 문제는 1기 신도시 내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목동, 여의도 등 1970~80년대에 지어진 아파들조차 재건축을 못 하고 있다. 1971년에 준공된 여의도 시범 아파트는 준공 51년이 된 지금에서야 드디어 신속통합기획으로 재건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목동은 1980년대에 지어졌지만 안전진단이라는 높은 벽에 가로막혀 사업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 외에도 서울, 수도권에 재건축 연한을 채웠거나 이미 넘은 단지들은 수없이 많지만 모두 안전진단, 재초환, 분양가상한제 등 각종 규제에 가로막혀 사업 진행에 난항을 겪고 있다. 그런데 만약 1기 신도시만 특별법으로 재건축을 빠르게 진행한다면 당연히 사회적으로 문제가 불거질 수 밖에 없다.



또한 1기 신도시만 주택이 노후화된 것이 아니다. 노태우 정권의 200만호 정책에 따라 1991~1995년에 지어진 아파트가 200만호이고 1996~1999년에 잇따라 지어진 아파트가 200만호로 199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만 해도 400만호이다. 서울시의 경우 2021년 기준 30년이 넘은 아파트가 약 33만호이다. 단독, 다세대 등을 포함하면 무려 65만호이다. 주거지는 계속해서 늙어가고 있다.



특히 199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용적률 상한을 꽉 채워 지었기 때문에 용적률 완화 없이 재건축을 추진하기 쉽지 않다. 문제는 1기 신도시도 마찬가지이다.



분당의 3종 주거지역에 지어진 아파트들의 평균 여유 용적률은 1.6%밖에 되지 않는다. 3종 주거지역은 최대 300%의 용적률을 적용받지만 지자체 조례에 따라 상한 용적률이 달라진다. 현재의 성남시 조례 하에서는 1기 신도시도 일부 단지를 제외하면 재건축이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1기 신도시만 특별법으로 용적률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면 당연히 사회적으로 갈등을 유발하게 될 것이다.



주택 노후화가 가속화되고 있기에 앞으로 부동산 시장은 재건축, 재개발을 중심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신축에 대한 선호도는 높지만 신축이 희소하니 앞으로 신축이 될 가능성이 높은 구축으로 수요가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1기 신도시는 주목해야 할 필요는 있지만 재건축은 매우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켜봐야 할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