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집을 산다는 것은 내집마련을 의미하고, 내 집 마련이라는건 곧 내가 거주할 집을 구매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꼭 거주할 집을 살 필요가 있을까? 거주하지 않더라도 내 명의의 집이라면 '내 집'인건데 거주하지 않으면 뭐 어떤가.
처음에 우린 실거주 집을 살 생각이었다. 우리가 모아둔 돈에 대출을 합하면 8~9억대의 집을 살 수 있었다. 서울에서 우리 둘의 출퇴근이 편한 곳에서 그 예산대로 엄청 좋은 건 아니더라도 구축 20평대 아파트는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집값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2~3달 사이에 호가가 5천이 올랐다. 물론 남자친구가 살고 있는 집 역시 실거래가와 호가가 오르긴 했지만 우리가 가고 싶은 집이 더 상급지이기에 더 많이 올랐다. 10억이 되어버린 가격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
그렇다고 해서 멍하니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생각을 바꿔 갭으로 사는 건 어떨지 확인해봤다. 현재 서울의 평균 전세가율은 50% 수준이다. 전세가율이 낮긴 하지만 매매가와 전세가가 같이 빠진 덕에 갭의 절대적인 금액은 2020~2021년에 비해서는 작아졌다. 똑같은 전세가율 50%여도 2021년에는 매매가 15억 전세가 7억 5천이라 갭으로 사려면 7억5천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매매가 12억 전세가 6억으로 떨어져 투자금이 20% 정도 줄었다.
구축은 전세가 싸지만 신축은 어느정도 전세가가 방어된다. 그 동안 눈여겨 보던 신축 단지들의 시세를 찾아보았다. 3년차 신축이 매매가 11억 5천, 전세가 5억5천~6억에 거래되고 있었다. 갭은 5억 5천~6억 정도로 우리가 9억대의 집에 실거주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과 거의 비슷했다.
취득세, 중개수수료, 이사비, 인테리어비 등 모든 부대비용을 다 합친 총 비용과 우리의 가용 현금, 대출 가능 금액, 월 소득 등을 꼼꼼하게 따져보았다. 우리가 실거주 할 수 있는 집은 거의 30년 된 구축이기 때문에 인테리어가 필수이다 보니 아무리 최소한으로 한다고 해도 6천은 거뜬히 들테다. 하지만 신축은 인테리어를 할 필요가 없어 필요한 돈이 훅 줄어들었다. 대신 우리가 거주할 전세 혹은 월세집이 필요했다. 갖고 있는 돈은 거의 다 집에 쏟아부었기 때문에 전세나 월세 보증금 대출은 필수이다. 그럼에도 실거주를 하는 것과 거의 비슷하게 돈을 모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갭으로 살 경우 1년에 7천 정도 저축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전세 기간이 만료되는 2년 후에는 1억 4천 정도를 모은다. 역전세가 나더라도 어느정도 방어할 수 있는 금액이다 싶었다. 전세가가 떨어지지 않는다면 4년 동안 전세를 돌리면 충분히 주담대를 받아 전세를 빼고 실거주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물론 그 시점엔 이제 더 이상 신축이라 부르기 애매한 7년차 준신축이긴 할테다. 하지만 30년차 구축은 더 낡아진 34년차가 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갭으로 사는 것이 레버리지는 훨씬 크다. 매매가와 전세가가 떨어졌을 때의 리스크도 훨씬 크다. 하지만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에 대한 꿈도 희망도 없는 오로지 교통만 좋은 30년 구축과 주변 환경은 조금 애매하지만 교통 좋은 3년차 신축을 비교해보면 아무래도 후자가 끌린다.
솔직히 너무 많은 레버리지를 쓰는 것이기 때문에 과연 이게 맞을까 싶기도 하고 집값이 하락한다면, 역전세를 맞는다면 어떻게 될 지 두렵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성급히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꼭 내 집에서 거주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면 좀 더 좋은 조건의 집을 매수할 수 있다. 미래의 내가 어떤 선택을 할 지는 모르겠지만 선택지를 넓혀서 신중히 고민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