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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테크 Feb 11. 2023

아파트 500채를 봤다


작년에 새로 생긴 내 취미는 임장이다. 작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임장을 다니기 시작해 지금까지 대략 500개 정도의 아파트를 둘러보았다. 아파트 가격이나 실거주 가능성 등은 고려하지 않고 일단 서울과 수도권의 여러 지역들을 두루두루 다녔다.



서울에서는 은평구, 관악구, 도봉구, 성북구, 중구, 성동구, 동작구, 마포구를 돌아다녔고 경기도에서는 분당, 용인 수지, 광교, 과천, 평촌, 하남 미사, 남양주 진접, 송도 등을 봤다. 지역 전체를 다 둘러본 곳도 있고 그 중 일부 단지만 본 곳들도 있다. 단지를 구석구석 돌아보진 않았어도 새로운 동네를 찾아가서 구석구석 돌아보며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도 좋아한다. 날이 너무 덥고 추운 여름, 겨울엔 잠시 쉬었으니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은 곳들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둘러본 단지가 대략 500개 정도 된다. 처음 임장을 갔을 때는 어디가 좋고 어디가 나쁜지를 판단하기 어려웠다. 비싼지 싼지에 대한 판단도 어려웠다. 절대적인 금액이 비싼지 싼지가 아니라 상대적인 금액에 대한 판단 기준이 없었다.



예를 들어 임장을 간 지역의 한 아파트가 10억이라면 이 10억이 적당한 가격인지, 다른 곳과 비교했을 때 비싼건지 싼건지 분간이 안되었다. 같은 지역 내에서도 비슷한 연식, 비슷한 컨디션의 단지의 가격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을 보면 둘 중 어느 단지의 가격이 고평가 혹은 저평가 된 건지 판단 내리기가 힘들었다. 그걸 분간할 수 있으려면 알고 있는 지역이 많아야 하고 여러 지역의 아파트 시세를 어느정도 꿰고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아는 지역이 없었으니 당연했다.



그래서 무작정 여기저기 많이 다녀봤다. 발품도 많이 팔고 손품도 많이 팔았다. 임장을 가기 전에는 항상 시세를 확인하고 갔다. 보고자 하는 단지들의 호가와 실거래가, 세대수, 연식, 주차대수 등을 미리 정리했다. 그렇게 정리하다보면 궁금증이 생긴다. 예를 들어 A아파트는 초역세권에 더 신축 단지이고 B아파트는 역에서 조금 더 떨어져있고 연식도 더 오래되었다. 이것만 놓고 보면 당연히 A아파트가 더 비싸야 할 것 같은데 B아파트가 1~2억 정도 비싸게 거래된다.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만 놓고 보면 그 금액의 차이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럴 때는 발품을 팔아서 궁금증을 해결했다. 직접 가서 보니 A아파트는 초역세권이지만 단지 내외로 언덕이 매우 심했다. 반면 B아파트는 좀 더 평지에 가깝고 한강 조망이 가능했다. 이런 차이는 직접 발품을 팔아야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여러 지역을 다니다보니 자연스럽게 다음 임장을 갈 때는 이전에 다녀온 곳과 비교를 하게 되었다. '지난번에 다녀온 동네는 언덕이 엄청 심하고 아파트도 다 구축이었는데 여기는 다 평지에 있고 아파트도 준신축이라 살기 좋네. 그래도 지난번에 다녀온 동네는 교통이 정말 좋았는데 여기는 교통이 불편한게 아쉽다. 가격은 지난번 동네 A아파트랑 오늘 본 B 아파트랑 비슷한데 그럼 어디가 더 좋은 선택지인거지?' 이런식의 비교가 가능해졌다.



내 개인적인 생각과 사람들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으니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찾아보려고 했다. 내가 다녀온 지역의 임장 후기를 쓴 카페나 블로그 글을 읽다보면 내가 별로라고 생각했던 곳을 좋게 판단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내가 좋다고 생각한 곳을 별로라고 판단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다양한 생각들을 접하면서 똑같은 대상에 대해 왜 서로 다르게 판단했을까를 고민해보다 보니 나만의 기준이 생겨났다.



임장을 가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비교할 수 있는 대상들은 점점 더 늘어났다. 계속 손품을 팔고 관심 가는 지역들의 시세를 모니터링하고, 설령 내가 살 수 없는 금액이라 하더라도 서울의 주요 단지들의 시세를 계속 지켜보다 보니 금액에 대한 기준점도 생겼다. 내 나름대로의 밸류에이션도 가능해졌다.



그렇게 1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열심히 손품 발품을 판 덕분에 독립을 앞둔 시점에 내 예산에서 어느 것이 가장 최선의 선택일지  판단이 가능해졌다. 그 판단이 옳은지 아닌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내 판단에 대해 어느정도 확신과 자신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도 내가 꼽은 최선의 선택지가 왜 다른 선택지에 비해 좋은지 자신있게 설명할 수도 있다.



부동산을 사는게 한 두 푼 드는 일도 아니고 몇년을 모은 전재산에 레버리지까지 일으켜야 하는 인생 최대의 쇼핑인데 허투루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앞으로도 나는 계속 임장을 다니고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갈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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