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없던 시절에 떠난 여행의 기록
흑해 연안에 있는 작은 도시, 리제에 도착했다. 여행 사진을 통해 본 리제는 푸르른 차밭으로 가득했다. 리제는 우리나라의 보성처럼 차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도착하자마자 숙소를 잡았다. 중심가 광장 근방에 있는 숙소로, 이름은 AKSU 호텔. AK은 터키어로 중앙, SU는 물이라는 뜻이다. 중앙에 물이라, 이 근방에 유명한 폭포가 있다던데 그래서 이런 이름을 지었나 싶다.
역시나 싼 게 비지떡이었다. 삐걱거리는 침대, 케케묵은 냄새를 맡았을 때 나는 눈치챘어야 했다. 그곳에서는 나는 예전 여행 중 스페인을 갔다 온 한 여행자에서 옮은 베드 버그만큼 보다 더 강력한 존재를 다시 만났다. 터키 베드 버그는 남부 유럽의 그놈보다 더 무시무시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떼들이 달려드는 그놈들 덕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그날 밤, 고독한 여행자는 밤새 지옥의 맛을 봤다고나 할까.
벌레들은 내 몸에 자신들만의 고유 문양을 새겼다. 목 주변을 빙그르르 돌면서 낸 문양에선 나름의 미적감각도 엿보인다. 멀리서 보면 검은 실 목걸이를 찬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하룻밤새 내 목엔 목걸이가 하나 걸렸다. 그 목걸이에는 분명 유통기한이 있다. 넉넉잡아 한 달 안엔 사라질 것이다. (다시 베드 버그가 같은 곳을 공략하지 않는다는 계산하에) 이 말인즉슨. 나는 한 달 가까이 이 목걸이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달고 살아야 한다. 거추장스러운 건 질색인 성격이란 몸에 무언가를 달고 사는 게 익숙지 않다. 그래선지 내 몸 주변을 자주 매만진다. 뭔가 낯설다.
나의 새 목걸이에 놀리는 일행들과 함께 아이델로 간다. 아이델은 터키의 알프스라 불리는 곳으로,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곳에서 트레킹에 도전했다. 산은 제법 험준해보였지만, 트래킹하기엔 적당한 흙길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도 우리는 걸었다. 걷는 것 말고는 이 산중에 할만한 체험이 없다. 우리는 여행 중이고, 뭔가를 해야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산 속에서 리제산 차를 마시면서 신선놀음을 하기엔 그간 많이 놀았다.
방수점퍼 하나 걸치고 터덜터덜 산에 오른다. 발 끝에서 타오르는 기운이 온 몸으로 향한다. 잘 다져진 흙의 역사가 응축된, 이 길을 걷는다. 태고적부터 누적된 기운들이다. 수 없이 많은 등산객들이 산중에 두고간 사연들도 함축된 길이다. 길이 곧 역사이고, 역사에는 지난 시간들의 기운들이 만들어낸 스토리가 있다. 현재의 내가 그 사연을 듣는다. 걷다보면 기운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이 땅의 역사, 그 기운이 내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비는 그칠 줄 모른다. 외국인 여행자는 우리 일행 말고는 없다. 다들 지나가다 한 마디씩 한다. 지나치게 타인에게 관심 많은 터키인들이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나의 일행 중 2명은 터키어 전공자였다. 따라서 간섭 많은 터키인들은 전공자들 담당이다. 나에겐 고요의 시간이었지만, 그 둘에겐 산만의 극치였던 등산이었을 것이다.
산에 오르니 우리나라 산과 비슷한 종의 나무들이 보인다. 침엽수와 활엽수의 적당한 컬래버레이션이라고나 할까. 산은 고요했지만, 현지인 등산객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허나, 정상을 정복하기엔 비가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비는 바람을 타고, 이곳저곳으로 요동치고 있다. 나는 수차례 비의 공격을 받았다. 방수 장비의 부족으로 나의 방어력은 제로 상태. 걷다가 점점 더 걸음이 빨라진다. 급기야 비 사이를 헤쳐 달리기 신공을 펼친다. 마치 내기라도 하듯 우리는 달리고 또 달렸다.
마을로 내려왔을 땐 비가 잠잠해졌다. 잠시 비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화가 나기도 했다가, 금세 풀리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원인이 발동해 심술을 부렸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는 기분. 마치 어린아이처럼 변덕을 부린다. 손을 뻗어 비의 기분을 헤아려본다. 토독토독 기분 좋게 내리다가 갑자기 천둥을 치며 고함을 치기도 했던 그날의 비. 화가 난 이유를 나는 모르다. 내 몸은 비의 기분에 따라 젖어갈 뿐이다. 다시 비가 살짝 숨을 내뿜는다. 처음부터 가파른 호흡을 계속 이어갔다면, 우리는 정상 언저리까지 올라갈 수 없었을 것이다.
비는 소리를 통해 스스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 바위와 자신의 몸이 부딪혀 나는 소리와 우산에 떨어지는 소리, 나무과 풀에 맺힐 때 나는 소리가 다 다르다. 그 소리들은 이제 와선 ASMR의 한 분야를 담당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 소리가 귀중한 줄 몰랐다. 내 귀가 호사를 누렸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이제 와 비의 마음을 들춰본 후 알게 됐다. 비는 감정에 충실하고, 소통을 좋아하며, 투명하게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내게 다 개방했다는 것. 나무도 알고, 돌도 알고, 흙길도 아는데 나만 모르는 공공연한 비밀 같은 비의 마음.
주말 동안 비가 온다더니 내내 화창하다. 내가 사는 곳의 비는 또 어떤 마음으로 지금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또 언제 우리에게 나타나 찬란한 빛줄기를 내려줄 것인가. 빗소리들은 자연물과의 마찰을 통해 어떤 하모니를 만들어, 또 어떤 음악을 만들까. 결국 마음의 소리가 음악이 될 수 있음을... 그 소리들은 매번 각자 취향에 따라, 기분에 따라 장르를 취한다.
그렇다면 나의 신청장르는 미뉴에트로 하고 싶다. 서서히 내 몸을 적시는 비처럼 나는 그 소리가 내게 좀 더 부드럽지만, 느리지 않게 다가왔으면 좋겠다. 적당한 속도감은 약간의 긴장감을 제공한다. 그때가 상상하기 딱 좋은 시간이다.
언젠가 빗소리가 만들어낸 하모니에 취해 종일 무위도식하고 싶다. 과연 그런 날이 올까? 물론 당분간은 없겠지만... 다음번 비님이 오시면, 마음속으로만 박자에 맞춰 춤을 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