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델리러브 Jul 26. 2020

터키 아이델에서 비의 마음을 헤아리다

스마트폰 없던 시절에 떠난 여행의 기록

흑해 연안에 있는 작은 도시, 리제에 도착했다. 여행 사진을 통해 본 리제는 푸르른 차밭으로 가득했다. 리제는 우리나라의 보성처럼 차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도착하자마자 숙소를 잡았다. 중심가 광장 근방에 있는 숙소로, 이름은 AKSU 호텔. AK은 터키어로 중앙, SU는 물이라는 뜻이다. 중앙에 물이라, 이 근방에 유명한 폭포가 있다던데 그래서 이런 이름을 지었나 싶다. 


역시나 싼 게 비지떡이었다. 삐걱거리는 침대, 케케묵은 냄새를 맡았을 때 나는 눈치챘어야 했다. 그곳에서는 나는 예전 여행 중 스페인을 갔다 온 한 여행자에서 옮은 베드 버그만큼 보다 더 강력한 존재를 다시 만났다. 터키 베드 버그는 남부 유럽의 그놈보다 더 무시무시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떼들이 달려드는 그놈들 덕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그날 밤, 고독한 여행자는 밤새 지옥의 맛을 봤다고나 할까. 


벌레들은 내 몸에 자신들만의 고유 문양을 새겼다. 목 주변을 빙그르르 돌면서 낸 문양에선 나름의 미적감각도 엿보인다. 멀리서 보면 검은 실 목걸이를 찬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하룻밤새 내 목엔 목걸이가 하나 걸렸다. 그 목걸이에는 분명 유통기한이 있다. 넉넉잡아 한 달 안엔 사라질 것이다. (다시 베드 버그가 같은 곳을 공략하지 않는다는 계산하에) 이 말인즉슨. 나는 한 달 가까이 이 목걸이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달고 살아야 한다. 거추장스러운 건 질색인 성격이란 몸에 무언가를 달고 사는 게 익숙지 않다. 그래선지 내 몸 주변을 자주 매만진다. 뭔가 낯설다. 


나의 새 목걸이에 놀리는 일행들과 함께 아이델로 간다. 아이델은 터키의 알프스라 불리는 곳으로,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곳에서 트레킹에 도전했다. 산은 제법 험준해보였지만, 트래킹하기엔 적당한 흙길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도 우리는 걸었다. 걷는 것 말고는 이 산중에 할만한 체험이 없다. 우리는 여행 중이고, 뭔가를 해야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산 속에서 리제산 차를 마시면서 신선놀음을 하기엔 그간 많이 놀았다.


방수점퍼 하나 걸치고 터덜터덜 산에 오른다. 발 끝에서 타오르는 기운이 온 몸으로 향한다. 잘 다져진 흙의 역사가 응축된, 이 길을 걷는다. 태고적부터 누적된 기운들이다. 수 없이 많은 등산객들이 산중에 두고간 사연들도 함축된 길이다. 길이 곧 역사이고, 역사에는 지난 시간들의 기운들이 만들어낸 스토리가 있다. 현재의 내가 그 사연을 듣는다. 걷다보면 기운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이 땅의 역사, 그 기운이 내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비는 그칠 줄 모른다. 외국인 여행자는 우리 일행 말고는 없다. 다들 지나가다 한 마디씩 한다. 지나치게 타인에게 관심 많은 터키인들이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나의 일행 중 2명은 터키어 전공자였다. 따라서 간섭 많은 터키인들은 전공자들 담당이다. 나에겐 고요의 시간이었지만, 그 둘에겐 산만의 극치였던 등산이었을 것이다. 


산에 오르니 우리나라 산과 비슷한 종의 나무들이 보인다. 침엽수와 활엽수의 적당한 컬래버레이션이라고나 할까. 산은 고요했지만, 현지인 등산객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허나, 정상을 정복하기엔 비가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비는 바람을 타고, 이곳저곳으로 요동치고 있다. 나는 수차례 비의 공격을 받았다. 방수 장비의 부족으로 나의 방어력은 제로 상태. 걷다가 점점 더 걸음이 빨라진다. 급기야 비 사이를 헤쳐 달리기 신공을 펼친다. 마치 내기라도 하듯 우리는 달리고 또 달렸다.


마을로 내려왔을 땐 비가 잠잠해졌다. 잠시 비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화가 나기도 했다가, 금세 풀리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원인이 발동해 심술을 부렸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는 기분. 마치 어린아이처럼 변덕을 부린다. 손을 뻗어 비의 기분을 헤아려본다. 토독토독 기분 좋게 내리다가 갑자기 천둥을 치며 고함을 치기도 했던 그날의 비. 화가 난 이유를 나는 모르다. 내 몸은 비의 기분에 따라 젖어갈 뿐이다. 다시 비가 살짝 숨을 내뿜는다. 처음부터 가파른 호흡을 계속 이어갔다면, 우리는 정상 언저리까지 올라갈 수 없었을 것이다. 


비는 소리를 통해 스스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 바위와 자신의 몸이 부딪혀 나는 소리와 우산에 떨어지는 소리, 나무과 풀에 맺힐 때 나는 소리가 다 다르다. 그 소리들은 이제 와선 ASMR의 한 분야를 담당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 소리가 귀중한 줄 몰랐다. 내 귀가 호사를 누렸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이제 와 비의 마음을 들춰본 후 알게 됐다.  비는 감정에 충실하고, 소통을 좋아하며, 투명하게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내게 다 개방했다는 것. 나무도 알고, 돌도 알고, 흙길도 아는데 나만 모르는 공공연한 비밀 같은 비의 마음.


주말 동안 비가 온다더니 내내 화창하다. 내가 사는 곳의 비는 또 어떤 마음으로 지금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또 언제 우리에게 나타나 찬란한 빛줄기를 내려줄 것인가. 빗소리들은 자연물과의 마찰을 통해 어떤 하모니를 만들어, 또 어떤 음악을 만들까. 결국 마음의 소리가 음악이 될 수 있음을... 그 소리들은 매번 각자 취향에 따라, 기분에 따라 장르를 취한다. 


그렇다면 나의 신청장르는 미뉴에트로 하고 싶다. 서서히 내 몸을 적시는 비처럼 나는 그 소리가 내게 좀 더 부드럽지만, 느리지 않게 다가왔으면 좋겠다. 적당한 속도감은 약간의 긴장감을 제공한다. 그때가 상상하기 딱 좋은 시간이다. 


언젠가 빗소리가 만들어낸 하모니에 취해 종일 무위도식하고 싶다. 과연 그런 날이 올까? 물론 당분간은 없겠지만... 다음번 비님이 오시면, 마음속으로만 박자에 맞춰 춤을 추리.

작가의 이전글 나는 그 때 왜 천 불의 사나이가 불편했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