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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Jul 27. 2020

부다페스트에 가면, 나의 안부를 전해줘

아날로그 시절, 여행의 단상들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시간이 멈춘 도시이다. 건물마다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오래된 건물들의 색감은 내게 평온함을 준다. 아치형 창과 창틀에 놓인 화분들이 정겹고, 벗겨진 페인트에서 과거를 본다. 그곳은 아직도 80년대 공산주의 국가였던 헝가리의 모습 그대로이다. (나에겐 그랬다.)



주말에 열리는 구제시장에서 소련제 군용 뺏지를 구입했다. 어디다 쓸 것도 아닌데 그냥 끌려 구입했다. 이 시장은 과거 공산주의 국가였던 헝가리를 탐험하기 좋은 곳이다. 80년대 동유럽이 궁금했던 나는, 그 시절을 상상한다. 이곳에 나와있는 소련 군대의 군복과 모자, 담배 케이스, 지포 라이터, 동전들 모두 90년대 이전생이다. 아마도 80년대, 70년대, 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문득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한 친구는 부다페스트에 가면, 현지 엽서로 자신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한총련이었던 친구는 96년도 연대 토끼몰이 사태 때 현장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당시 나의 동아리 동기는 불구속기소됐다. 갇히기 전 우리 집으로 전화를 했고, 풀려나오자마자 나에게 제일 먼저 안부를 전하기도 했다. 첫 해외여행을 함께 했던 동기 언니도 그때 연대에 있었다.



부다페스트에서 당시 운동권이 서서히 세력을 잃어가기 직전까지, 그 어중간했던 나의 대학시절이 떠올랐다. 정체 없이 헤맸던 나는 포스트 모더니즘이니 아방가르드니 뭐니하는 예술 사조(?)에 빠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예술 사기 또는 사이비가 아닌가 할 정도로 신뢰하지 않고 있지만. 그때는 내가 믿고 싶던 어떤 신념(?)이었다. 나와는 달리, 친구가 한 시절을 걸고 행했던 어떤 믿음들이, 나에게 크게 다가오지 못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 세계가 항상 궁금했다. 그때 그들의 믿음을 저버리고 싶지 않다. 분명 한때 우리 시대 역사의 한 축으로 기억할 것이다. 헝가리에서 문득, 쾌쾌묵은 물건들을 보면서 여러 생각들이 몰려들었다.



90년대 중반 이후, 우리는 어땠는가. 그때의 이념과 사조와 사상 등 어떤 기조들은 분명 실체가 있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모든 게 불확실했다. 불확실성에 우리의 믿음을 던지고 각자의 시절을 견뎠다.  당시 나는 김영하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 열광하면서 그때를 견뎠다. 인디밴드들의 음악에 빠지기 시작했고, 포켓몬의 세계에 입문했다.



삐삐와 시티 폰이 한차례 스쳐가더니 휴대폰이 나왔고, 나는 남들보다   일찍 벽돌 휴대폰의 세계에 입성했다. 하지만 마저도 디지털 시대로 가기 위한 잠깐의 통과의례였다.  과거의 기계들이 순식간에 소멸되면서 우리가 보냈던 무수한 신호들도 사라졌다. 이제는 말풍선처럼 떠돈다. 그때의 언어와 대화와 음악과 소음들이 아직도 공기 중에 잔존하는  같다.



나는 가끔 그 신호를 하나 받아든다. 신호가 주는 강렬함은 그대로이다. 하지만 그 시절, 이 신호들을 받으며 내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은 그대로가 아니다. 신호 역시 지금 시대를 거치면서 결이 바뀌었다. 그 결이 거칠든 부드럽든, 나는 신호를 받자마자 눈물을 흘린다. 과거가 주는 강렬한 신파에 빠지긴 싫지만 눈물이 난다.



나는 나의 눈물이 가끔 어떤 연유로, 어떤 과정을 지나, 실체성을 지닌 눈물이란 존재로 흘러내리는지 잘 모른다. 주체 없이 흐르던 눈물의 신호는 가끔 해독이 불가하다. 어쩌면 그때 그 신호들은 이미 공기 중에서 기화한 건 아닐까. 실체 없는 불확실성에 대한 믿음은 내게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 그 신호들이 그립고 또 새롭다.



덧글

부다페스트는 이제 두 개의 슬픔과 고통을 주는 신호가 되었다.

하나. 지난 해 발생한 부다페스트 유람선 침몰 사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ㅠㅠ)

둘. 촬영 갔던 피디가 첫 날, 강도를 만나 제작비 전부와 촬영 장비 일부를 도난 당한 사건.


부다페스트는 나의 여행으론 좋았지만, 두 개의 기억으론 안타깝고 슬픈, 그런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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