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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Jul 31. 2020

프롤로그-20세기 표류기, 나의 청춘을 애도하다

그 시절, 그 무렵, 가장 강렬했던 내 기억의 회로를 찾아서

인간의 기억은 1년 단위로 20%씩 손실된다고 한다. 머릿속에 있는 기억들이 과거 경험에 대한 사실적인 조합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 기억들의 정체는 뭘까. 나의 경험들이 내가 건지고 싶었던, 내가 추구했던 바람들과 합쳐진 새로운 조합일까? 그렇다면, 지난 나의 여행, 그것도 10년도 더 된 나의 여행들의 실체는 무엇인가. 고작 며칠, 고작 몇 달간의 여행은 왜 그리도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선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애도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인간은 상실이라는 감정을 맞닿게 되면, 반드시 애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애도를 통해 마음의 상처들을 치유해야 한다. 그래야 일상을 무리 없이 영유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애도가 필요하다. 10년도 더 된 나의 지난 여행은 내 청춘의 모든 것이었다. 다신 돌아오지 못할 청춘의 여름날을 애도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내 청춘은 이제 나에겐 상실의 시대, 그 한 축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는 4계절의 순환 속에 청춘이라는 코드를 심어둔 채 방황하고 있다. 방황이 방황으로서 의미를 가지려면, 마무리를 잘해야한다. 이제 내 방황의 종지부를 찍어야한다.



그래서 이제라도 애도가 필요하다. 내 청춘의 불편했던 기억부터 스산한 감정까지 토로의 장을 열어 애도해야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나의 과거가 내 전부라 믿었던 사람이다. 과거라는 거대한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다. 시간의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나를 온전히 맡기지 못한 사람이다. 의심을 달고 살면서 미래를 재단하느라 현재가 불행했던 사람이다. 나는 이제 그런 사람으로 자라고 싶지 않다. 나는 늦은 나의 성장을 그저 지긋이 바라보고 싶다. 하루하루를 그저 충실하게 살고 싶다. 더는 바라지 않고, 무리하게 욕심내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다시 나는 나의 '드로이안'을 불러낸다. '영화 빽 투더 퓨처'에서 '마이클 제이 폭스'가 탔던 그 타임머신에 오를 것이다. 이는 단순한 과거로의 이행이 아니다. 지나온 흔적들이 남긴 의미를 재편성하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이 더욱 의미가 있는 건, 앞으로 다시는 내가 겪은 여행들의 경험들을, 나뿐 아니라 그 누구도 재경험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불가능하다. 우리의 세계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스마트폰의 등장'!! 이것은 패러다임의 혁명이 아니다. 이것은 등장 그 자체만으로도 혁명이다. 스티브 잡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스마트폰이 등장하자마자 세계는 순식간에 속도가 다른 궤도에 올라탔다. 그 궤도 속으로 진입하는 것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가 아닌 미래로 돌진하는 것과 유사하다. 우리에게 이제 과거란 이름은 레트로라는 취향으로 반영될 뿐이다. 요즘 20대들이 CDP나 LP 판에 열광하는 것은 그것이 그들 세대에서는 신제품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신제품이 나오면, 다시 밀릴 것이다. 우선순위에서 밀린 이 레트로 감성은 유행이 돌고 돌듯 어느 시기가 되면, 또다시 얼굴을 들이내밀 것이다. 유령처럼 지구를 떠돌겠지만, 더 이상 메인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나의 과거도 더 이상 내 인생의 메인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나의 애도는 나의 청춘뿐 아니라 우리의 지난 시절, 과거 아날로그 시절에 대한 애도일 수 있다. 상실의 아픔은 크지만, 더는 뒤돌아볼 수 없는 우리의 지난 시절.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소비 될 수 있지만, 단순 소비재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받을 수 없다.



그리하여 나는 애도한다. 

나의 청춘과 

20세기 우리 시대를 유유히 관통하던, 

그 어떤 흐름에 대해,

그 어떤 낭만과 고찰과 충돌에 대해.

그 시작의 포문을 나의 여행으로 열고자 한다.




p.s

다행히 지난 과거의 여행 기록물들이 친정집에 대거 방치 중이다.

이제 글을 쓰면서 그 기록들도 정리할 것이다.

90년대와 2000년대 유물로 가득한 나의 방도 이제 떠날 때가 됐다.

마치 한 세기를 떠나고, 다른 세기로 이전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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