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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러브 Oct 25. 2020

그 시절, 감정의 기류와 성장의 연관관계

청춘과 사춘기, 그 어딘가에 나


사전적인 의미로 청춘은 십 대 후반부터 20대를 걸치는 젊은 시절을 뜻한다. 하지만 십 대 후반이라고 딱 규정하기 어렵다. 청소년과 청년의 애매한 경계에서 청춘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의 청춘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중학교 때부터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바! 본격적인 출발 전, 부릉부릉 시동을 걸던 시절을 중학교 3년이라고 규정한다. 중학생들은 참으로 웃음도 많고, 별거 아닌 일에 흥분하고, 꽤나 발랄하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내가 느꼈던 선명한 감정이 아직도 어른댄다. 기억을 할수록 그 감정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당시 나는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교회 초등부의 최고 연장자였고, 괜한 오지랖과 잘난 척으로 교회를 누비고 다녔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교회에서 성극을 하는데, 나는 주인공을 꿈꾸진 않았지만, 항상 무대에 오르는 성극을 꿈꿨다. 교회에 다니는 이유 중 하나가 크리스마스 때문이라면, 크리스마스 때 나는 성극을 위해 온 에너지를 모았다. 마리아의 역할을 주어지지 않았지만, 동방 박사 중 한 명의 역할을 맡아 무대 위를 올랐다. 


무대에 오르기까지 연습이 필요했고, 연습을 위해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연습이 끝나고 나면 해가 졌다. 그때 나보다 2살 어린 남자아이와 친하게 지냈다. 친하게 지냈다는 게 친절한 인사를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장난치고, 서로를 놀리고 때리고 도망치는 어린아이들의 익살에 가까웠다. 그러면서 서서히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 아이 집은 4형제인데 위로 누나들도 쌍둥이고, 본인도 쌍둥이다. 겹쌍둥이 집안인 것이다. 누나는 나와 같은 학년이다. 큰 눈에 오뚝하지만 코끝은 뭉툭한 형태로, 공부도 잘하는 순한 아이였다. 동생인 그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잘 생기진 않았지만, 호감이 가는 얼굴이었다. 그 아이는 장난이 심하지 않았고, 나는 과하게 장난치는 남자아이들에 질색한 상태였으므로, 자연스럽게 친하게 지냈다.


어떤 연유로 친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풍경이 있다. 성극 연습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우리 집은 골목을 통과하면 좀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지만, 나는 골목을 무서워했다. 어두운 골목에 대한 공포가 심했다. 그래서 나는 돌아서 가는 길을 택했다. 가는 도중에 그 아이의 집이 나온다. 길가에 위치해있는 집이다. 친구네 옆집이기도 하다. 가끔 그 아이의 누나를 만나 같이 하교를 하다가 헤어진 그 길을 우리가 같이 걷게 되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괜히 그 아이가 의지가 되었다. 매번 장난을 치며 서로를 놀려대기 바쁘던 아이가 밤이 되자 장난기가 사라졌다. 나에게 항상 빼빼 마른 젓가락이니 뭐니라고 놀려대던 아이였는데, 그날 밤의 공기는 좀 달랐다. 우리는 일부러 단단한 침묵을 깨지 않고 걸었다. 그러다 참을성이 부족한 내가 먼저 그 아이의 누나 얘기와 동생의 안부를 물으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하지만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헤어질 무렵, 문득 그 아이의 이름을 내가 제대로 불러본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보았다. 이름을 불러주진 않았다. 서로의 별명을 부르거나 나는 그 아아에게 야~이런 호칭을 불렀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문득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다. '잘 가, 현철아'라고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그 이름을, 그 밤, 어두운 공기 속으로 내뱉고 싶었다. 현철이는 조용했고, 그날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 모른다. 내게 말을 하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


헤어질 무렵, 내가 입을 뗐다.


"잘 가"


그 아이도 내게 손을 흔들어주며, 짙은 남색 대문 안으로 사라졌다. 그 이후로 나는 그 아이가 기억나지 않는다. 더 이상 내가 교회에 적을 두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 아이의 누나도 나와 같은 중학교로 진학했다. 나는 여전히 이사를 가지 않았고, 분명 그 아이도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잘 모르겠다. 그 아이와 헤어지고 돌아서던 그 길 위에서 스산했던 어떤 감정들을. 그 감정의 기류들이 내 안을 통과하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하지만 분명한 건, 내 안의 성장은 한순간에 갑자기 발현되는 게 아니라 순간, 급작스럽게 찾아든 감정의 기류가 통과하면서부터라고. 감정의 기류들은 뜨거웠고, 내 몸을 순간 붕 ~ 뜨게 한다. 바람에 밀려 나는 같은 자리에 착륙할 수 없다. 나는 떠밀려 어느 해안가나 어느 산꼭대기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그러다 다시 바람이 분다. 나는 떠밀려 또 다른 곳으로 착륙한다. 어쩌면 매번 불시착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감정의 순간 이동을 즐긴다.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면서 정처없이 떠도는 감정을 인정한다. 


그렇게 나의 사춘기는 외로운 방황을 시작하고, 청춘의 시기로 다시 바통을 이어간다. 사춘기와 청춘 사이, 그 어딘가에서 나는 떠도는 나그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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