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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Oct 20. 2020

탕비실 이야기

26화. (공대여자 말고 그냥 나)


올해로 사회생활 10년 차가 되었다. 올해 초를 기준으로 내 밑으로 딱 5명의 후배가 우리 부서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한해에 한두 명씩 꾸준히 충원되었던 신입직원들이었다.


여름을 앞두고 있던 몇 달전, 나는 탕비실에서 수박을 자르고 있었다.


평소 자신을 쿨한 선배로 생각했던 나는 사회생활 10년차에 탕비실 업무에 대한 매너리즘과 남녀 평등에 대한 미해결 과제를 새삼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들을 자문해보는 것이었다. 나에게 탕비실이란 무엇인가, 여자 직원들에게 탕비실이란 무엇인가, 남자 직원들에게 탕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언제쯤 탕비실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탕비실에 대한 후배들의 생각은 어떨까. 여자 후배, 남자 후배들의 생각은 다를까.


신입 시절에는 할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기꺼이 했던 탕비실에서의 자질구레한 일들이 많았다. 신입 시절의 나에게 탕비실에서의 시간은 도면을 보지 않아도 되고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머리를 식히는 단순노동의 시간이었다.


안락함을 제공해주었던 탕비실에서의 시간은 새삼 왜 지금에 와서야 억울함으로 다가오는 걸까.


탕비실 업무에 대하여


4년 전의 내가 처음 부서에 발령받아 가장 먼저 했던 일은 탕비실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이었다. 여자 선배님들 중 한분께서 나를 탕비실에 데려가 커피는 이렇게 내리고, 찻잔 세트는 저렇게 관리해야 하며, 과도와 소쿠리는 이곳저곳에 있으니 부서에서 과일을 먹을 때는 이렇게 준비해서 나가면 된다고 설명해주셨다. 부서에서 사용하고 있는 커피 머신은 물을 매번 채워주고 종이 필터를 위쪽에 끼운 후 가루 원두를 그때그때 넣어줘야 하는 타입이었다.


주로 커피 믹스를 마시던 예전 회사 분위기에 비교해서는 무척이나 인텔리하고 골져스 하다고 생각했다. 아직 업무를 전담하기에는 빈틈이 너무 많아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칸막이로 분리된 탕비실에서 뭔가를 하면 그나마 업무에서 벗어난 시간인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무엇보다 첫 회사에서는 얼음이 나오는 정수기도 없어서 내가 매일 직접 얼음을 얼리고 커피 믹스를 다량으로 물에 녹여 선배들을 위한 달달한 아이스커피도 만들어야 했으니 그에 비하면 이 곳은 아주 좋은 업무 환경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곳에서의 탕비실 업무는 생각보다 많은 품이 드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나는 매일 아침 선배들보다 40분 이상 일찍 출근해서 커피를 내려놓고 각종 차와 커피믹스의 비어있는 자리를 꽉꽉 채워놓아야 했다. 종이컵 소형과 대형을 비슷한 높이로 쌓아 올리고 테이블과 싱크대를 예쁘게 닦아놓는다. 정수기 주변에 커피를 흘려놓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 또한 반짝반짝 닦아놓고 100도씨의 물을 즐겨 음용하는 선배들을 위해서 커피포트에 물을 받아 끓여놓는다.


한번은 퇴근하기 전 커피 머신을 세척하고 있을 때였다. 종이 필터 위의 원두 가루를 분리해서 버리고 플라스틱 필터를 닦아주는 데 플라스틱 필터 하부의 스프링이 빠져버렸다. 그 스프링이 있어야 필터 하부에 큰 유리컵으로 커피가 내려오게 되는 원리인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탕비실 업무를 인수인계해주신 선배님은 이미 퇴근하신 터라 알릴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커피를 내려놓지 않았다고 혼이 날까 무서워 커피 체인첨에서 큰 크기의 아메리카노 4잔을 아침 일찍 사 와서 커피통에 채워 넣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커피 머신이 오래되어 발생한 문제였다. 내 실수로 기물을 파손한 게 아니라서 너무 다행이었는데, 어쨌든 신입 생활이란 살얼음 위를 걷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매일 탕비실 관리 업무와 본업을 병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꾀부리지 않고 두 업무를 항상 열심히 하고 있는대도 여자 선배님과 남자 선배님의 눈치를 양쪽에서 봐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몹시 힘들게 했다.


90프로 이상이 남자 직원인 부서 특성상 암묵적으로 탕비실 관리는 여자 직원들이 관리해왔다. 여자 선배님 중 한 분은 때마침 신입 여직원이 들어와서 탕비실 업무를 넘길 생각에 나에게 이것저것 설명해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식 업무 분장에 속하지 않는 탕비실 업무의 특성상 '남는 시간'에 해야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었다. 가장 난감한 것은 회의를 가야 할 때, 바쁜 업무 협의가 있을 때도 종종 부서원들의 간식을 챙겨줘야 할 때였다. 사과를 깎고 수박을 자르고 축 결혼 떡을 소분해서 나눠주는 등의 자질구레한 업무 말이다. 그럴 때면 한쪽에서는 팀장님이나 사수님이 나를 찾고 다른 한쪽에서는 탕비실 전임 선배님께서 나에게 '어서 탕비실로 와라' 고 눈치를 주는 것이었다. 양쪽의 사이에 끼여서 정식 업무인 것과 아닌 것, 남자 선배와 여자 선배 사이에서 몹시 갈등했다.


그래서 나는 어서 하루빨리 후배가 들어와서 나의 탕비실 업무라도 가져가 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끝나지 않는 탕비실 생활


입사 3년차가 되어서 드디어 수동 커피머신이 운명을 다한 뒤 탕비실에는 커피 머신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렇게 기대하던 탕비실 셀프 이용의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이와 함께 탕비실 정리도 셀프로 해야하는데, 나중에는 어느 누구하나 앞장서서 관리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후배들도 점점 연차가 쌓여가면서 신입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게 되고, 결국 자연스럽게 과일을 자르거나 간식을 차리는 몫은 여자직원들의 몫이 되었다.


시간이 더 지나서 입사 5년 차(사회 생활 10년차)가 되고 보니 남자 직원과 여자 직원의 미묘한 업무 분장이 신경쓰이지 시작했다. 예를 들면 여자직원들만이 탕비실에서 부서에 간식으로 들어온 과일 손질, 각종 경조사를 마친 후 들어온 떡을 소분하는 것, 탕비실을 정리하는 것 등이 조금씩 억울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탕비실에서 과일을 자르는 게 정말 불평등한 일일까


지난 여름, 수박을 자르다가 성이 났던 그때로 돌아가보면, 나는 대충 이런 생각을 하며 억울해하고 있었다. '남자 후배들에게 이 수박 자르는 소리가 들리기는 할까?' 그러다가는 이왕 손에 묻힌 거, 내가 해버리고 말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사회생활 10년 차인 만큼 능숙한 솜씨로 수박을 썰어 부서원들에게 배분했고 정리는 모두 함께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다음에 과일을 자르거나 간식을 준비할 때는 꼭 남자 후배들 자리에 가서 불러와서 시켜야겠어.'


탕비실과 나에 대한 고민 이후 몇주가 지났다. 업무 분장을 하면서 직원들 간의 자리 이동이 발생했다. 퍼즐 맞추듯이 누가 자리를 빼줘야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선배가 서류 정리를 했고 그 결과 창고로 들어가야 하는 서류가 트럭으로 1대 정도 쌓이게 되었다. 서류 정리를 미루던 선배들이 하는 김에 캐비넷에 있던 짐들까지 잔뜩 꺼내놓으신 것이었다.


한여름으로 달려가고 있던 그때 하필 왜 자리 이동을 해야 하며 굳이 이런 짐들을 마구 내놓은 선배들이 야속했다.


생각만 했던 나와는 달리 남자 후배들은 몸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서 서류들이 쌓여있는 주변을 배회하던 남자 후배들이 선배에게 말을 걸었다. "선배님. 이 문서들 창고로 옮기실 건가요? 카트 좀 빌려오겠습니다." 하고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한참이 지나서 그들 중 한 명은 업무용 트럭을 빌려놓았다고 말했고, 나머지 후배들은 짐을 카트에 옮겨 싣고 있었다. 내가 뭔가 해야 할 것 같아서 들썩거리자 남자 후배들과 선배들은 괜찮다며 나를 진정시켰다.


창고에 짐을 잔뜩 옮기고 온 남자 후배들의 절어있는 얼굴을 보니 얼마 전 시원한 탕비실에서 수박을 썰며 불평했던 내가 몹시 민망하게 느껴졌다.


사실 그 후에도 회의를 앞두고 혼자 차를 타고 있으면 한 번씩 화가 올라오지만, 근래 들어온 남자 100프로의 남자 후배들은 모두 "선배님 제가 할게요." 또는 "왜 이걸 혼자 하시나요." 하며 본인들이 일을 가져간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정당한 질문


이쯤 되니 명확히 업무 분장으로 나눌 수 없는 애매한 분야에서 나 혼자 가지고 있던 여성으로써의 억울함과 부당함의 경계가 점점 흐릿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하나 많은 여성이 평등을 위해 노력해온 그 이상으로 지금 같은 시대를 사는  많은 남성들이 생각보다 많은 희생을 하고 있다는 것도 다시 한번 돌이켜보게 되었다.

 

내년 여름 수박을 자르다가 또 다른 자문자답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사회 생활은 우리를 억울하게 만드는 경우가 참 많다는 것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내년과 내후년, 그리고 10년후의 우리들은 또 어떤 질문을 스스로 떠올리게 될까. 어쨌든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과 서로의 소중함을 잊지 않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이와 더불어 나의 자문자답이 무용하지 않다는 것도 내가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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