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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Oct 23. 2024

시험관 시술 드디어 임신 그리고 에필로그


시험관 시술을 이제 1번 했을 뿐인데. 난임휴직 기간이 2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유산 이후 바로 임신 시도를 하면 몸에 무리가 간다고 해서 몸과 마음을 쉬어주는 기간을 가지고 3번의 인공수정을 하면서 보낸 후 본격적으로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보낸 게 고작 최근 2개월이었는데. 임신을 하는데에 충분할 것 같았던 난임휴직 기간이 이제 2개월뿐이라니.     

 

회사 상사들은 내가 복직을 제때에 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다. 배아 이식을 하고 임신 여부를 기다리는 2주 동안 스트레스 없이 청정한 정신 상태로 오로지 내 자궁만 신경 쓰고 싶었지만. 임신이라는 성과 없이 난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하게 될까 봐, 그 사실이 사람들 입에 자꾸 오르내리게 될까 봐 온몸에 가시가 돋친 듯 예민해졌다. 회사 후배들과 점심을 먹다가 내 생각이 나서 전화를 하셨다는 선배님의 반가워하는 목소리에 평소와 달리 차갑게 ‘아 네. 그러셨군요. 식사 맛있게 하세요.’ 하고 도망치듯 전화를 끊어버리고. 쌓여가는 부재중 전화에 답을 하지 않은 게 몇 번 반복되니 이 세상에 혼자 남아있는 사람처럼 춥고 외로워졌다. 그리고 나중에 지금 나의 이 마음을 어떻게 설명하고 내 차가운 행동으로 아마 이미 망가져버렸을 관계들을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긴 시간을 들여 회복시켜야 할지 막막했다.      


난임휴직이 1년 더 연장되는지 알아보라며 이런 방법도 있으니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친구의 조언이 나에게 겨우 숨구멍을 내어주었는데. 이미 1년을 회사에 다니지 않았는데 1년 더 이 생활이 연장된다면 남편이 앞으로 더 연장될 경제적 팍팍함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도대체 언제까지 임신에 집착할 거냐는 질문도(실제 어투는 다르겠지만 나에게 들리는 말은 차갑고 날카롭게 들리겠지) 내가 돌파해야 할 또 다른 문제였다.      


1차 시험관 시술 결과를 확인하는 날은 눈치도 없이 느릿느릿 다가온다. 피검사를 통해 임신 여부를 확인하러 가기 전까지 임신테스트기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이번 목표였다. 하루 종일 뭐 제대로 하는 것 없이(집청소도, 책 읽기도, 일기 쓰는 등 소일거리 그 어느 것도) 밥 먹고 주사 맞고 자고 밥 먹고 질정 넣고 하는 것이 다였던 나는. 몇 달째 반복적으로 겨우 쌓아 올렸던 돌탑이 무너지고 또 쌓아 올리는 것을 반복해야 하는 형벌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임신테스트기를 쓰기 시작하면 2주 후 하루 이틀 마음 힘들면 될 일을 피검사를 하기까지 기다리는 며칠 내내 길게 힘들어야 하니 지금은 참아보자며 스스로를 달랬다.      


배아 이식 후 정확히 2주가 되는 날. 11시 30분쯤 병원에 도착해 채혈을 하고 진료 예약 시간을 기다렸다. 온 김에 주변 맛집이나 가볼까 하는 마음은 진작에 없어졌고. 대충 먹고 조용한 병원 대기실로 돌아와 앉아있어야 하는 마음에 아래층 카페에서 간단히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웠다. 함께 간 남편에게 진료실에 들어가서 결과 듣는 건 나 혼자 하겠노라 이야기했다. 남편은 편한 대로 하라고 했고 이번에 안된다고 해서 너무 실망하지 말자고 덧붙였다. ‘나는 무지무지 실망하고 깊게 슬플 텐데. 어쩔 수 없을 것 같은데.’ 생각했지만 “응. 알겠어.” 하고 답했다. 그리고 내가 만약 진료실에서 추가 약 처방을 받아서 나오면 임신, 그렇지 않고 쓰던 약을 중지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무 처방도(어떤 종이도) 받지 못하고 나온다면 비임신일 거라는 말을 해줬다. 남편은 그렇게 알고 있겠다며 끄덕거렸다.      


식사를 마친 후 내 순서까지 한참 남았지만 카페에서 시끄럽고 신나게 떠드는 사람들 속에 있고 싶지가 않았다. 차분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병원 대기실이 마음을 가라앉히기 좋을 것 같았다. 지난 몇 차례 시술의 경험으로 봐서 지난번 배아 이식을 함께 했던 분들도 오늘 결과를 들으러 오셨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따라 대기가 무척 길었다. 진료 예약시간에서 2시간쯤 늦어지는 건 평소에도 자주 있었던 일이지만 임신 확인을 하러 온 날에는 대부분 빨리 비임신 통보를 받아버리고 갔던 터라 ‘오늘은 이상하게 대기가 기네.’ 하면서 뭔가를 기대하게 되는 마음이었다가 도리도리 고개를 돌리며 기대하지 말자를 반복했다.     


한참 그렇게 기다리던 중 내 앞으로 환자가 2명 남았을 때였다. 환자 한분이 진료실에 혼자 들어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진료실을 조심스럽게 빠져나왔다. 그리고 함께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중년 여성분과 눈을 맞췄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리고선 그 두 여성은 고개를 푹 숙이고 대기실을 지나 병원을 나섰다. 나는 갑자기 차오른 눈물을 들킬까 얼굴을 급히 돌렸다. 이번 시술이 임신이라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가슴에 묵직한 돌이 내려앉은 것 같았다.     


방금 나간 그녀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던 그 모습을 계속 떠올리며 멍하니 앉아있는데 내 이름이 불렸다.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진료실로 어떻게 걸어 들어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의자에 앉으니 선생님께서 덤덤하게 말씀하신다. “피검사 결과 임신수치가 높은 걸로 나와서 임신이 된 걸로 보여요. 2주 뒤에 와서 아기 심장소리가 들리는지 보면 더 정확히 알 수 있어요.” 나는 ‘내가? 내가 임신?’ 하는 생각만 머릿속으로 반복해서 자문하고 있었다. 눈물을 펑펑 쏟을 줄 알았던 기다리고 기다리던 임신 소식에 “아 진짜요? 아 네.” 했을 뿐이었다. 선생님은 아마 내가 이미 임테기로 임신을 확인하고 왔으니 이렇게 차분한 반응이겠거니 하셨을 것 같다. 선생님은 앞으로 쭉 더 맞아야 할 주사와 넣어야 할 질정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고 그 내용을 빼곡히 적은 종이를 건네주셨다.      


진료실에서 나와 남편과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대기실에서 내가 받아온 결과에 대해 떠들썩하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남편에게 다가가 조용히 귓속말로 말했다. “나 주사 좀 수령하고 올게. 추가주사와 약을 처방받았어.” 내가 시무룩해 보여 기대하지 않고 있던 남편이 약속했던 ‘추가 처방’이라는 시그널에 반응을 했다. “어? 추가 처방받은 거야? 그럼 임신인 거야?” 들뜬 목소리로 물었고. 나는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일단 나가서 말하자고 나가서 다 이야기해 주겠다고.      

     




에필로그


위 글(30화) 마지막에 언급된 여성이 있습니다. 진료실에서 나와 보호자를 향해 기운 없는 고개를 저으며 임신이 되지 않았음을 겨우 알리던 그 여성. 난자야 가라 30화를 연재해 오며 그 여성은 내내 저와 함께였습니다.      


난임여성들은 난임 시술을 받은 후 2주간의 지옥 같은 시간을 거쳐 임신 비임신이라는 결과를 듣게 됩니다. 임신이라는 소식을 들은 여성들 중에서도 모두 출산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떤 시험이나, 관문, 간절하게 바라왔던 소망을 통과하거나 이루는 성취감을 점점 더 간절히 원하게 됩니다. 비임신, 비임신, 반복되는 비임신 소식에 한 번이라도 임신이라는 결과를 받아보고 싶다고 울며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저 또한 그런 마음을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30화 그날 이후 아기집을 보고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병원을 다니며 배가 볼록해지는 시간을 보내오면서 마음 한편에 비임신 소식을 듣고 고개를 푹 숙이며 병원을 나서는 많은 여성들이 제 곁을 떠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30화라는 연재글 중 8화를 연재하던 중 감사하게도 임신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임신을 했는데도 난임 시절을 복기하며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것은 글쓰기가 주는 위로와 저의 글을 읽고 위안받았다고 말해주는 소중한 마음들 덕분이었습니다.     


가임기 여성이 결혼과 동시에 강요받는 임신과 출산에 대해 글로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지금까지 쌓아왔던 화가 조금씩 누그러지는 것 같았습니다. 남초회사에서 난임여성인 나를 향해 뒤에서 어떤 말을 할까 고민하던 지난 나를 돌아보며 펑펑 울기도 했고, 난임시술을 하며 달라지는 외모와 떨어지는 자존감에 괴로워하던 시간을 돌아봐야 할 때는 괴로워서 글 쓰는 일을 그만두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신기하게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또는 했던 이들이 보내주는 메시지와 댓글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타인에게 힘을 얻어 겨우겨우 버텨왔던 것 같습니다


제 친구가 했던 말이 있어요. “임신도 자원이 필요하다.” 임신부가 건강하고 윤택한 생활을 하려면 뭘 사 먹으려고 해도, 운동 같은 걸 제대로 배워보려고 해도, 취미 생활을 가져보려고 해도 돈이 필요하다고요.      


남편이 버는 돈으로 생활이 그나마 가능했던 저는 자원이 있기 때문에 난임휴직도 할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합니다.       


임신을 원하지만 업을 놓지 못해 난임 시술을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여성들, 정부에서 지원하는 차수를 이미 넘기고 자비로 난임 시술을 해나가는 고차수 난임 여성들, 난임 시술을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마음고생만 하고 있는 난임 여성들 등 많은 여성들이 ‘임신’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난임 시절을 거쳐 임신을 한 여성들은 대부분 받아들이기 어려운 신체변화, 목숨을 건 출산, 모든 시간을 바쳐야 하는 육아를 거치며 난임 시절을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반복되는 비임신으로 난임 시술을 마쳤던 여성들은 난임 시절을 돌아보면 괴로워질 뿐이라 이쪽으로는 다시 들여다볼 엄두를 내지 못하기도 합니다. 결과가 어느 쪽이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적을 수밖에 없는 난임 여성들의 이야기가 세상밖으로 더 나왔으면 합니다.     


때로 ‘입양은 어떠냐, 아이가 없어도 부부만 행복하게 살면 되지, 부부 중 누구한테 문제가 있는 거냐, 할 만큼 했으니 이만 내려놓는 게 어떠냐.’ 등등 폭력적인 이야기를 듣는 난임여성들이 서로 더 연대하고 떠들썩하게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그동안 연재글을 읽어주시고 소중한 마음을 메시지로 댓글로 전해주신 여러분 덕분에 이미 그 일은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들을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주변에 있을 난임 여성들을 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셨을 테니까요.      


저의 시간을 함께 지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덧. 연재 제목 '난자야 가라'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남깁니다.


여성의 '난자'는 남성의 '정자'에 비해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하는 존재라고 많이들 생각합니다. 하지만 2017년에 발표된 한 연구결과 난자가 자신을 향해 찾아오는 정자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건강한 정자를 골라 받아들인다고 합니다.(미국 태평양북서부국립연구소) 또한 연재글에서 읽으실 수 있는 것처럼 난임 시술 과정에서 여성이 수행해야 하는 것들이 모든 과정의 90프로 이상을 차지하기도 하고요. 임신과 출산에 있어서 여성의 결정권과 주도권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을 보태어 제목을 '난자야 가라'로 정해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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