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직원보다는 남직원이 좋아

나도 여직원이지만(공대여자 말고 그냥 나)

by mamang


상사 1 : 그래서 자네 이 부서에서 결혼할 건가?
미혼 여직원 : 아닙니다. 저는 독신으로 이 회사에 뼈를 묻을 예정입니닷!
상사 2 : 그럼 자네는 여기 근무하면서 아기를 낳을 생각인가?
기혼 여직원 : 아닙니다. 남편이 수술을 받아서 공장문을 닫았습니닷!


첫 직장에서 여직원들 사이에 괴담처럼 돌았던 이야기다. 각 부서에 배정된 티오를 여직원에게 주기에는 걱정되는 게 한둘이 아니라는 거였다.


그 때문에 어떤 부서장들은 출산휴가로 티오만 놀리게 되는 건 아닐까 싶은 조바심에 미혼이면 혹시 결혼이라도 해서 아기를 가져버리는 게 아닌가, 기혼이면 혹시 이 부서에 와서 하필 아이를 낳으러 들어가 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질문들을 대놓고 한다는 거였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회사는 전국에 현장 및 지사가 있었고, 최소 2년에 한 번씩은 근무지를 옮겨 다녀야 하는 순환근무를 시행하고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4년여간 일하는 동안 2곳의 부서에서 근무했는데, 이런 경우는 첫 발령지의 프로젝트가 완수되었기 때문에 부서원들이 전국 각지로 흩어진 사례였다. 프로젝트가 완료되지 않았어도 아마 부서를 옮겼어야 했을 것이다.


동기 언니 : 안 그래도 나도 옮겨야 하는데. 그거 들었지? 어떤 부서에서는 여기에서 애 안 낳는다고 약속할 수 있냐. 하면서 확답을 해야 받아주는 곳도 있데.


"경력직을 선호한다고 하면 신입들은 경력을 어디에서 만든답니까? 뽑아줘야 경력을 만들죠." 하는 말처럼 힘든 현장이나 일이 많은 부서에서 여직원을 선호하지 않다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량을 발휘하는 여직원들을 발굴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한 거 아닌가 하는 억울함도 들었다.




주 차장님 : 공대여자. 이번에 이 현장 준공되면 다른 현장으로 가야 하는데 혹시 가고 싶은 곳 있어?
공대여자 : 차장님,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저를 받아주는 곳이 있을까요? 받아준다고만 하면 어디든 좋지 말입니다.


인사 시즌이 다가오는 시점이 되어서야 나는 스스로 이렇게 물었다. '정말 열심히 했느냐? 네가 남자 직원들과 견줘 보았을 때 정말 더 나은 직원인 것이냐?'


답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제 딴에는 최선을 다했지만, 군대에 다녀온 남직원만큼 선배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던 것 같아요.'였다.


물론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열심히 살아왔던 것처럼 여전히 최선에 최선을 다했다.


추운 날에는 추운 현장에서, 더운 날에는 더운 현장에서 근무했다. 각 부서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남자 동기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나도 쉽지 않은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여기저기 알리고 싶었다.


튀고 싶은 마음에 입사 6개월 차에 진행했던 집합교육에서 현장 적응 사례 발표도 했다. 그렇게 한발 한발 나만의 독특하고 야무진 길을 가고 있다고 믿었다.


여름에는 반소매 자국이 날 정도로 타서 차장님께 "쿨토시 좀 사주세요" 했고, 나중에는 손등만 타버리는 바람에 손바닥 손등의 색깔이 달라졌다. "장갑 좀 사주세요" 했다가는 현장에 들고 다녀야 할 게 너무 많아져서 "팀복을 맞추는 것처럼 감독들끼리 낚시 조끼를 맞춰서 입고 다니면 어떨까요?" 했다.


낚시 조끼 주머니마다 색연필, 마끼(줄자), 볼펜, 두꺼운 심과 얇은 심의 샤프, 색연필, 차 열쇠 등등 가득 채운 후 도면을 들고 선배들과 현장에 나갈 때의 뿌듯함이란. 그러다가 얼굴은 까매지고 모공은 넓어지는 것 같아 사비를 털어 낚시 모자도 사서 쓰고 다녔다.


2년의 세월을 주말, 휴일 없이 현장에 나갔다. 현장 반장님들께서는 나중에 나와 안면도 트고 친숙해지기도 하셨는지 까만 콩이 되어 현장에 돌아다니던 나에게 "감독님은 왜 주말에도 쉬지를 않으시나요." 하며 농담을 하기도 하셨다.




그런데 대부분의 남자 토목직 동기들은 어떻게 지내왔을까.


일단 내가 위에서 언급했던 최선의 최선을 다했다는 것들은 기본으로 깔고는, 플러스알파로 그들만의 어려운 사회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다.


남자 선배들과 사택을 같이 써야 했던 그들은 거실과 티브이를 상사에게 빼앗긴 채 그들의 좁은 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지금처럼 유튜브나 넷플릭스처럼 볼 게 많다면 모르겠지만, 10년 전이었던 그때 사택에서 가장 좁은 그 관 같은 방 안에서 얼마나 많은 답답한 시간을 견뎠을까.


지루하고 찌뿌둥한 시간을 지나 어쩌다 한번 화장실을 가려고 방 바깥으로 나올라치면 "한잔할래?" 하는 상사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들어야 했다. 어떤 동기는 그 이야기를 듣다가 굳이 방에 노크해서 신입사원을 거실로 불러서 매일 한 잔씩 하는 상사도 있다고 말을 보탰다.


여자 동기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식겁했고, 나는 그 후 여자로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회식이 늦어져서 2차, 3차에 가고 싶지 않을 때는 사실 집에 부모님, 할머니와 살아서 늦게 들어가면 걱정하신다고 핑계를 대고 집에 갔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남자 동기들에게는 그런 핑계가 성립되지 않았고, 담배를 피우면 피우는 대로 선배들을 따라 나가 본인 용량 이상의 담배를 태워야 했고 가장 늦게까지 회식 자리에 남아 선배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나서야 집에 갈 수 있었다.


운이 안 좋아서 선배가 조금 덜 취할 때면 사택에 가서 끝나지 않은 회식을 이어가야 했다.


입사 1년 차, 2년 차가 지나면서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하나둘 생기다 보니 "내가 같은 직원인데 왜 남자 직원하고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하나"하는 불평불만이 쏙 들어갔다.


입사 지원서를 넣는 족족 사기업 서류전형에서 떨어지는 경험을 하며 "이 망할 놈의 불공평한 세상!"하고 투쟁을 선포했지만, 꼰대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젊은 남자들의 사회생활의 고충들을 들어보니 숙연해졌다.


아무튼, 그렇게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해도 남자 직원들의 발끝도 못 쫓아갈 것 같다는 무력함과 함께 아무도 나를 안 데려가겠다고 하는 좌절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자신감을 잃어버린 나는 공사 준공 후 설거지(공사를 마치고 잔여 서류 작업이나 인허가 업무 전반을 정리하는 것의 속어)를 하기 위해 부서에 남게 된 차장님께 볼멘소리했다.


청춘을 바치고 내 피부도 바쳤더니 나를 데려가는 곳이 없다고.




어떻게 하면 내가 이곳저곳에 잘 팔려 갈까 고민을 하다가 나중에는 강원도로 가고 싶었다. 부서 이동 신청을 하려고 한탄강에 있는 선배에게 상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승진을 염두에 두고 있거나 연고지이거나 하는 선배님들이 지원한다고 하는데, 연고도 없는 내가 여직원 한 명 없는 그 먼 곳에 가겠다고 도발을 하니 선배들 모두 난감해하셨다.


주 차장님 : 부서장님께서 잘 신경 써주실 거야


차장님 미스터 우*가 정말 나를 잘 신경 써줄까요? (참고 : 혼자만 웃는 농담, 음담패설)


하늘과 같은 미스터 우의 은혜 덕분에 나는 집에서 편도 1시간 20분 거리의 또 다른 전남의 현장으로 발령받게 되었다. 다행히도 현장에서 30분 떨어진 곳에 직원 사택이 있었기에 집에서 독립도 하게 되고 주말에는 편하게 본가에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서 아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 현장에는 나와 같은 부서에 계셨던 다른 차장님 한 분께서 먼저 가 계셨기에 나의 발령 소식에 반가워하시는 듯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차장님은 미스터 우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 부서도 무척이나 일이 많아서 차장님은 남자 직원을 요청했는데, 그 요구를 무시하듯 여직원인 나를 보냈던 것이다. 이게 화근이었다. 나중에는 이 차장님이 내가 퇴사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우신 분이 되었다)




9년 후,


공대여자 : 오~ 우리 동기 H 이번에 발령 났더라! 멋져 진짜 뭔가 핵심 인력인가 봐. 어떻게 저렇게 좋은 부서에 발령 났다니!
여자 동기 : 그렇지. 일을 잘하기도 하는데, 그 부서에서 미혼 남자 직원을 원했나 봐.
공대여자 : 남자 직원 선호하는 건 거의 그랬으니까 이해하는데, 남자 직원들 사이에서 또 그렇게 나뉘어?
여자 동기 : 그런가 봐. 아무래도 보살펴야 할 가족이 없으면 일을 조금 편하게 시킬 수 있으니까?
공대여자 : 아니 그럼 그 미혼 남자 직원들은 무슨 죄야?


두 번째 직장에서 인사 발령 공고를 보고 여자 동기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날 이후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바로 공대 여자인 나만 가장 힘들고 억울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조직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극심한 '부림'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직장에서 보내왔던 시간의 대부분을 '내가 여자라서 그렇다, 여직원이라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등등의 피해의식에 가득 찬 채로 보내왔다.


사회생활 10년 차를 맞이한 최근에서야 조금 다른 시선으로 나와 동료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내가 가져왔던 '여자라서 손해 보는 게 너무 많다'는 프레임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나보다 예쁨 받고 더 인정받는 남자 직원들을 질투해왔던 지난 9년여의 세월을 돌이켜보면 내가 갖지 못하는 것에만 너무 집착을 해왔던 것 같다. 그들만의 세상, 그들만의 문화를 엿보느라 문제의 뿌리를 객관적으로 찾아내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까라면 까라' 하는 지시를 내리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는 상사들이 문제였고,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은 남자들 뿐이라는 선입견도 문제였다. 상사들이 이렇게 생각을 하니 자연스레 조직문화도 경직되었고, 이 경직된 시스템에 여직원들이 적응하는 건 당연히 쉽지 않았을 거였다. 결국에는 쉽게 적응하고 쉽게 부릴 수 있는 남직원을 선호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추세였을 것이다.


대부분의 상사와 의사 결정권자들이 남자로 가득한 조직 내에서 업무 지시를 내리고 직원을 관리하는 데에 이성보다 동성이 더 편했을 것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 자연스레 감정적으로 예민한 대부분의 여성은 회피하게 되었을 것이다.


여성으로 태어난 내가 세상에 큰 잘못을 저질렀던 게 아니라, 여성도 남성도 본인들이 맡은 만큼 공평하고도 모두 함께 비슷한 짐을 지우게 해야 할 만큼 효율적이기 못한 조직문화가 문제였던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아주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사실 지금 남자 후배를 더 기다리고 있다.(이건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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