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여기에 심으시면 안 돼요

농사꾼이 땅을 놀리면 쓰나(공대 여자 말고 그냥 나)

by mamang


공대여자 : 할머니~ 여기에 이거 심으시면 안 돼요.
동네 할머니 : 아가씨. 뭔 소리여.
공대여자 : 할머니 여기는 보상받으신 땅이라서 이제 국가 거예요. 무단경작이세요.
동네 할머니 : 뭔 소리여. 농사꾼이 땅을 놀리면 쓰나?


동네 할머니께서는 토지를 보상받아 토지 소유권이 국가로 귀속된 수용민이셨다. 국가로 귀속된 토지의 경우 그 소유권이나 관리 권한이 자연스레 국가에 위임되기 때문에 해당 토지를 경작하고 작물을 재배하는 등의 행위는 불법이다.


공대여자 : 동네 할머니, 할아버님들께서 현장에 온갖 작물들을 심으세요.
보상 차장님 : 어쩌겠어. 평생 일해오셨던 땅이 수용되는 바람에 당장 할 일이 없어졌는데.


당시 우리 현장은 하천 주변을 깊고 넓게 파서 홍수를 조절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드는 계획을 세우고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하천 바로 옆에 있던 논과 밭들은 국가사업을 위하여 그에 맞는 금액을 평가받고 보상을 받게 되었다. 토지가 수용되어버린 대부분의 토지 소유주들이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전체적인 보상만 지연될 뿐이었고, 개인과 국가 간의 분쟁에서 개인의 손을 들어줄 리 만무했다. 그렇게 많은 농민이 평생에 걸려 일궈왔던 논밭을 잃게 되었다. (물론 큰 이익을 남긴 소유주들도 많다고 한다)


공대여자 : 그럼 쉬시면 되죠? 보상받으신 돈으로 편하게요.
보상 차장님 : 그게 말처럼 쉽겠어?


토지 수용 절차가 필요한 현장의 경우 별도의 보상 파트가 있다. 우리 현장 담당 보상 차장님께 현장 내 불법 경작의 사례를 하소연했더니 몇몇 이야기를 해주신다.




01. 사람들은 하찮은 일이라도 뭔가를 해야 살아갈 힘이 생긴다


국가로 수용되어 토목 공사 현장이 된 그분들의 논과 밭은 예전부터 옥토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곳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는 젊을 적부터 손톱 끝이 까매지도록 흙을 개간하고 자기 논에 물을 끌어다가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어 가꿔오셨던 것이다. 그렇게 정성스레 가꾼 기름진 땅에서 나고 자란 농산물들로 자식들을 먹이고 키우셨을 것이다.


자식들을 키우고 이곳저곳으로 떠나보낸 어르신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건 이 논과 밭뿐이었다.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외지에 사는 자식들이 바쁠 것 같아 마음 놓고 전화하기도 어려워하신다고 한다.


여러모로 쓰임 받은 이 땅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생존 이유였으며, 뭔가를 보살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는 이분들에게 남은 마지막 루틴이었을 것이다.


오랫동안의 고된 노동으로 허리가 낫처럼 기역이 되어 잘 펴지지 않으시는 어르신들은 규칙적으로 새벽같이 일어나셔서 일할 거리를 찾아 논밭으로 나가신다. 매일 어딘가에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 그날의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 내가 밥만 축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그분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힘이 되는 거라고 한다.


대규모 SOC 사업을 추진하면서 사업 타당성 검토 중 하나의 논리로 세워지는 것은 '일자리 창출'이다.


"옥토였던 논을 개간하여 토목사업을 하면 농민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건데 정말 일자리 창출이 맞을까?"하고 친구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그러다가는 한참이 지나서 "아, 맞네. 내 일자리를 창출해줬지. 내가 그 덕에 취업했구나." 하고 자문자답했다.


민망함에 땀이 삐질 났다.


한 번은 제방 비탈면에 설치된 호안블록(하천물이 불어나더라도 비탈면이 쓸려가지 않게 콘크리트 블록으로 고정하는 것)을 설치하는 작업에 동네 주민들께서 참여하신 적이 있었다. 소일거리가 없어져 버린 주민분들을 위해 동네 이장님께서 주민들을 고용해주라는 요청을 하셨던 거였다.


그분들은 블록을 설치하는 석공들 옆에서 보조 역할을 하시는 잡부를 담당하셨다.


뙤약볕에서 종일 허리를 구부리고 등허리에 내리쬐는 빛을 견디며 일하는 그분들의 구부정한 모습이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보고 있기 힘들었다.


내가 누군가의 소중한 일거리를 빼앗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 미안했다.


02. 연락이 끊겼던 자식들이 시골의 부모님에게 찾아와 보상비를 받아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젊어서는 자식들을 먹이고 가르치고 나이 들어서는 어르신들의 유일한 소일거리를 나라에 수용당한 후, 잘 얼굴을 비치지 않았던 자식들까지 어떻게 소식을 듣고 찾아왔는지 득달같이 고향으로 달려오는 집이 많다고 한다.


얼마를 보상받았는지 묻거나, 나는 얼마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다른 형제가 나보다 많이 받는 건 아닌지 시기 질투를 하다가 가족 간의 불화도 참 많이 생긴다고 한다.


소중한 내 일터를 빼앗겨 한 번 울었던 어르신들은 미운 얼굴을 하는 자식들을 미워할 수가 없어서 또 한 번 울었을 것이다.


그렇게 본인들의 크고 작은 일거리와 자식들 간의 우애를 한꺼번에 잃은 어르신들은 무기력하고 우울하기만 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아침에 눈이 떠지면 농기구를 집어 들고 당연하게 향하던 내 발걸음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고, 평생 놀아본 적 없던 손은 아직 쌩쌩하기만 한 것 같아서 어찌 되었든 현장 여기저기 농작물을 심을 곳을 찾아다닌다고 하신다.


어르신들의 사정을 듣다 보니 농작물을 심지 말라고 하는 나와 한바탕 벌이는 실랑이조차 그분들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서 매일 반복하시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03. 진짜 뭔가를 계속 키우고 싶어 하신다


그렇게 그분들은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부지런히 하루하루를 살아왔던 삶의 낙을 잃게 되었다. 평 또는 m2당 얼마씩 평가받아 보상을 받거나 조금 더 버티고 반대해서 공시지가 이상으로 보상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부지런함이 뼛속까지 차 있는 그분들에게 '할 일'을 빼앗아가는 보상은 '일자리'를 잃은 우울감만 줄 뿐이라고 한다.


매년 물을 대고 심고 뿌리고 잡초를 뽑아내고 벌레를 잡아내며 손을 많이 탔던 이 땅은 갈아엎어지고 파이고 긁혀나갔다.


이제 나는 무엇을 어디에 뿌리내리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시던 분들은 현장의 이곳저곳을 다니시며 몰래 씨를 뿌리고 나름의 방법으로 정성스레 그 아이들을 키우신다.

입사 3년 차에 하천 정비공사 현장에서 하천 주변의 제방을 보강하며 토지를 수용하여 공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동네 할머니 한 분께서는 제방 상단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없는 곳을 호미로 하나하나 파서 콩을 심어놓으셨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여기에는 잡초도 없네' 싶었지만 큰 문제가 없어 보여 그냥 지나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현장에 가보니 조그마한 싹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 아기 싹들은 점점 커져서 떡잎이 되더니 나중에는 그 주변에 나무젓가락으로 귀엽게 고정을 한 후 비닐로 덮어놓은 미니 비닐하우스가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너무 귀엽고 조그마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비닐하우스를 어찌하지 못해서 현장을 조금 더 자주 돌아보면서 주인분이 누구인지 알아내야지!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9시부터 6시까지 아무리 눈을 씻고 현장을 돌아봐도 비닐하우스의 주인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공대여자 : 반장님. 글쎄 제방 둑 옆에 이렇게 작은 비닐하우스 같은데 쳐져 있거든요? 이게 뭘까요?
경비 반장님 : 콩이네! 콩. 아마 곧 알아서 다른 곳으로 옮겨 심을 것이여.


알고 보니 내가 봤던 작물은 콩이었고, 씨앗을 뿌린 후 옮겨 심을 정도의 크기로 자라면 그 모종을 원하는 다른 곳에 심기 위해서 이렇게 정성스럽게 키우고 있었던 거였다. 콩 비닐하우스의 주인을 만나지 못한 것도 부지런한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새벽 일찍 왔다 갔다 하시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내가 근무했던 현장은 하천 정비공사 진행과 함께 댐과 수도 시설을 담당하는 곳이었다. 댐이 만들어지면서 수용된 곳의 주민이셨던 경비 반장님은 현장 한번 둘러보러 나올 때 우리 집에 와서 음료수라도 한잔하고 가라고 하셨다.


빈말이셨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반장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계시던 반장님 동네 가까이 가서 전화를 드렸다. 반장님은 큰 길가로 나를 데리러 나와주셨다. 집안에 들어가니 함박웃음을 하며 나를 반겨주시던 사모님께서는 방금 쪄낸 고구마를 내어주셨다.


"저놈이 우리 큰아들이여. 서울에서 회사 다녀." 하시며 벽에 걸려있던 아드님 사진을 자랑하시던 반장님은 고구마를 들으라고 권해주셨다. 반장님께서는 경비반장으로 일을 시작하시면서는 투잡을 하게 되셨다고 한다. 교대근무를 해야 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주로 본인의 본업인 논밭을 가꾸는 일을 하시기 때문에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란다고 하신다. 댐이 수용될 때 마을 주민들과 발주처 간의 다리 역할을 하신 게 큰 공으로 인정되어 경비 반장님 일을 시작하게 되셨다고 하셨다.


"그럼 반장님 예전에 사시던 집도 저 댐 안에 있어요?" 하고 여쭤보니 "그렇제. 다 우리 고향이었제."라고 하신다.


"그런데 경비 일도 하시고 시간 쪼개서 논밭일까지 하시면 힘들지 않으세요?" 했더니 "그래도 농사꾼은 흙을 만져야 써."('흙을 만져야 한다'는 전라도 방언) 하셨다.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의 시간을 들여 눈에 보이는 뭔가를 가꾸어가는 것.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눈에 보일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가꿔가는 것. 때로는 그런 노력이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가치가 되어 돌아오는 것. 돈으로 바뀌지 않아도 어쩌겠나 싶을 정도로 나름의 가치를 가진 소중한 어떤 것일까.


땅을 놀릴 수 없다고 하시농사꾼들의 말씀을 들은 후 재화로 맞바꿔 돌아오지 않는 노력 또한 누군가에게는 아주 중요한 소일거리, 물론 간혹 대일 거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의 상태가 내 손을 거치기 전과 후의 분명한 차이를 가지게 되는 것. 누군가가 나로 인해 조금 더 편안하고 안락해질 수 있는 것. 때로는 어떤 곳에 있는 듯 마는 듯할 정도의 안정감을 느끼고 불편하지 않게 해 주는 것.


누군가가 행동하고 일하고 말하고 노동하는 것이 갖는 대단함과 소중함을 알게 된다면 아마 우리가 모두 접하게 될 내일의 세상이 오늘의 그것보다 훨씬 따뜻하고, 감사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오늘도 뭔가를 할 수 있음에, 나의 업이 있음에 또 한 번 감사하다.


마음이 불쾌해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이룬 것, 자신이 창조한 것이 사람들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신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여겨 언짢아하는 노인이 있는가 하면 빛나는 청춘의 한 가운데에 있으면서 사회 속에서 생산적인 존재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우울해하는 젊은이도 있다. 이러한 사실로 비추어 볼 때, 늘 기분 좋게 살아가기 위한 요령은 '타인을 돕거나 누군가의 힘이 되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으로 존재의 의미를 실감하고, 순수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
-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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