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룸메이트 실종 해프닝

하늘이 주신 마지막 기회(공대여자 말고 그냥 나)

by mamang



미쓰 송은 19살의 나이로 취업했다. 정년이 보장되는 공공기관이다 보니 선배들은 모두 그녀에게 앞으로 40년, 아니 정년이 늦어지면 45년은 근무하겠다며 저주인지 부러움인지 모를 이야기들을 해댔다.


그녀와 나는 룸메이트였다. 도심에서 꽤 떨어져 있는 댐에서 근무해야 하는 우리는 종종 같이 자주 따로 출퇴근했다. 19살과 27살로 처음 만난 우리는 맞는 듯 잘 맞지 않는 듯 또 그러다가 까르르거리기 일쑤였다.


한 번은 미쓰송과 나 모두와 친한 맹구라는 별명을 가진 언니를 집들이에 초대했다. 미쓰송과 나는 급한 마음에 1000원 마트(천 냥 마트 또는 다이소였을 수도 있음) 등에서 구매한 발 매트, 그릇, 밥상 등을 소꿉놀이하듯 여기저기 배치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했던 우리는 유일한 집들이 손님인 맹구 언니와 함께 먹을 치킨을 시키고 언니를 위한 맥주와 우리를 위한 콜라를 사 왔다.


뷰티를 아직 잘 모르는 미쓰송과 나에게 맹구 언니는 항상 너무 예뻤다. 언니는 흑색 긴 머리를 찰랑거리게 유지하고 몇 가닥 안 되는 앞머리를 솜씨 좋게 그루프로 마는 법을 알았다. 웃으면 눈이 작아지는 언니의 예쁜 미소에 우리는 매번 "언니 진짜 예뻐! 언니 진짜 예뻐요! 언니를 왜 남자들이 몰라줄까? 그러게요, 맞아요!" 하며 번갈아 이야기했다.


언니는 그해 30살이었다. 언니의 짝은 우리가 찾아주겠다는 다짐에 다짐을 하고 우리는 미쓰송의 차를 타고 맹구 언니를 집에 데려다주는 길에 나섰다.


내 성격만큼이나 예민한 장을 가진 나는 미쓰송의 차 안에서 생각지 못한 급한 부름을 느꼈다. 갑작스레 찾아온 아랫배의 노크에 나는 너무 놀랐고 미쓰송과 맹구 언니에게 "당장 어디에든 제발 들어가 주라"고 빌었다.


"언니! 괜찮아요? 조금만 참아요" 하면서 미쓰송은 나를 위해 주변에서 가장 큰 간판을 가지고 있는 M도날드 쪽으로 향했다.


먹지도 않을 햄버거를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필 나는 그때만 해도 뭔가를 구매하지 않은 당당하지 못한 방문자는 화장실을 무료로 쓸 수 없다 믿는 아주 얇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는지 햄버거 가게에 거의 다 도착해서는 정말 장의 노크 소리가 잠잠해져서 "미쓰송아 나 이제 괜찮아."했다.


8살이나 어린 미쓰송이 조수석에 앉아서 식은땀을 흘리던 내 쪽으로 고개와 상체를 돌리며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언니. 엄청나게 배가 아파서 화장실 가고 싶다가 아주 잠깐 딱 한 번 괜찮아질 때가 온대요. 다들 이제 위기가 지나갔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하늘이 주신 마지막 기회래요."


나는 미쓰송의 진지한 조언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햄버거 가게 문을 열었다. "저, 화장실 좀."


그 후 나는 예민한 장이 노크한 후 잠시 찾아온 평화에 자만하지 않고 '하늘이 주신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우리의 동거 초반에는 꿈에 그리던 여동생이 생긴 것 같아서 너무 좋았다. 19살의 룸메이트가 생겨서 귀엽기도 하고 신기했다. 본가를 떠나왔던 후련함이 아직 남아있었을 그때는 하루하루가 신기하고 즐거웠으니까. 교대근무를 해야 하는 미쓰송이 차를 사기 전까지 짧은 기간에는 함께 차를 타고 수다를 떨며 가는 출근길도 너무 행복했다.


나보다 8살 어린 미쓰송이 매일 출퇴근을 반복하고 있던 그때, 나보다 9살 어린 늦둥이 동생은 미쓰송보다 한참 덩치가 큰데도 아직 교복을 벗지 못했었다. 따뜻한 집에서 매일 부모님의 얼굴을 보고, 할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함께 살고 있었다.


미쓰송은 또래 친구들과 매일 교실에서 수업하고 바깥에서 실습하고 정신 차려보니 취업을 해야 했을 것이다. 원서를 쓰고 그러다 보니 40년, 45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에 자리 잡아버린 것이었다. 안정적인 직업이 최고라는데 이 직장과 직업은 미쓰송에게 안정감을 주고 있었을까 나는 뒤늦게 궁금해졌다.


내가 고등학교를 막 졸업했을 때 어땠을까? 나의 19살, 20살 때는 어땠을까? 처음 내 힘으로 돈을 벌어본 적이 언제였지? 19살에 평생 지고 가야 할지 모르는 자신의 업이 생긴 기분은 어떨까. 반가울까 지겨울까.


나에겐 아직 너무 어린 사회인 미쓰송에 대하여 나는 이런 생각에 종종 빠졌다가도 금방 잊어버렸다.



그 무렵의 나는 "부모님이 좋아하시지? 학교에 플래카드 걸리지 않았어?" 하는 어른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미쓰송이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은 깊게 하지 못했다. 그냥 저분들 하던 말 또 하시네. 했다.


미쓰송이 친구들과 맥주는 마셔봤을까? 소주 주량은 얼마인지 알고 있을까? 미쓰송은 다른 동갑내기 친구들과 이런 회식에 대해서 어떤 푸념을 나눌까. 친구들과 산뜻하고 설레는 엠티나 잔디밭에서 먹는 낮술에 대해 아쉬움은 없을까. 내가 용돈을 받아 쓰던 나이에 직함과 직장을 갖는다는 것 어떤 느낌일까.


지금 미쓰송을 떠올려보니 궁금한 게 한둘이 아닌데, 지금의 나보다 8년이 어렸던 그때의 나는 그냥 회식이 빨리 끝나기만 바라고 있었다.


남들이 다 하는 말을 반복하며 편하게 다리 꼬고 입으로만 해줄 수 있는 걱정을 했다. "미쓰송아 밤낮이 바뀌어서 안 힘들어?" 그때 나의 위로는 이게 다였던 걸로 기억한다.


반짝거리고 신기했던 초반이 지나자 미쓰송은 점점 교대근무에 절어갔고, 나는 격무에 시달렸다.


시간을 쪼개서 함께 과자를 먹고 콜라를 먹는 거실에서의 시간은 점점 줄었고 우리는 각자의 방에서 어서 주말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게는 회식하는 날 아니면 야근, 주말마저도 수도 사고로 언제 출근해야 할지 모르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그러다가는 일요일 저녁에 미리 사택에 가는 것조차 회사에 출근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시간이 묻혀놓은 일상의 피로감이 온 집안에 풍기는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기적이고 어른답지 못했고 방관했던 나였다.




아마 미쓰송에게는 시키니까 해야 하는 반복적인 일들과 진로에 대한 뒤늦은 후회, 고민이 한꺼번에 몰려왔을지도 모른다.


그때쯤이었다. 일요일에 사택에 잘 가지 않던 내가 그날은 느지막이 사택에 가 있었다. 푹 쉬고 내일 그나마 산뜻한 월요일을 맞이해야지 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는데, 받아보니 미쓰송의 어머니셨다. 어린 나이의 딸이 타지에서 일하는 게 걱정이 돼서 비상용으로 미쓰송에게 물어물어 저장해놓으셨단다.


어머니는 미쓰송이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 네. 안녕하세요. 어머니. 멀리에서 걱정이 많으셨죠? 제가 한번 전화해볼게요." 하고 끊었다.


고백하자면 속으로는 '내가 보호자야 뭐야. 다 커서 취업까지 했는데 주말에 전화를 안 받는다고 나한테까지 전화하실 게 뭐람. 벌써 출근한 기분이네.' 하는 생각을 했다.


유지하고 싶었던 침묵이 깨져버리고 미쓰송에게 아무리 전화를 해도 내 전화 또한 받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고객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 할 뿐이었다.


그렇게 딸의 실종신고를 한 미쓰송 어머니와 경찰 아저씨의 전화를 번갈아 받으니 잠이 들었다 깼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매번 주일을 꼬박 잘 지켜서 예배당에 가질 않았었다. 무섭고 걱정되는 마음에 나는 '미쓰송을 안전하게 집에 데려다주시면 교회에 잘 다닐게요. 퇴근해서 토익 공부 안 하고 미쓰송 잘 챙겨줄게요.' 하며 기도했다.


다음날 일어나서 빼꼼히 미스 송 방을 열어보았다. 그녀는 없었다.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 그때 미쓰송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미쓰송이 다시 나타나면 얼싸안고 울어버릴 것만 같았는데 나는 "어우 야 엄청나게 걱정했잖아. 어머니가 계속 전화하셨어. 어디에 있었던 거야?"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미쓰송은 멋쩍게 웃으며 "죄송해요. 언니. 친구랑 낚시 갔었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없는 줄도 몰랐네요." 했다.


잘 와서 다행이라고 어서 쉬라고 말하고서는 출근 준비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는 '뭐? 낚시? 놀러 가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걱정시켰다고?' 하고는 입이 퉁퉁 불어서 그 주 주말에 교회에 가지 않았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미쓰송은 다른 부서로 옮겼다. 부서 주변의 사택에서 산다고 했다.


나는 퇴근하고 하는 토익 공부는 못하겠다며 퇴사를 했다. 마음잡고 제대로 이직 준비를 해보고 싶었다.




내가 26살 때 취업하고 나서 할머니는 궁금한 게 많았다. 내가 퇴근해서 저녁을 먹고 있으면 나를 쳐다보며 오늘 점심은 뭐가 나왔냐, 무슨 일을 했느냐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밥도 제 손으로 할 줄 모르는 쪼그만 애가 밖에 나가서 '일'을 한다고 하니 얼마나 신기하셨을까. 그때는 괜히 귀찮고 짜증만 났는데 인제 와서 생각해보니 이해가 된다. 남동생이 취업하면 매일 묻고 싶은 마음이다.


20살에 나는 새 친구 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너무 떨려 청심환을 먹고 학교에 가야 했는데, 19살에 사회에 나와야 했던 미쓰송과 미쓰송의 친구들은 어땠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제 밥벌이를 하게 되면 어른들은 덮어놓고 반기며 회사에서 나가라고 할 때까지 40년이고 45년이고 버티라고 한다. 때로는 버티는 게 답이 아닐 수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가끔은 취업한 고등학교 졸업생들을 회사에 맞춰서 교육할게 아니라 그의 선배들을 미리 교육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예습 없이 사회에 나와서 놀라지 않게, 누구야 누구야 불리며 어리다고 무조건 하대 받지 않게. 그들이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 있고 어려움을 느낄 수 있으니 선배들이 배려해줄 수 있게. 그리고 어리다고 다 괜찮은 게 아닌 것도 알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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