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ssoud Jun Oct 02. 2019

TSC

삼성중공업 4 : TSC, 테크닙, 삼성중공업 컨서시엄 



 계급체계의 최 하류 인생에 적용된 것은 일당이다. 

일당이 그 사람의 인격이었고 가능성이었으며 존중해주어야 할 가치였다. 누가 일당을 단 만원이라도 많이 받고 덜 받고가 그 사람들의 실력을 가름하는 잣대였다. 그 실력은 기술자가 되는 기준이기도 했고 얼마나 오랫동안 그 분야에서 종사했는지에 대한 척도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조선소를 떠다니며 조선업에 종사해 왔을 뿐, 자신의 기술과 능력을 견제할 그 어떤 세력도 없었다. 그래서 삼성중공업은 진짜 실력 있는 반장과 직장을 고용했다. 일당을 더 주되 정직원이 아닌 언제든 짜를 수 있는 사람들로, 그 사람들의 충성도가 제 1의 조건이었다.


휴식은 10시부터 10분, 오후 15시에 10분을 쉬었고 시종시간 준수를 외쳤다. 그러면서 아침 조회는 배 위에서 07시 30분에 진행해서 작업자들은 자신의 시간을 오롯이 희생했다



 그가 받는 일당은 자부심이자 능력이었으며 권력이기도 했다. 일당은 행할 수 있는 최고의 완장이었다. 그들은 누가 얼마씩 받기로 하고 들어왔으며 일하는 것을 보고 어느 정도 일을 했는지, 얼만큼 길들여질 사람인지를 결정했다. 또아리를 틀거나 개기면 자비가 있을 수 없었다.


 일당은 계급장이었다. 누구에게 고개 숙여야 할지, 누구를 조져야 할지 시간과 경력이 말해주었다. 그들에게도 자신들의 조직이 와해되면 다른 조직에서 신뢰를 얻는데 필요한 시간과 굴욕의 시간이 아까웠다.


 협력회사에는 시급이라는 정직원이 존재했다. 그렇게 무시무시하고 빡 센 일을 하는데 최하 시급이 적용된 직원들은 힘든 일을 하지 않았다. 표면상으론 그러했다. 모든 어려운 일들은 물량팀들이 도 맡았고 그런 일들을 위해 숙식제공에 최하 10만원의 일당을 지급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갈 곳 없는 뜨내기 노동자들은 삼성의 성은에 목숨을 바쳐 충성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러한 시스템이 완성되어 아무런 무리 없이 현장의 노예들을 다스리는 성은에 삼성 직원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이었다.

같이 일하기도 하고 같은 방을 사용하기도 하는 동생이었다. 키가 작고 긍정적인 마인드의 소유자였으나 말로 형언하기 힘든 기인이었다. 담배를 한 시간에 네 댓 개피씩 피었고 방구를 일부러 끼어도 힘들 정도로 기이하게 끼어댔다. 두 아이의 아버지로써, 같이 일하는 노동자로써 존중했다.


 그런데, 문제가 많은 친구였다. 나는 그냥 개인으로써 개인을 존중할 뿐, 그에게 나이 많은 형으로써의 역할도 그래야 할 이유도 없었지만 우리는 같은 방을 썼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욕실에 오줌을 싸서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플 정도였고 땀 흘리고 집에 들어와 씻지도 않고 잤다. 대청소를 했다. 혼자 쓰기에 딱 좋은 방이었는데 대청소를 했다. 일이 없는 날이면 아침부터 막걸리에 김치를 꺼내놓고 옆에 사람이 자든 말든 먹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예의 좀 갖추고 살자!”


나는 혼자 살면서 지저분했지만 해도 너무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를 갈구기 시작한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 날 밤,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며 탐색전을 펼치던 그 친구가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한판 붙자 했다.


“아따, 프랑스 말도 잘하고 잘난 체는 다하는데 깔끔하게 한판 붙자 야!”

“걍 자 임마!”

“야! 씨벌 한 판 떠 야!”

“왜? 무슨 이유로? 누가 시켰어?”

“아, 잔말 말고 한판 떠!”


어린 놈이 두 시간 동안 괴롭혔다. 내가 괴로워서 밖으로 나가려 하자 문을 막았다.


“왜? 후달리냐?”


순식간에 내 왼손이 따귀를 때리고 오른 손이 턱을 가격하자 애가 쓰러졌다. 코피가 흘렀다. 딱 두 대 때렸는데 정신을 못 차렸다.


“누가 시켰어? 두 시간 동안 괴롭힌 거 녹음됐으니 허튼 생각 말고!”

“반장들이……”

“이유가 뭐야?”

“그냥 꼴 보기 싫다고…… 형님한테 갈구면 꼼짝 못할 거라고 그래서, 자기들이 책임진다고……”


나는 본능적으로 팀장이 시켰다는 것을 알았다. 제임스에게 일러바쳐 업체가 곤란에 처한 적이 있었고 일개, 보조공에 의한 것이 억울한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였다. 그들의 자존심은 그만큼 강했고 명예도 드높았다.


 동갑인 팀장, 김상걸은 족장 맨의 자부심과 함께 조선업계 족장 계에서 형과 함께 떠도는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팀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협력업체에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두 형제는 남들이 하지 못하는 물량을 쳐 내기 위해 쉬지도 먹지도 않고 일해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들 앞을 가로막는 경쟁자들은 싸워서라도 꺾었다. 두 형제는 싸움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어떻게 세운 명성인데 느닷없이 나타난 나 때문에 하성으로부터 비난을 받은 터였다. 충분히 이해가 갔지만 나는 생각할수록 더럽고 치욕스러웠다.


 내가 적응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권한을 넘어선 장난뿐만이 아니었다. 좁은 현장이나 흡연 공간 등에서 스치는 사람들끼리 몸 부딪힘이 예사롭게 일어났다. 일부러 시비를 거는 것도 같은 현상에 멱살을 잡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났지만 싸움은 바로 퇴출이라 심각하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담배를 피우면서 끊임없이 침을 뱉았다. 피시 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역겨웠다. 그들의 역겨움의 이제 갓 사회에 나온 20대 청소년들을 세뇌하고 이간질시키는 것으로도 이어졌다.


“너 같은 새끼는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몇 번씩 얘기했는데도 그게 안돼? 네 친구들 하는 거 봐봐. 너 같은 새끼 때문에 현장이 발전이 안 되는 거야. 생각 좀 하고 일해”


이들의 협박처럼, 타각처리가 되지 않으면 급여에서 공제했다. 그러나 매 시간마다 사진을 찍어 미팅 확인을 사장이 직접했다.



 반장이란 자가 이제 막 현장에 배치 받은 애들에게 협력과 협동을 가르치기는커녕 말 잘 듣고 똘똘한 애와 그렇지 못한 애를 이간질시켰다. 그 말을 듣고 충격에 빠져 있는 어린 청년을 보며 그 나이 때의 나를 보는 듯 서럽고 억울한 심정이 교차되었다.


 나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가르치고 모범을 보이며 관리자로써의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친구들을 이간질하고 연대의식을 깨트리는 협력업체 반장의 모습에 살기를 느꼈다. 그 모습에서 삼성중공업이 만들어 놓은 노예화 된 계급 시스템의 생생한 현장에 책임자의 목을 자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삼성 중공업과 현대 중공업이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   


 새로 사귄 테크닙의 필립이 저녁 자리에 초대했다. 

힘든 시기에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던 나는 점차 침울했고 상황은 나아지는 게 없었다. 알제리는 언제 갈 수 있을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필립의 초대는 신선하게 즐거웠다. 


왼쪽의 필립과 테크닙 동료들 파티. 이들은 앉는 일 거의 없이 시종일관 서서 서로서로 돌아다니며 대화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대우조선해양 배관 물량팀장에 이력서를 넣고 기다렸다. 

기다림의 시간은 길고 지루했지만 낚시와 등산을 즐기며 여유를 부렸다. 멀리, 설악산에 낚시대와 잠수 장비를 메고 올라가 속초로 내려가서는 잠수와 낚시를 즐겼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진정한 자유인! 멋집니다!"


나는 하성기업에서 같이 일했던 우즈베키스탄의 귀여운 동생, 모하메드를 만나기 위해, 삼성중공업 후문의 미니스탑으로 향했다. 미니스탑 주인이 고등학교 친구의 친구였고 근처의 국밥 집 주인도 친구의 친구라 모두 친구였다. 


  내가 한국을 떠나 있는 20년 동안, 거제 주변, 고성과 진주, 사천에 내가 한국에 친구가 있다는 개념을 잊고 살았다. 한국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다시피 한 이유는, 거의 왕래가 없었으니 한국에 와서 한 번씩 만나는 진주 고향 친구들은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이유로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세월의 변화보다도 정치와 종교가 갈라놓는 친구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며 의문을 품었다. 올바른 정치와 희생하는 신앙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안겨주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필수불가결한 법적이고 도덕적인 의무이지, 어떻게 친구와 가족을 갈라 놓을 수 있는 제도일 수 있는가는 꼭 풀어야 할 숙제였다. 


 내 친구들은 모두 서울과 경기도 쪽에 분포해 있었기 때문에 거제라는 낯선 땅, 처음 와 본 이곳이, 고향과 지근거리라 하더라도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다. 내겐 프랑스 친구들이 너무 마음이 편했다. 나는 프랑스 친구들보다 프랑스 역사와 문화에 더 심취해 있었고 나의 지식에 친구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업무를 마치면 노동자들이 우글거리는 삼성중공업 후문, 미니스탑 앞에 모여 맥주나 마시며 노동의 이야기로 저녁을 보내는 사람들의 낙은 술과 업무 얘기뿐이었다. 숙소는 너무 작은데 사람들은 넘쳐나고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너도나도 모여들어 언제나 사람들로 넘쳐났다. 나는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싶어 부끄러워했지만 모두 노동자들이었으므로 자괴감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노동자들의 숙소가 밀집된 지역은 이 후문에 몰려 있었다. 건물은 계속 생겨나 뒷 산을 조금씩 잠식해갔고 가파른 경사로 계속 올라 가야 했다. 그러나 이전에 있던 숙소들은 인간적인 멋이라곤 없는, 어쩌면 고단한 노동자의 삭막한 마음을 닮은 듯 황량했다. 



이전 04화 삼성중공업 안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