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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계 연구소 Apr 18. 2024

한국 사람들이 상처받는 독일의 인사법

 Hallo에 속지 마세요

굳이 유럽에서 생활을 해본 적이 없더라고 이곳에서는 가벼운 인사를 한국보다 더 많이 건넨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끼리는 누군지 몰라도 가벼운 인사말로 'Hallo(할로)'라 말한다. 꼭 이웃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생뚱맞게 눈이 마주치면 살짝 눈인사를 하거나 고개를 쿨하게 툭 쳐들거나. Hey! 라며 추임새를 넣어주기도 한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만 보던 문화 같기도 하고 어쨌든 인사는 좋은 것이니까 금방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한국에서는 이웃끼리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면 서로 인사도 없이 조심스레 들숨 날숨만 내뱉고 뭔가 어색하기만 한데 이 친절하고 쿨한 문화가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당신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상처받을 일이 생길 것이다.


'인사를 씹는다?!'

처음에는 상대가 먼저 인사를 하면 나도 인사를 받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먼저 인사를 건네는 때가 온다. '항상 소극적이고 딱딱한 표정'이라는 동양인 스테레오 타입을 피하고 싶기도 하고, 다른 독일어를 할 때는 버벅거리지만 어려운 말도 아닌 'Hallo'정도라도 좀 더 당당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러나 분명히 이런 순간이 올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같은 건물에서 마주쳐서 먼저 인사했는데 상대가 대꾸조차 안 할 때.

처음에는 '내가 너무 작은 목소리로 얘기했나...'라고 생각해서 나중에는 더 크고 당당한 목소리로도 해봐도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그러면 이제는 '이게 인종차별인가... 날 무시하나...'등등 별 생각이 다 들고 기분이 몹시 상한다. 한국에서 인사를 가볍게 나누지 않는 만큼 '인사를 씹는다?!'는 꽤나 기분 나쁜 일이 아니던가.


실제로 너무 작고 소심하게 인사를 했거나 인종 차별, 무시를 당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단지 '인사의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일어난다.


'Hallo'는 '안녕하세요'가 아니다


한국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안녕?! 또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었는데 눈도 안 쳐다보고 스쳐 지나간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내 기분을 떠나 사회적 기준에서 봐도 100명이면 100이 '싸가지!'라고 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인사'는 서로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은 다르다. 이곳에서 '인사'가 '예의'가 되는 경우는 '이 사람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가'에 달려있다. 그러니까 모르는 사람끼리 건물에서 인사를 주고받는 것은 사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인사라는 뜻이다. 그냥 습관에 가까운 문화일 뿐 상대에 대한 예의나 존중, 따뜻한 이웃문화 이런 것과는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당신의 인사를 씹은 그 사람들은 그냥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던가', '기분이 좋지 않다던가', '인사할 타이밍을 놓쳤다던가'등의 이유로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고 그에 대한 미안함이나 후회 따위는커녕 당신이 자신에게 인사했다는 사실도 기억을 못 할 것이다.


그러면 아예 모르는 사이가 아니라면 어떨까.


필자가 독일에서 학교에 다닐 때의 일화가 있다. 한국에서 온 지도 얼마 안 되고 원래 성격이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도 아니라 혼자 연습하고, 혼자 밥 먹고... 모든 생활이 '혼 XX'였던 신입생 시기. 건물 앞에서 베이스 치는 독일인 친구랑 잠깐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얘기가 길어져 결국 이 친구와 같이 저녁까지 먹게 되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개인적인 얘기도 나누고 헤어졌는데, 다음 날 학교 복도 반대편에서 그 친구가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나름 나에게는 학교에서 그나마 가장 친한 친구가 된 놈인데 오죽 반갑게 인사했을까. 근데 이 놈이 나를 안 쳐다보고 정면만 보고 쑥 지나간다. 그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 우리는 내가 전화를 하고 있거나 다른 누군가랑 얘기를 하고 있어도 아니면 기분이 영 좋지 않을 때라고 안면이 있는 누군가가 인사를 하면 무조건 받아준다. 말을 못 하는 상황이면 웃으면서 손이라도 들어준다던가. 썩소는 감추지 못했지만 애써 '안녕'이라는 말을 한다던가. 그러나 독일인들은 무조건 '내 상황이 먼저다' 내가 인사하기가 조금이라도 불편한 상황이라면 소위 '개무시'를 해도 마음에 걸릴 것이 없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놈과 함께 저녁을 먹은 것이 큰 의미가 있었지만, 그 친구에게는 밥 한번 먹은 것으로 '내 불편을 감내하면서까지 인사할만한 사이'가 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친구 증명


이들에게도 무조건 인사를 받아주는 관계를 존재한다. 첫째는 내가 이 사람에게 무조건 잘 보여여만 하는 경우. 비즈니스관계라던가, 자녀와 같은 반 학부모(이곳은 초등학교 내내 같은 반이 그대로 올라간다), 담을 같이 하는 이웃(서로가 집이 자가일 경우- 평생 살 수 있는)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니 이런 경우는 제외하자.


이들이 무조건 인사를 받아주는 사이는 진짜 '친구'일 때다. 한국은 밥만 한번 같이 먹어도 친구가 되고 술을 같이 마시면 바로 친한 친구도 되지만 이곳은 '친구'사이에 '시간'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사실 한국어 '친구'의 뜻도 '오랜 가까이 알고 지낸 벗'아니던가. 물론 어릴 때 학교를 같이 다니고 줄곧 가까이 지냈다면 더 쉽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정말 오랜 시간 가까이 지내면서 많이 이야기를 공유하고 시간을 나누고 선물을 나누고 일을 함께한 그런 사람들과 겨우 친구라는 것이 되는 문화다. 때로는 얼마나 친하게 같이 놀았느냐 보다 그냥 오랜 시간을 안부만 물으면서 알고 지낸 사이가 더 가깝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을 만큼 '얼마나 오랫동안 알고 지냈는가'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서로를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상대가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누는 중간에 혹은 통화를 하는 중간에도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그 상대 역시 대화중이던 상대에게 '잠깐만!'이라고 동의를 구하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이곳은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도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손님이 말 걸면 대꾸도 안 하거나 심지어 화도 내는 문화라는 것을 가만하면 이것은 엄청난 '친구 증명'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사'가 '예의'가 되는 경우는 이미 'Hallo'의 수준을 벗어난 경우다. 그 이외에는 인사하느라 전화를 끊을 필요도 없고, 자전거에서 손을 놓다가 휘청거릴 필요도 없다. 내 기분이 썩었는데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하느라 감정을 소모할 필요도 없다. 물론 상대가 내 인사를 받지 않았다고 상처받을 필요도 없다.


독일에서 툭하고 던지는 'Hallo'는 마치 한국의 사극 드라마에서 양반들이 인기척을 할 때 '으흠.. 으흠...' 하는 정도니까.



image : https://www.npr.org/sections/goatsandsoda/2015/07/26/425968146/whats-in-a-namaste-depends-if-you-live-in-india-or-th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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