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간계 연구소 Sep 18. 2020

이 새벽에 뭐하세요?

그러게요... 이상하네요...

지금 시각 4시 30분. 내가 지금 뭐하나...


달리기를 시작한 지 이제 막 2주가 지났다. 그리고 아침 달리기는 오늘로 3일째다. 첫날에는 6시 30분쯤 나갔고 딸 리나의 아침 등교를 준비하기가 촉박했다. 그래서 다음 날 5시 50분 기상, 오늘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4시 20분에 눈이 떠져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새벽에 달릴 생각에 설레어서인지 못 일어날까 걱정을 해서 인지 아무튼 또 처음 해보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선잠을 잔다던지 생각보다 일찍 눈이 떠지는 일이야 꽤 있다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맑은 느낌으로 글을 쓰고 싶어 진건 뭔가 행복한 느낌이다. 


달리기가 나에게만 주는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다. 달리기라서가 아니라 나라서 갖는 특별한 의미.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남들이 다 하는 거라면 질색팔색을 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교복을 항아리로 입던 쫄쫄이로 입던 그냥 나는 하기 싫어서 바지 밑단에 실밥이 주렁주렁 나온 채로 입기도 했고 이스트팩, 얀 스포츠 같은 가방이 유행할 때는 양복 정장 가방을 책가방 대신 쓰기도 했다. 이쁘게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도 바보 같았고 평범하게 회사 다니는 것도 바보 같았다. 그냥 누군가와 같아지는 것이, 더구나 평범한 다수와 같아지는 것이 너무 싫었다. 


여전히 유행이라는 것을 쫓고 싶지도 않고 트렌드 셋터가 되고 싶지도 않지만. 응 너 되고 싶어도 못돼... 

한 가지 분명한 건 삶에 대한 나의 관찰이 뿌연 렌즈를 낀 싸구려 망원경 같았고 날이 무딘 칼 같았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절대 같은 삶도 평범한 삶도 없다. 자세하고 날카롭게 들여다볼수록 무수히 넘쳐나는 새로운 이야기들, 새로운 관점들이 보인다. 이제 슬슬 그것들이 보인다. 물론 이런 핑계로 고인물 같은 인생을 자위하면서 살지 않기를 바라지만 내가 놓친 평범한(?)것 안에 숨은 보석들을 찾아보는 것이 나의 삶에 더 멋진 균형을 가져다주리라 믿는다. 


그리고 달리기가 남과 같은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나라면 절대 하지 못하는 경험들로 이끌고 있다. 달리면서 경험하는 것들은 모두 각자의 것이고, 각자의 삶에서 각기 다르게 빛을 낼 것이다. 하지만 달리는 행위 자체는 전혀 창의적이지 않다. 내가 예술적인 자세에 예술적인 신발에 예술적인 옷을 입고 예술적인 호흡으로 뛰는 것이 의미가 없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신발을 신고, 맞는 스트레칭을 하고, 맞는 자세에 맞는 호흡을 하는 것이 가장 옳은 판단이다. 나는 달리기를 하면서 내 인생에 없던 설레발을 엄청 치고 있다. 이제 고작 2주 하고 SNS며 브런치며 온 동네 소문내고,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장비들, 도움이 되는 유튜브, 남들 하는 건 다해보면서 아이돌 따라다니는 소녀마냥 키득거리고 있다. 달리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목표들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사실 4:30분 기상에 대해서는 이미 책도 많고 유튜버들도 맨날 떠들어대니 이전의 나라면 내가 일어난 시간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도 절대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유치하고 뻔해서. 하지만 달리기를 통해서 나는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들에는 할 것이고 나라서 절대 느끼지 못했던 기쁨과 깨달음도 찾아낼 것이다. 


이제 5시 30분, 나 달리러 나간다.




이미지 : https://www.instagram.com/cx3_berlin/


이전 01화 사기꾼에게 당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