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소설
내가 가끔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내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아주 가끔은 수백 개의 깃털이 되어 어디론가 날아가 보고 싶어.
누군가의 책상 밑에 있는 먼지가 돼도 좋아.
아침에 일어나 물을 마시고 거울을 볼 때면 난 내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쇼팽의 녹턴 2번이 나오는 저 오디오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어떨까 해
누가 슬퍼할 겨를도 없이 반짝하고 사라져 버리면 난 누군가의 허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건 꽤나 즐거운 일이 아닐까? 아무것도 아닌 거야. 아무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했어.
애초에 난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사라진다면 세상은 처음부터 내가 이곳에 없었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돌아갈 거야.
사라져 남은 빈자리는 낡은 벤치로 메워지겠지.
그래서 난 내가 가끔 사라져도 괜찮을 거란 생각을 해.
난 오늘을 살고 어제도 열심히 살았고 내일도 열렬히 살 거야. 그렇다고 무엇하나 바뀌는 건 없겠지.
그래서 그냥 공기가 되고 싶고 물이 되고 싶고 음표가 되고 싶은 거야.
그것마저 안된다면 그냥 사라져도 돼.
다만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져 버렸으면 해. 나의 부재가 아픔이라면 내가 0이 되는 것에 의미는 없어.
의미가 없는 건 내가 사라지는 것에만 존재하는 거야.
아무도 모르게 텅 빈 영화관의 고요함처럼 그렇게 쓱 하고 없어지는 거야.
그렇다면 이 긴 밤도, 모든 추억도, 내 낡은 청바지도 전부 없어지겠지.
노을이 지는 것처럼 아름답게 사라져 버린다면
밤하늘의 별빛처럼 누군가의 눈에 반짝거린 뒤 사라져 버린다면
난 세상에 미련함을 두고 말 거야.
안녕
p.s
그렇지만 이렇게 살다 보면 사라지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안 되는 이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