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소설> - 상처를 생각 한들 어찌하리

3분만 쉬다 가실래요?

by 신하영












3분 소설 - 상처를 생각 한들 어찌하리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 에두아르 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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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참 웃겨, 그렇게 당하고도 아닐 거라고 믿었던 거 보면."





술잔을 거머쥔 채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루는 이내 술잔을 넘기고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말이야 이렇게 실컷 욕이라도 해서 다행이지. 울기만 했어봐 얼마나 찌질하냐?"




"요즘은 남자들이 더 많이 울던데. 너 몰래 코찔찔한 거 아니야?"



"무슨 소리야, 물론 울 수도 있었지만 나도 그동안 뭐가 많이 쌓인 거 같더라고, 진짜 눈물 한 방울 안 나와.

진짜 나는 그냥 걔가 못 살았으면 좋겠어."




"그래, 차라리 그런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해.

소주 많이~ 마시고 다 잊어. 여자 많잖아 주위에."




"전부 리셋이야 인마."





연희는 하루의 잔에 소주를 채워주며 콧방귀를 뀌었다. 자신은 이미 한 병을 마셨기에 더 이상의 술은 무리였다.

입이 심심해 가볍게 콜라 한 모금을 마신다.





"근데, 너는 한 병으로 괜찮냐? 얼추 들어보니 세병은 마셔야 될 거 같던데."




"별로."




"너 울 거 같아서 안 마시는 거지?"




"아 그래! 진짜 울면 안 돼. 울면 진심 끝이야."




"그래, 강한 여자가 돼라."




"야 오랜만에 봤는데 이런 얘기밖에 못하는 우리 너무 슬프지 않니?"




"그러게... 근데 뭐 어때. 이러면서 다 잊는 거지."






하루는 볼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눈을 껌뻑였다.

슬슬 취기가 올라오는 눈치다.

물론 더 마실 테지만 어느 정도의 이성의 끈은 잡고 있어야 한다.

그래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지






"너 얼굴 빨개."




"알아, 취하려고 마시는 건데."




"나도 그냥 더 마실까?"




"아 마셔 그냥!

뭐 있어? 그냥 마시는 거지. 덜 취하는 사람이 택시 태워주기 하면 되잖아.

오래간만에 보는데 친구 혼자 술 마시게 하는 것도 별로다 너?"




"근데 취하면 나 울까 봐.."




"야, 참는 것도 좋은데 그거 곪으면 피곤하다? 원래 이럴 때 푸는 거야.

대신 최대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하자 오케이?"





하루가 연희의 잔에 소주를 가득 부었다.

연희는 자세를 고쳐 앉고 긴 머리를 뒤로 묶어 올렸다.

하루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신호였다.

둘은 이내 키득 웃으면서 잔을 부딪혔다.





"크으.."




"크아....."




"야 나 궁금한 게 있는데, 너는 남자 여자 중에 누가 더 무지한 거 같냐?"




"여자? 아니 남자다. 남자가 무지해."




"왜?"




"왜냐고? 글쎄, 그냥 내 경험상 그런 거 같은데. 넌?"




"나도 남자. 근데 이번에 처음으로 느꼈어

여자도 정말 무지하구나 라고."




"맞아 여자들도 무지하지.

근데 사람이 그런 것 같아 남녀를 떠나서.

하루야 솔직히 나 진짜 상처 많이 받았다?

진짜 처음에는 감당이 안돼서 잠도 못 자고 폰만 보고 그랬어.

걔가 그럴 줄 누가 알았겠냐고

그렇게 나 좋다고 따라다니고 잘해주던 애가..

하긴, 지입으로도 말했어.

자기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연희가 말했다.

어깨가 이미 축 처져있으니 누가 봐도 상처받은 이로 보였을 것이다.

하루는 그런 연희를 동정의 눈빛이 아닌 동감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억울하잖아 그치? 복수하고 싶은 건 아닌데 어떻게든 하고 싶고.

난 이때까지 했던 내 모든 행동들이 한 순간에 무너져서.. 그게 진짜 열 받더라

지가 뭔데 도대체."




"그래! 지가 뭔데 진짜.."




"적어도 우린 고마워할 줄은 알았다고. 안 그래?"




"아.. 짜증 나.."




"야!! 울지 마 버텨 이년아."





목 끝까지 올라온 울음을 하루가 겨우 잡아줬다.

얼른 자리를 옮겨연희의 등을 두드려주고 가볍게 땡꼬를 때렸다.





"얘기한지 5분밖에 안 지났어. 울어도 되는데 아직은 아니야."




"우는 게 아니라 화나서 그러는 거야."




"어쨌든 그 새끼 때문에 우는 거면 자존심 상하잖아

난 죽어도 안 울 거다.

그런 하찮은 애 이제 생각해봤자 화만 나고

눈물 날 겨를도 없어. 빨리 좋은 사람 만날 생각만 해야지."




"그래도 너 많이 좋아했잖아."




"그래서 그런가 보다. 더 이상 감정 소모 안 해도 되고 줄만큼 줬으니까.

야 연희야. 좋은 뜻으로 생각하면 지금 우리 상황이 뭘 거 같냐?"




"뭔데?"




"애초부터 쓰레기였던 애를 지금에서야 알았다는 걸 감사히 생각하자.

더 고생하기 전에 헤어져서 다행이라 생각하자."




"그건 좀..."




"이왕 헤어지고 다시 만날 거 아니면 마음 독하게 먹어.

난 오늘 이후로 딱 끝이다."





다시 잔을 채우고 연거푸 마신 둘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서로가 받은 상처는 달랐지만 이별이라는 단어 아래 둘은 평등했고 자신의 감정을 알아주는 것에 위로를 받았다.




이별이라는 건 사실 보잘 것 없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꼬리표 아니던가




그걸 염두하고 누군가 만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겪어야 할 일을 빨리 겪으며 둘은 성장한다.

지금 아파하는 감정은 다 좋은 밑거름이 아니겠는가





"넌 기분 안 이상해? 난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기분 진짜 이상해."




"나도 이상해."




"문득문득 떠오르는 게 힘들다기보단 고통스럽다고 해야 하나

내가 있잖아, 오늘 길가다가 고개를 몇 번 저었는지 알아?"




"어쩌겠어, 조금은 감수해야 낫지 않겠냐?

지겹도록 듣는 말 있잖아 시간이 약이라고. 처음 헤어져본 것도 아니고 참아야지.

야 나도 중간중간에 자꾸 생각나서 혼자 벽치고 그랬어 혼잣말로 욕도 하고."




"그래도.."




"그래 안다고. 이번에는 달랐다는 소리하려는 거잖아? 근데 달랐다고 쳐도 결과적으로 상처는 네가 받았잖아. 그래도 아련한 척하면서 행복하길 빌어줄 거야?"






격조된 표정으로 연희에게 말했다.

상처를 받은 입장에서 행복을 빌어준다는 건 정말 끔찍하다고 생각했을 터다.

증오까진 아니더라도

지속적인 미움은 필요하다.

정말이지, 바보는 만날 당하기만 하니까






"아니."




"아니면 한잔 마시고 참아."




"응.."





어느덧 4병의 소주병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둘은 얘길 하다가 가끔 멍하니 있기도 하고

서로의 치유법을 욕하며 투닥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따금 찾아오는 외로움은 서로의 눈을 보며 꾹 집어삼키기도 했다.





"한 병만 더 마시고 집에 가자 괜찮지?"




"거봐 잘 마실 거면서

근데 넌 어째 얼굴색 하나 안 변하냐?"




"오늘은 진짜 하나도 안 취하네. 나 멘탈 장난 아니야 지금.




"멘탈은 나도 마찬가지야."




"후우.. 하루야 이렇게 살다 보면 또 괜찮아지겠지?"





앞머리에 튀어나온 잔머리를 손끝으로 올리며 연희가 말했다.

굉장한 초연함이 보였던 순간이었다.





"모르겠다. 상처 같은 거 생각 한들 뭐가 좋겠냐."





콧김을 불며 팔짱을 낀다.

하루는 코를 올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래, 생각 한들 좋을 게 뭐겠어.."




"우리 좋은 사람인 건 확실하지?"




"응, 내가 보기엔."




"그럼 좋은 사람 만날 거야. 그때까지 조금 참지 뭐."




"이제 연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해야지 바보야. 젊은데."





둘은 담담하게 남은 술을 마셨고

외투를 걸치고 더치페이를 했다.


화장실을 가서 연희는 화장을 고치고

하루는 머리를 매만졌다.





"나가자."





바깥공기가 꽤나 춥다.





"가자 택시 태워줄게."




"응 가자. 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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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생각 한들 어쩌하고

추억을 생각 한들 어찌하리






집으로 가는 길


하루와 연희는 푹 눌러진 감정의 부풀어 오름을 느껴버렸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지만 하루는 아랫입술을 꾸욱 깨물며 집으로 걸었다.


그리고 연희는 집 앞 놀이터에서 한참을 울고 말았다.








상처는 보면 볼수록 곪는 것이었다.


힘을 내며 헤어졌건만


결국은 이렇다.


정말 어쩔 수 없나 보다 사랑은





이따금 괜찮아질 거지만

다시 아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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