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씽킹에서 말하는 공감(Empathy)의 의미
디자인씽킹이라는 개념이 과거에 유행하기 시작했던 이유를 되새겨 보면, 디자이너들이 고객의 니즈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고, 고객의 Pain point를 찾아내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발산하고, 수렴하고,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보고 테스트 해보는 그 일련와 과정을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도록 구조화해 놓은 것인 것 같다.
그 일련의 과정 중 디자이너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계가 바로 "Empathize(공감하기)"인데, 고객의 입장에서 어떤 것이 가장 불편하고 개선을 필요로 할까에 대한 고민이 모든 디자인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고객의 마음에 제대로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 이후의 과정은 마치 첫 단추를 잘못 맞춘 후 줄줄이 어긋나 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도 못한 채, 전혀 원하지 않는 엉뚱한 길로 열심히 노를 저어 가게 되는 꼴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공감(Empathy)'이란 무엇인가? 홍익대 나건 교수님은 아주 오래 전, 대학강의 중 한 학생에게 이런 질문을 받으셨다고 한다.
교수님, Empathy 와 Sympathy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처음 그 질문을 들은 나건 교수님은 똑같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셨다고 한다. 하지만, Empathy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 결과, Empathy와 Sympathy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셨다고 하며, 강의 중 설명해주신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Sympahty 는 feel 'for ~' 의 개념으로, 진심으로 깊이있게 공감하는 수준이라기 보다는 '동정'이나 '연민'에 가깝다.
Empahty 는 feel 'with ~'의 개념으로, 진심으로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이고, 그 사람이 느끼는 고통과 감정을 나도 똑같이 느끼는 수준이다.
내가 경험한 두 가지 사례로 예를 들면,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한 번은 패션에 관심이 많은 친한 친구가 마음에 드는 신발이 생겼다며, 휴대폰에 담긴 사진을 보여주며 소개해 주었다. 매우 갖고 싶은 신발이었는데 이미 선착순으로 매진이 되어 살 수 없게 되었다며, 엄청 속이 쓰린 듯 괴로워했다. 평소 패션이나 신발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나는 크게 공감이 가지는 않았지만, 친구가 괴로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적절히 위로를 해 주었다. 이런 것이 Sympathy 다.
다른 사례로, 코로나가 매우 심하던 어느 날, 나는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던 때였다. 유치원에서 엄마와 같이 하원하고 돌아온 아들은 아빠가 집에 있으니, 내가 일하고 있는 방에 들락날락 개구쟁이처럼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회사에서 전화가 와, 방문을 스윽 닫으며 전화를 받았는데, 글쎄 아들이 문틈 사이에 손가락을 넣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의 비명에 깜짝 놀라 닫던 문을 다시 열고 아들을 보니, 손가락은 문틈 사이에 껴서 피부가 까지고, 잘못하면 부러지기 직전까지 짓눌려 있었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몸이 부르르 떨리며 눈물이 와르르 쏟아졌다. 이런 것이 Empathy 다.
디자인씽킹에서 Empathy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다. 고객이 느끼는 그 감정과 불편함, 고통스러움을 똑같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어야, 올바른 솔루션을 찾고 결과물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유튜브를 이것 저것 찾아보다가 평소 존경하는 분이기도 하고, 내가 담당하는 교육과정에 두 번정도 모셨던 적이 있는, 다음소프트의 송길영 부사장님의 강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사물이 아니라 사람을 보라' 라는 주제의 강의였는데, 어떻게 보면 디자인씽킹에서 이야기하는 Empathy 의 개념과 큰 틀에서 같은 이야기인 것 같다.
그 강의에서 언급해주신 재미있는 사례로, (당시) 최첨단 신기술이 모두 접목된 전자식 리모컨을 어느 회사가 만들어서 출시를 했고, 그 당시에는 아주 획기적인 기술인 동시에 최초의 시도였기 때문에 그 리모컨을 제작/판매한 회사는 당연히 잘 되리라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고, 이렇게 생긴 리모컨은 지구상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들은 리모컨을 누를 때, TV 화면을 보지, 리모컨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TV 화면을 보고 있는 사람은 손가락의 감각으로 리모컨의 채널을 돌리거나 음량을 조절해야 하는데, 전자식 리모컨은 불편하게 리모컨을 바라만 보아야 하도록 디자인 된 것이었다. '사람'에 집중하지 않고, '사물'에 집중한 결과였고, 고객의 니즈에 '공감'하지 않고 기술만을 자랑하고자 했기 때문에 벌어진 참사라고 할 수 있다.
'공감'이라는 것은 이와 같이 결과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개념이고,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과정이다. 또한 '공감'은 상품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에게만 요구되는 개념이 아니라, 누구든지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영향을 받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모두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한다.
HRD와 조직문화 업무를 하고 있는 나에게는 내가 기획하고 운영하는 교육과정과 조직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는 직원들의 니즈에 공감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고, 그 분들이 애타게 찾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어떤 부분을 교육이나 캠페인과 같은 활동들로 풀어드릴 수 있을지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